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대희, 몸보다 더한 마음고생에 눈물은 핑 돌고

휠체어 타고 남대문 시장 보기 "곳곳이 함정이예요"
개그맨 김대희, 몸보다 더한 마음고생에 눈물은 핑 돌고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일반인이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과연 휠체어에 앉아, 지상 1m 높이에서 본 세상은 어떠할까?

개그맨 김대희(30)씨가 난생 처음 휠체어를 타고, 1급 지체 장애인 이숙자(45ㆍ여)씨와 함께 남대문 시장 나들이에 나섰다. 이번 나들이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개성 마당’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한 1일 장애 체험 행사. 이들의 특별한 나들이에 아나운서 지망생인 홍화선(24ㆍ여)씨도 동참했다.

4월 15일 8시 50분. 국회의원 선거일이라 남들은 회사도 쉬는 판에, 아침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두 바퀴 자가용(휠체어)를 타고 여의도 일대를 뺑뺑 돌고 있다. 남대문 시장에 나가기 전에, 휠체어 운전 연수를 받는 중이다.

“턱을 올라갈 때는 앞바퀴를 위로 치켜올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고꾸라져요.” “뒤로 갈 때는 한바퀴가 먼저 빠지면 안 되고, 똑같이 고르게 나가도록 해야 되요.” 이날 휠체어 운전 ‘연수 강사가 ’된 1급 장애인 신홍섭(27)씨가 설명과 함께 먼저 시범을 보인다.

앞의 보도 턱은 불과 10cm의 높이. 간단히 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덜컥 턱에 바퀴가 걸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꾸준한 헬스와 골프로 단련된 몸이거늘. 갑자기 분통이 터진다. “휠체어는 누구나 밀면, 앞으로 가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턱을 올라가는 법을 배우고, 또 뒤로 가는 법을 따로 익혀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가기, 뒤로 가기, 경사로 올라가기 등 한 동작씩 차례로 배우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걱정 된다. 겨우 80m 떨어진 공중 화장실에 다녀 오는 데도 숨이 찬데, 그 번잡한 남대문 시장을 누벼야 한다니, 기가 죽는다.

- "이렇게 불편을 주면서 나와야 해요?"

11시 9분 대방역 앞. 드디어 출동이다. 아니, 그런데 이럴 수가. 번쩍번쩍한 고성능의 전동 휠체어를 탄 이숙자 씨와 홍화선 씨가 한 팀인 나는 챙기지도 않고, 벌써 저만치 앞서간다. 안되겠다 싶어 소리쳤다. “어이! 좀 천천히 가요. 내 껀 손으로 미는 거란 말이에요.”

이제까진 그래도 순조로웠던 우리 일행 앞에 나타난 첫 번째 장애물은 역사 앞 보도의 턱. 종전의 맹연습도 무소용이다. 20cm는 족히 돼 보인다. 앞서가던 이숙자 씨. 휠체어로 이 턱을 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럼 다른 길은 없을까? 다른 진입로를 찾느라 두리번 거리는 사이, 마침 정차해 있던 버스의 운전기사가 다가왔다. “도와줄까요?” 결국, 그 고마운 버스 운전 기사와 행인의 도움으로 일행은 그 턱을 넘어 역사로 들어갔다. 평소 지나다닐 땐 아무것도 아니었던 보도 턱이, 훨체어 탄 우리에겐 이처럼 큰 장벽일 줄을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 개표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60도는 족히 넘어보이는 가파른 경사로에 또 부딪혔다. 휠체어 바퀴를 잡아 브레이크를 걸어도,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으윽, 이게 뭔 도심에서 즐기는 서바이벌 게임?

리프트 타는 것은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런데 속도는 엄청 느리다. 1분이면 걸어서 왕복할 거리를, 2분 30초 만에야 올라갔다. 자장가 같은 음악 소리도 들린다. 아, 졸려라.

드디어 전철을 타려고 대기 라인에 섰는데 화선 씨, 얼굴이 흙빛이다. 화장실에 가고 싶단다. 하지만 전동휠체어가 들어가는 화장실이 어디 있어야지…. 휠체어 탄 장애인은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고 싶을 때 갈 수가 없단다. 외출 때는 목 말라도, 물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인내의 연속이다.

12시 40분. 1호선 서울역에서 환승해 4호선 회현(남대문) 역에 내렸다. 목적지가 바로 저 앞인데, 나갈 수가 없다. 기 막히게도. 엘리베이터는 공사 중이고, 휠체어 리프트는 아예 없단다. 그때 전경들이 달려왔다. 휠체어를 들어서 출구 밖으로 옮겨 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구원군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이렇게 불편을 주면서까지 나와야 하나요?” 이숙자 씨, 눈에 물기가 비치는 것 같았다.

- '도시의 일상'에 그들은 없었다

2시 30분, 남대문.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좌판에 널린 가지 가지의 상품들이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숙자 씨의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럽? 대한민국 아줌마는 역시 다르다. 각종 나물을 파는 좌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취나물 5,000원, 두릅 1만원을 주고 사서 휠체어에 싣는다. 게다가 시동생 갖다 준다며 2만 3,000원을 주고 곤색 운동복도 한 벌을 구입한다. 본인이 입을 옷은 단 돈 3,000원짜리 연보라색 니트로 만족하면서.

점심 식사는 좌판의 우동과 김밥으로 대충 때웠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번듯한 식당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전동 휠체어가 들어갈 식당을 찾는 게 또 여간한 일이 아닐 것 같다. “가끔 나오고 싶었는데, 막상 와보니 정말 장애인은 오기 힘든 곳인 것 같아요. 이젠 그냥 동네 쇼핑이나 다닐래요.” 이숙자 씨가 담담하게 말한다.

그 말대로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었던가. 대방역에서 출발, 서울역에서 환승, 휠체어 리프트가 없어 다시 서울역으로 유턴. 장애인용 편의시설을 찾아서 돌아 돌아 오느라, 참으로 많은 시간이 허비됐다. 때문에 몸은 천근만근. 쇼핑 의욕은 사라진 지 오래다.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온다. 몸보다 마음은 더 아프다.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 행인들과 부딪힐 때면 “아! 뭐야”라며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남대문에서 돌아올 때 보았던 이숙자 씨의 눈물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휠체어를 사용하진 않지만,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외숙모와 외삼촌 생각에 마음이 더 울적해 진다. 사나이가 눈물을 보여선 안 되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좋은 일 한다니까 나선 것인데, 실제 장애 체험을 부딪혀 보니 막 화가 나려고 해요. 지하철 타고 쇼핑하는 이런 일상적인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정말 갑갑합니다. 앞으로 장애인들 만나면요? 당연히 가장 먼저 달려 가야죠.” 김씨의 다짐이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4-22 15:05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