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와 열정으로 꿈과 춤을 함께 추어요"볼거리, 탈거리 천국에서의 또다른 재미 '8등신 외국인 퍼레이드'화려한 무대매너와 쇼로 나들이객 사로잡는 벽안의 배우들

롯데월드 러시아 배우의 '한국에서 살기'
"끼와 열정으로 꿈과 춤을 함께 추어요"
볼거리, 탈거리 천국에서의 또다른 재미 '8등신 외국인 퍼레이드'
화려한 무대매너와 쇼로 나들이객 사로잡는 벽안의 배우들


다정한 모습의 연인부터 아빠 무등타고 엄마 손 꼭 잡고 출동한 가족까지, 완연한 봄을 맞은 놀이공원에는 화창한 날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놀이공원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의 하나는 푸른 눈과 금발의 늘씬한 8등신 외국인 배우들을 볼 수 있는 ‘퍼레이드 쇼’.

‘ 돈만 밝히는 무식한 딴따라’ 라는 러시아 배우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편견과는 달리, 롯데월드에서 활동중인 러시아인의 60~70%가 놀랍게도 대졸자다. 그 나머지도 예술학교 출신으로 나름의 일가견을 갖춘 사람들이다. 춤과 공연에 대한 열정으로 낯선 한국땅까지 날아 왔다고.

따찌아나(24), 알렉산드르(24), 올가(27), 나딸리야(21). 화려한 무대 매너와 외국인 특유의 끼로 롯데월드를 찾은 나들이객을 사로 잡고 있는 러시아 재주꾼들이다. 이들과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경력 8년차의 한국 연기자 강유선(29)씨를 만나 공연 중 에피소드와 이들의 한국 생활을 들어 봤다. 통역에는 김학현(주식회사 한루 실장)씨가 수고해 주셨다.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알렉산드르: 개인 스케줄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1시나 12시에 출근한다. 퍼레이드 2번, 퍼레이드 사이에 간단한 쇼 3번 정도, 이렇게 적어도 매일 5번은 공연을 갖는다. 공연 틈틈이 개인 연습을 계속해야 하고, 팀 연습도 있다. 하루가 연습으로 시작해 연습으로 끝난다고 보면 된다.

나딸리야: 1주일에 6일 근무하고 하루를 쉰다. 현재 공연중인 ‘ 월드 카니발 페스티발’처럼 새로운 쇼를 시작하기 전에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 야간 개장으로 보통 공연이 밤 11시에 끝나는데, 연습에 쫓기다 보면 새벽 2~3시에 귀가할 때도 있다.

스케줄이 상당히 빡빡한 편인데 특별한 체력관리법이 있나.

나딸리야: 비타민을 먹으며 피로를 푸는 편이다. 시간이 나면 러시아 음식으로 원기를 충전하기도 한다. 보르쉬(스프)를 가끔 해먹는데, 한국의 환경이 러시아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맛은 나지 않아 그냥 흉내만 낸다.

올가: 한국의 요구르트를 식사 후에 즐겨 먹는다. 요구르트를 마신 후부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나서, 춤을 출 때 훨씬 수월해졌다는 생각이다. 나도 나딸리야처럼 러시아 음식을 가끔 해먹는다. 깔바사(러시아 소시지)를 만들려고 애써보지만, 잘 안 된다.

강주연: 특별한 체력 관리법은 없다. 연습이 많아서 피곤한 것은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연습도 운동이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웰빙’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무대에서 우리의 공연을 기대하고 있는 관중들의 시선을 볼 때 피곤함이 싹 사라진다.

러시아 출신 배우들은 어렸을 때부터 춤을 익혔기 때문에 유연성이 좋고 기본기가 뛰어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춤이 필요한 각종 공연에서 이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꼭 필요한 존재다. 롯데월드는 이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1년 이상 한국에 머무르는 배우의 경우, 부모를 초청해 향수를 달래 주기도 한다. 또한 이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통역을 두어 이들의 애로 사항을 귀담아듣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런 배려는 결국 활력 넘치는 완벽한 공연을 위한 투자인 셈이다.

공연하다 보면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

올가: 한번은 할머니ㆍ할아버지 단체 관광객들이 왔는데, 퍼레이드 도중 관객과 함께 춤을 추는 코너에서 어르신들이 춤을 추는데, 춤 모양이 똑같아서 무슨 춤인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춤이 한국 중년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버스 춤‘ 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들었다.

알렉산드르: 쇼 하는 도중에 너무 흥이나서 구경하는 여자 관객을 껴 안은 적이 있다.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그 여자분이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빨개져 공연이 끝나기 전에 나가더라. 그 다음부터는 절대 한국 여자 관객과는 포옹하지 않는다.

■ 짧은 치마 "뚫어지게 보진 마세요"

나딸리야: 나이 어린 꼬마들이 공연 도구를 뺏으려고 하거나, 치마를 들추는 경우가 많다. 특히 꼬마들과 같이 온 엄마들이 사진 찍자고 끌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퍼레이드 대열을 이탈할 수도 없고 참 곤란하다.

따찌아나: 퍼레이드 공연의 특성상 짧은 치마를 입을 때가 많다. 가끔 아저씨들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느끼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이 나를 더욱 열정적으로 만든다.

