무대 휘어잡는 디바, 가슴 떨리는 외도로 무대 달군 한국 뮤지컬의 원조데뷔 연극 서 또다른 변신에 푹…

[감성 25시] 최정원
무대 휘어잡는 디바, 가슴 떨리는 외도
<토요일 밤의 열기>로 무대 달군 한국 뮤지컬의 원조
데뷔 연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 서 또다른 변신에 푹…


“다시 태어나도 뮤지컬 배우가 됐을 거예요. 뮤지컬 배우가 아니었더라면? 그럼 전 세상에 없는 거예요.”

뮤지컬 배우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있지도 않았을 ‘뮤지컬 배우 최정원’. 국내 최초 수중분만으로 아이를 나은 여자. 덕분에 유명해진 딸 아이 수아(6 )조차 자신의 엄마를 “뮤지컬 배우 최정원”이라고 소개한다. 그녀의 다정한 남편 임영근씨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라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언제나 좋은 배우”로 살기를 바란다고 한다. 집안에서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보다 ‘뮤지컬 배우’가 더 잘 어울리는 행복한 여자 최정원(35).

이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연극 같아! 보여지는 이미지 아냐? 그런 의심 한 번쯤 할 수 있겠다. 그녀의 행복이 샘나도 어쩔 수 없다. 최정원 그녀에게는 모두 가능한 이야기니까.

최정원의 미소는 햇살 같다. “사실 무척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예요. 하지만 제가 밝게 웃으면 상대방도 저를 보고 똑같이 웃죠. 서로가 거울을 보듯 말이죠. 그게 좋아요.” 아침 햇살이라는 바 코드가 그녀를 따라 다니는 것은 아닐까. 주변은 늘 환하다.

- 다시 태어나도 뮤지컬 배우로

“어릴 적 거울을 보면서 연기하는 걸 좋아 했어요. 거울 속의 저는 제가 상상해 낸 현실에 눈물을 흘리죠. 그러다가 제가 우는 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 엉엉 소리 내 운적도 있어요. 거울을 보면 또 다른 나의 모습에 감탄하죠!”

최정원! 그녀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다. 배우에게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면)가 있다지만, 최정원이야 말로 천개의 얼굴을 가진, 천상 배우다. 항상 어느 배역을 하든, “최정원과 닮았다”라는 말을 듣는다. 최정원의 뮤지컬 데뷔작 ‘아가씨와 건달들’(1989)의 아가씨 6번을 맡았을 때도, “6번 아가씨 어쩜 저리 귀엽고 섹시할까?” 라는 찬사와 함께 6번 아가씨의 팬 클럽까지 생기기도 했다 한다.

최정원이 가장 최정원답다고 말하는 ‘토요일 밤의 열기’(2003)에서, 도도하지만 속은 여린 여자 댄서 스테파니를 맡았을 때도 진짜 스테파니가 춤을 추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커피 CF에 출연했을 때도 그녀를 보고 커피 CF 전속 모델 최정원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하니까. 배역과 배우과 일치한다는 것은 관객에겐 행운이다. 생생한 현장에 와서 배우의 기쁨에 같이 웃고 슬픔에 같이 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비워내기에 바빠요. 마음을 비우고 최정원이라는 자아를 괄호 안에 묶어야 해요. 그리고 몰두하죠. 하나의 배역이 끝나면 전 비워내기 작업에 다시 바빠져요. 무대위의 ‘나’를 버리고 일상의 ‘나’로 돌아와야 하잖아요.” 최정원은 무대 위의 마술사다. 최정원이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뿜어내는 열기와 춤과 노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지금 앵콜 상연에 들어가 한창 열연중인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녀의 외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최정원의 다른 페르소나에 놀랄지도 모른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뮤지컬 배우인 그녀에게 연극 데뷔작인 것이다.

현란한 조명아래 화려한 배우들과 춤을 추던 그녀가, 인형의 집 세트장 같은 곳에서 자신을 향해 던지는 편지는 아무래도 ‘뮤지컬 배우 최정원’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성 싶다. 너무 초라한 거다. “이건 연기가 아니예요. 어느새 저는 사춘기가 될 미래의 나의 딸에게 편지를 쓰는 밤무대 가수 멜라니가 되요. 그리고 어떨 땐 가슴이 커지기 시작해서 고민하는 사춘기에 입문한 딸이 되기도 하죠. 나의 엄마도 이랬구나. 아, 멜라니는 바로 저예요. 그리고 당신인 거죠.”

