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대중화시대중산층 겨냥한 중저가 명품, 디자인·품격 등도 명품에 손색없어

참을 수 없는 錢의 부족함 '매스티지'로 욕구충족
명품 대중화시대
중산층 겨냥한 중저가 명품, 디자인·품격 등도 명품에 손색없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서울 신촌의 한 백화점. 어버이날인 지난 토요일 오후, 층별 매장마다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1층에 자리한 명품 화장품, 악세서리, 패션잡화 코너와 2, 3층 여성 의류 매장이 일제히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주머니는 가볍지만, 구매력이 있는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명품 브랜드 하나 정도는 갖고 싶지만, 값비싼 명품을 구입하기에는 만만찮은 가격이 부담되고, 그렇다고 싸구려 제품을 쓰기엔 격이 떨어지는 것 같고…. 이러한 욕구에 맞춰 등장한 것이 '매스티지'(masstige)다.

디자인과 품질의 차별성을 원하면서, 고급 명품을 구입하기에는 부담을 느끼는 중산층. 따라서 품질과 브랜드는 명품 이미지를 갖추면서 합리적인 가격대로 중산 소비자 층을 공략한,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등장했다. 불경기에 맘껏 소비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렇다고 질 낮은 싸구려 제품은 싫어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고 든 '중저가 명품'이 떠오른 것. 바로 '매스티지'다.

‘매스티지’(masstige)란 대중을 뜻하는 매스(mass)와 특권이라는 의미의 프레스티지(prestige)가 합쳐진 말로, 비교적 좋은 품질을 유지하면서 중산층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말한다. 즉 '준(準)고급'의 컨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백화점들은 다양한 중저가 명품 브랜드를 속속 입점시키고 있으며 브랜드 할인행사를 통해 젊은 층과 중산 소비자 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중저가 명품은 일반적인 국내 브랜드보다는 비싸지만, 고급 명품보다는 훨씬 저렴하면서 캐주얼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요즘 소비자들은 품질과 자부심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이러한 '준명품'을 선호하고 있다. 즉 '명품의 대중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가격대가 저렴해야만 합리적인 소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점차 '가격보다는 만족할 만한 제품 소비가 합리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가격은 합리적이면서 높은 품질에 자부심도 가질 수 있는 제품을 찾고 있는 것. 어떻게 보면,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웰빙 트렌드와도 무관하지 않다. 즉, 물건 하나를 소비하더라도 '자신의 감성에 충실한 자기 만족 성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저렴하면서도 감성적 만족 얻는 제품 선호

신촌 현대백화점 지하 2층 영플라자는 이런 매스티지 제품의 총판이다. '놀라운 가격, 놀라운 품격'을 내세우며 iSSAC, ZOOC, EnC, NIX, 톰보이 등 젊은층에게 인지도가 있는 준명품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 돼 있다. 또한 지하철 입구 쪽에 상설 할인 판매 매장을 두고 젊은이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곳에선 GUESS, EnC, 쌈지스포츠 등 준명품 브랜드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로 붐비고 있는 이곳 매장의 자켓 가격은 5만원에서 10만원, 티셔츠 종류는 2만원에서 5만원, 바지는 3만원에서 6만원대까지 대부분 10만원 미만대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백화점에서 하는 할인행사를 자주 이용한다는 20대 직장인 문모 씨는 "원하는 디자인이나 품질이 동대문 등에서 파는 옷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며 "맘에 든다면, 가격이 좀 되더라도 품질이 좋은 브랜드 상품을 고르는 것이 더 실용적"이라고 말했다.

갤러리아 백화점의 경우 2~3개에 그쳤던 숙녀복 중저가 명품 브랜드가 현재 10개를 넘었다. 신세계 백화점도 강남점을 확장하면서 제이콥스, 미우미우 등 중저가 해외 의류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유통업계는 계속 이러한 중저가 수입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입점시키고 있는 추세다. 고가의 명품 소비는 줄어들고, 준 명품 브랜드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매스티지가 최고급 명품 브랜드와 국내 브랜드 사이의 틈새를 메워주고 있는 셈이다.

- 트렌드에 뒤지지 않으려는 심리

매스티지는 가방과 의류 같은 패션잡화뿐만 아니라 식품, 가전제품, 가구, 건강용품, 애견용품 등 산업 전반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의 유명 주얼리, 시계, 외식업계 등에서도 준고급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백화점 코너 매장에서는 수만 원부터 몇 십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 다양한 디자인의 반지, 귀고리, 목걸이, 시계 등을 대거 내놓고 명품 악세서리를 갖고 싶어하는 중산층의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또한 고급 컨셉을 표방하는 레스토랑 등도 저렴한 세트 메뉴를 내놓아 가족 단위의 고객과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천연화장품 업체인 바디샵과 세계적인 커피 체인점인 스타벅스도 매스티지의 대표적인 예. 바디샵 제품은 자체 매장에서만 판매하고 품질이나 가격도 기존 제품보다 약간 비싸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제품과는 차별적인, 고품격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타깃이다. 스타벅스는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다국적 체인점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와 카페보다 저렴한 가격에 전문화시킨 다양한 커피 메뉴로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엔 정통 명품 브랜드가 매스티지 제품으로 분화한 경우도 있다. 이태리 명품인 조지오 아르마니의 하위 브랜드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의 경우, 바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10만원대로, 젊은 층이 많이 찾고 있다. 여기에 버버리, 구치 등도 지역에 맞게 가격 대를 조정하면서 대중적인 명품 시장을 넘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매스티지 제품이 각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점차 강해지는 개인 성향과 중산층의 소득 수준의 상승을 들 수 있다. 또한 웰빙을 비롯한 사회의 각종 트렌드 현상에 편입하여 시대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한 기업들의 발 빠른 마케팅 전략도 한 몫 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 간의 경쟁심리와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현대인들은 점점 더 삶의 질을 높이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주희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5-19 20:36


허주희 객원기자 cutyhe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