강유선: 지난 겨울 야외 퍼레이드 도중 미끄러진 적이 있다. 경력이 많은 내가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관중들이 “괜찮아요”를 외치며 박수를 쳐줘서 감동한 적이 있다.

미남미녀라 인기가 많을 거 같은데 팬 클럽 같은 것도 있나.

올가: 아무래도 언어가 달라서 의사 소통하기 힘 든 탓에 팬 클럽은 없다. 가끔 휴일에 외출할 때 롯데월드에서 퍼레이드하는 배우 아니냐고 반갑게 물어오면서 사진을 찍고 사인을 부탁하는 분들은 있다.

강주연: 한국 공연배우들 중에도 개인 팬클럽이 있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글을 남기는 편이다.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을 하고 때로는 애정 어린 칭찬도 해준다. 그들의 관심이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된다.

휴일에는 주로 무엇을 하나?

나딸리야: 산책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집에서 가까운 올림픽 공원에서 산책을 자주 한다. 한번은 어떤 남자가 따라 오면서 영어로 대화를 걸어왔는데, 내가 러시아 말을 하자 그냥 돌아 가더라.(웃음)

알렉산드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휴일이면 서울 이곳 저곳을 동료와 함께 돌아 다닌다.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국립 중앙 박물관, 인사동 그리고 경복궁이다.

따찌아나: 나도 한국 여행을 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한국 생활이 적응이 안되서 외출하지 않고 주로 집에서 쉬는 편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며 러시아 동향도 파악하고, 친구들에게 전달 받은 러시아 인기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있다.

올가: 아무래도 한국 생활을 오래 해서 휴일에는 외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한국에서 2년 동안 생활한 만큼 가본 곳도 많고, 아는 곳도 많다. 남산타워는 서울의 전경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명동은 사람들의 활발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코엑스에 처음 갔을 때는 헤메다가 길을 잃은 적도 있다.(웃음)

■ 김치와 김 맛이 최고, 술은 역시 보드카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나

올가: 김을 좋아한다. 러시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아주 색다른 맛이다. 공연 시간에 식사할 틈이 없으면 김으로 때우는 적도 있는데, 밥 먹는 것처럼 든든하지는 않아도, (김 덕분에) 공연중 힘이 빠지지는 않는 것 같다.

알렉산드르: 의아해 할지 모르겠지만 김치가 좋다. 처음 6개월 동안은 김치를 거들떠 보지 않았지만, 라면 먹을 때 김치 곁들이는 맛이 일품이다. 컵라면의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다양해서 컵라면도 즐겨 먹는 편이다.

나딸리야: 난 삼겹살을 좋아한다. 인사동에 갔을 때 먹어 봤는데 담백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따찌아나: 소주 마셔 봤는데 밍숭맹숭했다. 쓴 맛이 나서 원샷하기도 그렇고 여러 번 나눠 마시기도 곤란하다. 차라리 보드카 원샷하는 게 낫다.(웃음)

롯데월드 공연팀 최영호씨에 의하면 러시아 배우들은 보통 회사에서 마련해준 40평 정도의 회사근처 아파트에서 5명정도가 팀을 이루어 생활하기 때문에 휴일에도 하우스 메이트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외국인 배우들의 숙소는 놀이공원과 가까운 위치로 정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회사측에서는 이들을 좀더 손쉽게 관리(?)할 수 있고, 관광비자로 입국해 6개월 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배우들도 집을 임대하기가 현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배우들의 이동 거리를 짧게 해 공연외적인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는 현실적 이유가 크다..

한국생활을 하면서 애로사항도 있을텐데.

나딸리야: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기는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올 때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전화를 자주 해도 부모님이 보고 싶다.

올가: 한국에 온지 2년이 됐지만 한국말은 너무 어렵다. “ 괜찮아요”, “ 아파요”, “ 배고파요” 등 간단한 말은 할 수 있지만, 불편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말을 배우려고 한국 TV도 가끔보는 편이다. 그런데 너무 어려워서 케이블 음악 채널만 즐겨본다.(웃음)

한국 사람들의 독특한 특징이 있나.

나탈리야: 미남미녀가 뮌?것 같다. 특히 잘 생긴 남자가 많다(웃음). ‘ 천국의 계단’ 촬영 때 권상우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핸섬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떠나기 전에 권상우를 한 번 만나고 싶다.

까딸리아: 한국 남자들은 러시아 남자들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다. 퍼레이드 공연 도중에 서로 손을 잡고 있는 연인들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 남자들이 매우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올가: 한국사람들은 정이 많은 것 같아 그 모습이 보기에 좋다. 젊은 부부가 자녀, 나이든 노부모와 놀러 왔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러시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롯데월드의 외국인 배우들을 대표해 관람객들에게 하고픈 말은.

올가: 내가 한국에 처음 왔던 2년 전과는 관람객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무뚝뚝하게 우리가 공연하는 쇼나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오히려 이제는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즐기고 있다. 우리 공연팀들은 관람객들이 많으면 더 힘이 나는 체질이니까 사랑하는 연인끼리, 가족끼리 많이 오셔서 우리의 공연을 지켜 봐 달라.

홍창기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04-27 22:36


홍창기 인턴기자 ck7024@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