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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25시] 이원철
운명적 춤과의 사랑, 그에게 안기면 '숲속의 미녀'
본능적으로 춤추던 아이, 한국 최고 발레리노로 성장


소년은 춤을 춘다. 빙글빙글 도는 모양이 범상치가 않다. 고개를 들고 목을 쭉 편 채 팔을 들어올리는 모양새가 타고난 춤꾼이다. 시선은 늘 먼 곳을 향한 채...

유치원 시절 학부모와 함께 춤추는 시간. 소년은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아들의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는 예사롭지 않은 아들의 동작에 소름이 끼친다.

‘이 아이는 본능으로 춤을 추는 거야. 아이의 운명인지도 몰라.’

소년은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생이 된다. 바이크와 스포츠카 사진이 도배된 방에서, 모형 자동차를 조립하며 카 레이서나 제복을 입은 소방관을 꿈꾸던 소년은 다른 아이들과 별다를게 없는 평범한 삶을 산다. 아들의 성장을 관찰하던 어머니는 어느날 아들의 손을 잡고 발레 교습소를 찾아간다. 아들과 춤을 추던 때 받았던 강렬한 느낌 하나만으로 말이다.

“이 아이를 발레리노로 만들고 싶은데요.”






- 한국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혜성처럼 나타난 발레리노. 고속출세. 한국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모두 발레리노 이원철(25)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의 이런 배경 뒤엔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해주던 그의 어머니가 있다. 그의 어머니의 지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눈물겹다고.

“공연 때 입을 의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시장에 가서 천을 구해다가 손수 옷을 만들어 주셨어요. 항상 당신이 제 무용복을 만들어 주거나, 디자인을 골라주셨죠.”

지금도 지방 공연까지 따라와 보신다는 어머니. 공학박사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학자가 되기를 바랬다고 한다. 대대로 학자 집안에서 발레하는 아들은 용납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완강했다. ‘이 아이는 발레에 천부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다’ 고 주장했던 것이다.

“영화 투게더를 보면 눈물이 나요. 아들을 천재 바이올린리스트라 믿는 아버지를 보면 꼭 저의 어머니를 보는 것 같고, 주인공이 꼭 저 같아서, 보면서 눈물 많이 흘렸어요.”

이원철이 발레를 그만 둘 뻔한 사건이 있었다.

“발레교습소에 저 혼자만 남자인 거예요. 사람들이 놀리기도 하구, 내가 이걸 꼭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 때였죠. 6개월 다니다가 그만 두었는데, 어머니가 ‘백야’라는 비디오를 빌려오셨어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그때 처음 보았죠. 신들린 듯 멋지게 회전 연기를 하는 모습에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12살짜리 소년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백야’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이원철을 황홀감에 빠트렸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라는 간절한 생각에 다시 발레를 시작한 이원철.

선화예중을 한 학기 다닌 이원철은 영국에서 온 쥬디라는 선생을 만나고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이 학생은 한국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라는 예언 같은 말을 듣고 이원철은 미국 워싱턴 키로프 아카데미(1993)에 들어간다.

"전 그때 겨우 13살이었어요. 언어도 통하지 않았고 친구도 없어서, 처음엔 외로워서 울었어요. 한국에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는 약한 마음을 가진 저를 오히려 엄하게 꾸중하셨고, 참으라고 하셨어요. 그때 참지 못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는 거죠.“

이원철이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건 바로 회전 연습이었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처럼 되기 위해 유학을 간 그였다. 유학 2년 만에 ‘꽃의 축제’에서 주역을 맡았다. 그리고 6년이란 유학기간 동안 ‘한국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라는 칭호를 듣게 된다.

- 완벽한 회전연기, '지젤'로 두각

“뿌듯했죠. 6년 동안 회전 연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회전연기에 몰두했어요.”

이원철을 기본기 탄탄한 무용수라 일컫는 것은 바로 그의 연습태도 때문이다. 한가지를 완벽하게 해결하지 않고는 다른 동작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그는 집요한 구석도 있다. 그래서 그의 춤은 누구보다 정확하고 깔끔하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에 오기 싫더라구요. 친구도 많이 사귄대다가 절 인정해주는 선생님도 있었구요. 하지만 내 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역으로 저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응한 곳에서 편하게 안주하고픈 생각이 강하게 들 때 서둘러 귀국했어요.”

한국예술 종합학교 4학년때 <호두까기 인형>에서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할리퀸’ 역할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국립발뭅丙?인연을 맺은 이원철은 2002년 졸업과 동시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한다. 이원철이 한국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존재를 두각시킨 것은 바로 지젤(2002)에서였다. ‘페전트 파드되’라는 역할은 조역에 불과했지만 1막에서 그는 단연코 눈에 띄었다. 관객을 사로잡고, 무대위의 동료들을 매료시키고, 관계자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10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2004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지 2년만에 이원철은 수석무용수의 위치에 오른다.

“고집쟁이 딸에서 콜라스 역할을 맡았어요. 캐릭터가 저와 잘 맞아서 재밌게 공연했던 기억이 나요. 드라마가 있는 발레 또 하고 싶어요. 연기하는 거 무척 재밌더라구요.”

‘고집쟁이 딸’(2003)을 기억할 것이다. 이원철은 ‘고집쟁이 딸’에서 리즈를 따라다니는 시골청년 콜라스 역을 맡았다. 콜라스와 이원철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개구쟁이에다 철부지, 풋풋함이 묻어있는 순진무구함까지. 영리한 리즈로 분한 선배 김주원과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며, 잘 어울리는 커플로 인정도 받았다.

이 순진한 시골청년은 리즈와 사랑을 이루고 2004년 5월 8일부터 시작하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왕자(데지레) 로 신분상승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느 역할을 하든, ‘이원철과 잘 맞는다’ 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앞으로의 꿈도 내 나라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무용수가 되어 세계서도 알아주는 발레리노가 되는 거죠. 그것이 제가 한국에 온 이유예요.”

- 무대 휘어잡는 젊음과 파워

이원철,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친한 동생 같고, 말 잘 듣는 후배 같은 그는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지만 발레를 이야기 할 때 만큼은 눈빛부터 다르다. 일단 친해지면 속내를 털어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그. 무대위에서 그는 결코 순진하지 않다. 그의 아름다운 춤을 보면 발레리나가 되어 그와 함께 춤을 추고 싶어진다. 6년 동안 갈고 닦은 회전연기와 무대를 휘어잡는 젊음과 파워는 이원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선물’이다.

춤을 추자. 셀 위 댄스나 바람의 전설 속의 주인공처럼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출까.

아니면,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왕자님을 만나러 가볼까. 왕자님이 당신에게 춤을 신청할지도 모른다.

5월, 이원철이 준비한 ‘선물’을 받으러 예술의 전당으로 가보자.



유혜성 기자 cometyou@hanmail.net


입력시간 : 2004-05-1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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