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왕따시키는 예술계의 안티 히어로신세대 천제 아티스트 "그림없는 삶은 죽은 삶"

[감성25시] 강영민
세상을 왕따시키는 예술계의 안티 히어로
신세대 천제 아티스트 "그림없는 삶은 죽은 삶"


나는 열리지 않는 화실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화실은 500원짜리 주화를 넣어야 열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코인을 집어 넣고 나는 ‘ 열려라 참깨!’, 주문을 외웠다. 알리바바와 40명의 도적의 기분을 알 만하다.

기대에 차서 스르르 열리는 문에 성큼 발을 디디니 맥빠지게도 나를 반기는 것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웃는 노락색 다다다다(강영민의 풍자적인 캐릭터)였다. 보물을 기대한 탐욕스런 나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익살맞은 다다다다는 뭐가 좋은지 헤죽거리며 웃기만 했다. 하회탈처럼 말이다. 화실 이름은 바로, 미소.

강영민을 보면 나는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이 생각난다. 그는 유쾌한 반항아 황보래용을 꼭 닮았다. 만화 ‘ 은하 철도 999’를 좋아하는 그는 자신을 외계인이라 철석같이 믿는 좀 이상한 ‘ 천재 아티스트’다. 고등학교 시절, 큰 키에 세련된 외모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그는 한마디로, 날라리였다. 그는 학교 밖에서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아서? 일등으로 하교 하기로 유명한 학생이었는데, 그러면서도 내신 일등급은 절대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기도 했다.

이유는 공부를 잘 해야 여학생에게 인기가 좋기 때문이다. 입시를 앞둔 고3 시절, 제도권 교육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천재는 시험지 위에다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모두 같은 번호로 찍어 버리고 제일 먼저 학교를 빠져 나오곤 했다. 미대 입시생에게 내신 일등급은 사치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삶은 죽은 삶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 천재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신세대 팝아트 작가, 애니메이션 작가, 또는 캐릭터 디자이너, 그리고 벽화 그리는 남자라고.


- 홍대앞 희망시장 전시 기획

강영민, 그가 존재하는 홍대는 언제나 시끄럽다.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주말마다 열리는 홍대거리 예술시장인 희망시장의 전시를 기획했고, 홍대 놀이터에 자릴 잡고서 티셔츠에 그림을 직접 그려 팔기도 했다. 또한 희망시장을 함께 기획했던 황신혜 밴드의 조윤석씨가 마포구 서교동 지방선거에 나갈 때는 프로젝트 ‘ 다’를 기획하기도 했다. 조윤석은 기호 ‘다’ 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홍대 거리는 그로 인해 또 다시 소란스러웠는데, 걸 스카웃(불특정 다수의 특별한 소녀로 이루어진 소녀 단체)과 함께 ‘ 섹시 벰파이어 축제’를 열어 홍대 거리를 피와 열정의 도가니로 물들게 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 가지 않는 길을 당당히 가는 것이 마치 자신의 특기라도 되는 듯, 남들이 예라고 말할 때 혼자 “ 아니오”를 외치고, 남들이 아니오 라고 말하면 그는 서슴없이 “ 예” 라고 외쳤다. 그렇다. 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왕따다.

홍대 회화과를 나온 그는 과를 왕따 시키고, 학교를 왕따 시킨 장본인이다. 엄격한 규율과 권위의 상징인 학교를 상대로 대학 졸업 작품전에 ‘ 전전(戰展)’ 이라는 다분히 안티적인 분위기의 졸업 작품전을 기획했다. 졸업생 10명이 투입되어 만든 졸업 작품전의 반응은 홍대 회화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이 특이한 작가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해 놓고서 일년을 채우지 않고 돌아왔다. 왜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그래서 그의 작품의 캐릭터들의 전체 이름은 안티 히어로이다. 서브웨이 코믹 스트립으로 불린 지하철의 벽화를 기억할 것이다. 을지로 3가역 2, 3호선 환승 통로에 원색의 이미지로 익살스럽게 그려진 캐릭터들, 바로 강영민이 99년도부터 만들기 시작한 그의 분신들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철거의 아픔을 겪고 사라진지 오래지만, 이불맨과 나대로씨, 배고픈 돼熾?서늘한 미인은 아직도 원색의 이미지와 함께 뇌리에서 영상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 당시 그는 벽화를 그리는 남자라고 불렸다.