일인극 모노드라마에 푹 빠진 그녀. 실제로 그녀는 극중 배우 멜라니의 나이와 같은 35살이다. 밤무대 여가수처럼 언제나 뮤지컬을 위해 밤늦도록 연습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돌이키며 ‘이 시간 내 딸은 혼자 양치질을 하고 잠이 들겠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고.

“멜라니는 나쁜 엄마지만, 結置?수 없는 여자죠. 평범한 엄마랑 다른 자신이 너무 미워서 자신을 탓하죠. 하지만 딸을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가 세상에 어딨겠어요. 멜라니는 사랑이 두려웠던 거예요. 어머니가 딸에게 해 주기 어려운 말도 서슴없이 하는 그녀는 딸을 사랑하는 방식이 남들과 달랐던 것 뿐이예요.” 멜라니는 고백이라는 형식을 빌려 편지를 쓰며,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인생을 딸에게 들려 주며 용서의 눈물을 흘린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포스터는 멜라니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예요. 웃으면서 그녀는 살짝 눈물을 흘리죠. 삶이 너무 힘겨워서 울지만, 딸 앞에서 엄마가 어찌 눈물을 보이나요. 딸에게 엄마는 강해야 하죠. 의지할 수 있게 말이죠. 하지만, 슬픔을 감출 수 없는 거예요. 무책임한 엄마를 용서해 달라는 그 표정을 보면 저조차 가슴이 아려요.”

- 박수는 나의 힘이예요

그녀는 멜라니였다. 멜라니의 시선으로 관객과 시선을 맞추며, 당신도 나와 같지 않나요? 묻는다. 딸에게 무심한 나를 이해해줄 수 있나요? 하지만 나는 딸을 너무 사랑하죠. 저도 한때는 딸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전기선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아직 어린애죠. 딸의 가슴이 커지기 시작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했나요? 관객을 바라보며 묻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우리는 그녀와 일심이 되어 함께 숨쉬고, 함께 웃고, 함께 가슴이 아플 수 밖에 없다.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를 부르며 막이 내리지만 노래가 주는 감동과 그녀의 연기가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박수소리를 들으면 힘이 난다는 최정원. 무대위에서 관객을 바라볼 때 그들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는 순간 비로소 힘들었던 모든 것을 한번에 잊어버린다고. 에너지가 마구 쏟구친다는 그녀는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박수는 나의 힘이예요!” 라며 미소 짓는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에게 뺨이라도 맞으면, 오늘 운이 굉장히 좋으려나? 이렇게 생각해요. 그러면 뭐 기분 상할 일도 없구요, 늘 웃고 다닐 수가 있어요. 웃으면 정말 복이 와요.”

그녀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은 어머니 덕이다. “엄마, 나는 왜 다른 아이들보다 피부가 까매? 왜 영화배우처럼 이쁘지 않아?” 라고 물으면, “넌, 그애들 보다 길다란 다리와 쑥 빠진 몸매를 가졌잖아. 그리고 넌 마음이 이쁘잖아” 라고 말해주었다던 그녀의 어머니.

어릴 적부터 유독 끼가 많아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즐겨 하던 딸아이를 데리고 살짝 연기 학원에 등록시킨 어머니다. 딸이 평범한 인생을 살기를 바란 아버지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딸의 뜻에 당연히 반대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배우는 환영받지 못한 직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딸의 편에 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 우리나라 뮤지컬 배우의 1기이자 최고봉을 키운 건 바로 그녀의 어머니다. 어머니의 꿈도 사실 배우였다 한다. “저를 통해 대리만족 하신 거죠.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어요. 엄마 몫 까지요. 내 딸 수아요? 대찬성이예요. 그 애가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죠. 내 작은 분신인걸요.”

‘언제나 처음처럼, 처음을 언제나처럼’을 삶의 좌표로 삼는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다. “저를 알고 싶으면 여름에 ‘토요일 밤의 열기’를 보러 오세요.” 정말 그럴까? ‘토요일 밤의 열기’의 스테파니가 정말 최정원일까?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녀가 쓴 자서전 같은 픽션이라면, ‘토요일 밤의 열기’는 뮤지컬 배우 최정원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완벽한 페르소나가 될 것이다. 그녀를 보러가자.

유혜성


입력시간 : 2004-04-22 14:35


유혜성 cometyou@han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