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는 기본, 화장품·비누·속옷까지 유기농 바람웰빙라이프 확산, 부유층 전유물 인식 많이 사라져

[르포] 유기농 미시족의 하루, 입과 몸의 '아깝잖은' 호사
먹거리는 기본, 화장품·비누·속옷까지 유기농 바람
웰빙라이프 확산, 부유층 전유물 인식 많이 사라져


극과 극은 통한다던가. 두메산골 오지에 사는 촌부와 도시문명을 즐기고 사는 미시족은 이제 적어도 먹거리 측면에서 점점 닮아가고 있다. 이유는 이른바 ‘웰빙’ 열풍 때문이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저소득층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지만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웰빙 바람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최근 설문결과에 의하면 20~30대 직장인의 26%가 자신을 ‘웰빙족’으로 생각한다는 결과까지 나올 정도다. 지금까지 웰빙라이프의 상징은 무공해를 앞세운 유기농 먹거리였다. 웰빙족이 증가하면서 이제 유기농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바르고, 입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유기농 미시족’을 자처하는 한 30대 여성의 하루를 동행해봤다.

- 요가로 몸 푼뒤 그린식탁에 앉아

아침 6시30분 : 웨딩플래너인 강다연(35)씨는 휴대폰의 경쾌한 모닝콜 음악에 잠을 깨며 하루를 시작한다. 기상과 동시에 그는 아파트 거실에서 가벼운 제자리 걷기를 한다. 몸이 풀리고 나면 최근 구입한 요가 비디오를 시청하며 아직은 어설프지만 초보 요가자세를 하나씩 집중해 따라 한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운동에 싫증을 느끼지 않는 비결. 30분 정도 요가를 한 후엔 아침식사 준비에 나선다.

아침 7시20분 : 강다연씨의 아침 식탁은 그린식탁이다. 유기농 야채 샐러드와 유기농 씨리얼과 우유 한잔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공복을 채운다. 강씨는 7살짜리 딸을 위해 가끔은 우유를 유기농 두유나, 주스로 대체한다. 자칭 타칭 ‘유기농 미시족’으로 불리며 어느새 ‘유기농 전도사’가 돼버린 강씨는 유기농 먹거리가 단순하다는 생각은 큰 오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 유기농 하면 야채 정도만 생각하는데 이유는 우리나라가 아직은 유기농 도입 단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의 수입품이라는 점이 안타깝긴 하지만 유기농 먹거리는 이미 과자에서부터 밀가루, 올리브 기름 등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아침 7시40분 : 욕실로 들어간 강씨는 비누와 샴푸 등을 하나씩 보여준다. 모두 유기농 제품이란다. 비누는 마치 불순물이 섞인 빨래비누 모양으로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번 써보면 효과를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비누는 못쓴다고 말한다. 유기농 비누의 장점은 탁월한 보습 효과. 일반 비누는 물에 잘 씻기지 않지만 유기농 비누는 전혀 그런 점이 없단다. 강씨는 특히 아토피성으로 고생하는 아이가 있는 집은 반드시 유기농 비누와 샴푸를 사용해야 한다며 경험상 얻은 자연 건강론을 펼쳤다.

아침 8시05분 : 유기농 화장품으로 간단히 기본 메이크업을 마친 강씨는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여자가 아름다워지기 위해 화장을 하는 것은 기본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그는 온갖 독성물질과 화학약품이 뒤범벅된 기존 화장품은 결국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마저 단축시킨다고 지적한다. 모공을 숨막히게 하고 화장독을 앓아가면서까지 인공미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강씨의 유기농 라이프는 웨딩홀 근무를 마친 퇴근 후까지 바쁘게 이어졌다.

- 가족건강 위한 투자

오후 5시30분 : 직장을 나선 강씨가 차를 몰고 부지런히 향한 곳은 압구정동 H백화점 지하 식품매장. 이곳엔 아예 ‘유기농하우스’라는 테마로 유기농 전문식품들만 모아놓은 전문 코너가 마련돼 있어 유기농 열풍을 실감하게 했다. 일주일분 장을 보는 강씬?눈길과 손길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건강을 생각하는 진지함이 그대로 배여 있었다.

“유기농 상품의 가격이 다소 비싼 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남자들이 밖에서 거나하게 술 한번 먹는 돈을 생각해 보세요. 온가족 건강을 위한 투자치고는 무리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기농 쇼핑이 끝났다. 다양한 유기농 상품으로 채워진 강씨의 쇼핑수레를 계산대에서 살펴봤다. 유기농 브라질산 원두커피 4만7,000원, 유기농 쿨과일 디저트 1만8,000원, 발아통밀 롤빵 3,500원 등등. 강씨는 일주일 동안 소비할 다양한 유기농 먹거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장바구니에 담았다.

오후 6시30분 : 10분 정도 운전을 한 뒤 강씨가 도착한 곳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문을 열었다는 압구정동 O유기농 피자하우스. 이곳은 밀가루에서부터 토핑 재료까지 모두 유기농만을 사용한단다. 오씨 익스클루시브 프리미엄 라지 피자 한판을 구입한 뒤 강씨는 집으로 향했다.

주 1회 쇼핑하는 날 미처 챙기지 못한 유기농 상품을 강씨는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다고 한다. 최근 유기농 관련 쇼핑사이트들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상품의 종류와 질, 가격 등을 꼼꼼히 비교해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무래도 수입제품들이 많기 때문에 쇼핑사이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유기농 대중화는 이미 시작됐다

인터넷쇼핑몰(www.dailyorganics.co.kr)을 운영하고 있는 (주)신한에스엔씨의 마케팅담당 이사 김경호씨(36). 그는 "현재로서는 유기농 대중화에 어려움이 많지만 앞으로 특별한 대안이 없는 한 유기농 라이프족은 늘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21세기 사회에서 웰빙을 모토로 한 건강 이상의 화두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씨가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부분은 유기농 속옷. 남보다 속살이 민감한 그녀는 그동안 새로 산 속옷을 입을 때마다 장기간 피부트러블로 인해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기농 속옷을 입은 뒤부터는 고통으로 인해 해방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기농이 좋다고 하지만 저도 제일 많이 고민한 게 속옷이었어요. 유기농 순면으로 만든 여성용 팬티 한 장이 보통 5만원 안팎이거든요. 유명 브랜드 속옷 값과 비교하면 결코 비싼 건 아니지만 사실 주부입장에서 선뜻 사기 쉬운 가격도 아니었죠. 하지만 남에게 말도 못하고 고생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결심했죠."

유기농 순면이란 3년 이상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밭에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된 면을 말한다고 한다. 유기농 순면은 역시 화학처리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촉감이 부드럽고 연약한 피부에 안심하고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기농 순면제품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언론의 철퇴를 맞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한 방송사의 뉴스에서 수 십 만 원대에 이르는 아기 기저귀 세트를 부유층의 호화생활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유기농 순면 관련 제품을 수입하는 한 회사의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오해를 풀고 싶다고 항변한다. 유기농 순면이 부유층 전유물이 아니란 것이다. 그는 “아토피가 심한 아이를 위해 평범한 가정도 이민까지 가는 세상이다.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는 값과 비교하면 세탁해서 사용할 수 있는 유기농 순면 기저귀는 사실 꼭 비싼 값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기농 열풍은 라이프 스타일이 선진국형으로 변해 가는 한국사회에서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가벼운 경제력으로도 건강한 삶까지 챙길 수 있는 해법은 없는 것일까.

황영석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4-27 22:09


황영석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