200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 페이싱 코리아 캔버스 인터내셔널 아트’에 초대를 받은 강영민은 전시회 오프닝에서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해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재현한 퍼포먼스를 실행하기도 했다. 그는 하멜이 실제 제주도에 온 것처럼, 바닥에는 공사장에서 가져온 조개 섞인 모래를 깔고 갤러리 벽면에 화산을 그리고, 하멜이 표착한 휴화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제주도를 완성시켰다. 휴화산의 폭발은 서양과 동양의 이질적인 문명의 충돌을 상징한 것.

그는 갤러리 작품 전시회에서 그치지 않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어, 전시회장을 빠져나감으로 전시회의 원칙을 몸소 깨버린 작가로 더 유명해졌다. 퍼포먼스의 제목은 ‘ 탈출’ 이었다. 350년전 하멜이 조선에서 고국으로 탈출하듯이 말이다. 오프닝 날 전시회장을 탈출한 그는 일주일 동안 암스테르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한다. 네덜란드 현지 신문 예술란에 “ 무대 공포증 없는 남한의 예술가”란 제목으로 그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 소녀 프로젝트에 열중

강영민. 그가 요즘 이상한 조짐을 보인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온통 소녀에 대한 상상으로 일상을 보낸다고 한다. 간혹 땡땡이 무늬 치마를 입어 주변을 폭소하게 만들더니, 이 남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중일까? 그래서 찾아 갔다.

이른바, ‘ 소녀를 위한, 소녀에 의한, 소녀의’ 전시를 기획중이라고 살짝 귀뜸을 해 준다. 역시 소녀전을 기획중이라, 그는 ‘ 올드 보이’의 최민식을 연상하게 하는 긴 머리를 과감하게 자르고, 상큼한 오빠로 재탄생했다. 이 오빠가 하는 말, “ 소녀야말로 이 사회에서 가장 연약하고 나약한 존재라 생각해요.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도 바로 이 소녀죠.”

나르시시즘을 바탕으로 한 소녀의 심리를 낱낱이 공개해 소녀를 세계로 여행 보낼 프로젝트 ‘ 세계 소녀 유람단’을 추진중인 강영민. “ 한국의 소녀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이쁘고 지적이고 잠재력이 있는 존재예요. 그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라고 말한다.

요즘 그는 이 개인전 때문에 소녀와 함께 할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소녀들 틈에 끼어 있는 것이 좋지만은 않은가 보다. 한치라도 소홀하면, 감수성 여린 소녀들은 삐치기 마련이니까. 내겐 어째 행복한 비명으로 들렸다. “ 소녀들과 함께 보내면서 요즘 많이 깨닫고 있어요. 그녀들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새삼 알게 되고부터, 그 동안 사회에서 억눌린 존재가 소녀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들의 잠재 능력은 무한이예요. 하지만 소녀들, 뭉치면 무섭기도 해요. 작고 여린 아이들이 갑자기 막강한 파워를 가진 존재로 돌변하죠.”

소녀들은 삶이 버겁고 불안하고 힘들 때마다 오빠를 부른다. “ 오빠, 세상을 왕따 시켜주세요.” 듬직한 그는 소녀들을 향해 폼을 잡는다. 이 오빠가 돌아왔다! 여름, 인사동 학고재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이 자못 궁금하다.

유혜성 자유 기고가


입력시간 : 2004-06-08 15:52


유혜성 자유 기고가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