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법무장관, 송광수 검찰총장과 힘겨루기서 판정승수사분야 약화·법제도 개선에 초점, 검찰개혁 급물살 시각도

검찰인사, 强장관 뜻대로?
강금실 법무장관, 송광수 검찰총장과 힘겨루기서 판정승
수사분야 약화·법제도 개선에 초점, 검찰개혁 급물살 시각도


“역시 장관의 힘이 총장보다 더 세”.

5ㆍ27 검찰 인사에 대한 검찰 안팎의 평이다. 이번 검찰 인사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검찰 인사의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의 힘겨루기다. 결과는 양쪽 모두 강 장관의 판정승이라는 분석이다. 인사 방향과 관련, 지난해 2월의 파격적 인사와는 달리 검찰 관행을 중시한 ‘무난한 인사’였지만 내용은 수사 분야가 약화된 대신 법 제도 개선과 검찰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강 장관의 입장이 관철됐다는 평가다.


- 대부분 강 장관 의중대로

강 장관과 송 총장은 지난 1년여 동안 검찰 개혁의 주체와 방향을 놓고 전쟁을 해 왔다. 요체는 검찰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것이었다. 강 장관은 지난해 9월 ‘검찰 조직 개편과 인사 제도 개혁’을 중심으로 한 검찰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 골자는 윗부분(대검)이 비대하고 중간 허리가 빈약한 채 다시 하부가 넓어지는 기형적(모래시계형) 검찰구조를 개편해, 대검은 검찰 정책 수립과 감독 기능을 맡고 중간 이하 일선 검찰이 독자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선진형 피라미드 구조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대검의 수사 권한을 축소하고 일선 검찰에 실질적 수사권을 이양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송 총장은 검찰 구조 개혁이나 인사 개편보다 검찰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제대로 수사를 하는 ‘검찰의 독립성’에 비중을 두고 현행 제도를 유지 내지 강화하자는 입장이었다.

이번 검찰 인사에서는 대검 형사부와 공판부의 기능을 강화해 감시ㆍ감독 기능을 강조한데 반해, 특수 수사에 대한 검찰의 인력과 기능을 축소하는 등 강 장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 검찰 수사의 핵심인 서울중앙지검장에 법무부 기획실장과 대검 기획조정부장ㆍ법무부 검찰2과장 등을 지낸 ‘기획통’인 이종백(17회) 법무부 검찰국장을 임명하고, 행정ㆍ기획에 뛰어난 임채진(19회) 춘천지검장을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에 배치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 대검 기획부장에 문성우(21회) 서울중앙지감 2차장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에 김회선(20회) 서울서부지검장을 앉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불법 대선 자금 수사의 주역인 안대희(17회) 전 중수부장은 수사실권이 없는 부산고검장으로 옮겨갔다.

강 장관과 송 총장의 힘겨루기에서도 강 장관의 뜻이 대부분 관철됐다. 초미의 관심이었던 안대희 중수부장의 경우, 송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중용하고 싶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 장관과 송 총장이 인사와 관련해 막판까지 진통을 겪은 데는 안 중수부장의 거취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에 노무현 대통령의 사시 17회 동기이자 법무부 소속인 이종백 검찰국장이 임명돼 강 장관이 판정승한 셈이 됐다..

또한 대검 중수부장 자리를 놓고 강 장관과 송 총장 간에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송 총장은 정치권에 대한 계속 수사를 위해 문영호 대검 기획조정실장을 원했는데 강 장관은 수사를 원만히 마무리하고자 박상길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의중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중수부장에 박 기획실장이 임명돼 강 장관의 뜻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검찰총장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대검 형사부장에 이훈규(20) 서울남부지검장이 임玆?것은 강 장관이 송 총장에 확실한 각을 세운 모양새다. 이 형사부장은 강 장관이 추구하는 검찰개혁의 배후 인물로 알려진 ‘최측근’으로 지난해 10월 그에 대한 인사문제를 놓고 강 장관과 송 총장이 팽팽히 맞서 강 장관의 뜻이 관철된 적이 있다.


- 송 총장 사람들 대부분 ‘물 먹어’

지난 1년여 간 강 장관과 송 총장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송 총장 사람으로 분류된 간부들이 이번 인사에서 ‘물 먹은’ 것도 강 장관의 우위를 반영한 단면들이다.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사법처리와 관련해 강 장관은 불구속 기소를 검토했지만 검찰은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시켰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박만(21회)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이번 인사에서 승진 1순위였지만 누락됐다. 지난 3월 26일 촛불 시위 관련 인사에 대한 체포 영장 청구 과정에서 빚어졌던 강 장관과 송 총장의 갈등을 놓고 볼 때, 법무부 보고 없이 영장청구를 집행한 홍경식(18회) 대검 공안부장이 의정부지검장으로 전보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검찰 인사를 앞두고 강 장관과 송 총장은 세 차례 회동을 통해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徨蠻愎? 송 총장의 한 측근은 “(검찰인사에)총장의 의견이 70% 이상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표면적으로 서열을 중시한 검찰 관행이 반영됐는지 몰라도 내용적으로는 강 장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게 중론이다.

▣ 사시17회ㆍ부산고 약진, 노심(盧心) 반영?

5ㆍ27 검찰 인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시 17회 동기의 전면 배치와 부산고 출신들의 약진이다. 그래서 검찰 일각에선 이번 인사를 놓고 “ ‘ 노심(盧心)’이 반영됐다”, “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강 장관의 작품”이란 얘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사시 17회의 경우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종백 법무부 검찰국장이 임명된 것을 비롯해 5개 고검장 중 대구ㆍ부산 고검장을 정상명 법무부 차관ㆍ안대희 중수부장이 차지했다. 신임 이 서울지검장과 정 대구고검장은 사법연수원 시절 노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 ‘8인회’ 멤버들이다.

이 밖에 일선 지검 가운데 규모와 비중이 큰 부산ㆍ광주ㆍ대전지검을 17회의 임승관ㆍ이기배ㆍ유성수 검사장이 각각 이끌게 됐다. 특히 내년 4월로 끝날 현 송광수 검찰총장의 후임자와 관련, 17회는 이번 검찰 인사를 통해 차기 총장으로 가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편 부산고 출신의 약진은 앞서 이종백 서울지검장의 영전을 비롯해 검찰 ‘빅4’ 요직 중 하나인 법무부 검찰국장에 임채진(사시 19회) 춘천지검장이 발탁되고, 법무부 법무실장에 임 검사장과 사시 동기인 안영욱 울산지검장이 자리를 차지한 데서 두드러진다. 대선자금 수사에서 능력을 인정 받은 문효남(21회) 대검 수사기획관도 부산고 출신으로 이번 인사에서 대구고검차장으로 영전했다. 이밖에 황선태(15회) 서울동부지검장, 문영호(18회) 창원지검장 등이 부산고 출신이다.

이에 따라 검찰과 정가 일각에선 청와대 박정규(사시 22회) 민정수석이 부산고 출신으로, 노 대통령의 집권 2기와 때맞춰 부산고 인맥을 통해 검찰을 장악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4-06-02 09:53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