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술도 못 막은 20년 새벽사랑주독·담배도 새벽공기에 '훨훨'…또 다른 대작 착수

나의 아침, 나의 삶 <신문수 화백>
대수술도 못 막은 20년 새벽사랑
주독·담배도 새벽공기에 '훨훨'…또 다른 대작 착수


올들어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주도한 ‘아침형 인간’. ‘아침형’이 과연 바람직한 삶일까. 우리 시대 유명 인사들의 아침은 또 어떨까. 연재물 ‘나의 아침’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유명인들의 아침 시간을 엿보는 코너다. 그들 나름의 삶의 철학과 모습, 여유 등에서 인생을 배워보자.

“아침이 주는 신선함, 그 활력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아요”

여명이 서서히 밝아 오는 새벽 5시.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잠을 깬 신문수 화백은 곧장 근처에 있는 사우나로 향한다. 사우나에서 1시간 동안 땀을 빼고 쌓였던 피로를 풀면서 그의 하루는 시작된다.

“새벽부터 땀을 빼고 씻으면 몸이 가뿐하고 기분이 한결 좋아져요. 매일 새벽 5시면 어김없이 가니까, 동네 사우나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어쩌면 아침형이 아니고, 새벽형이라고 할 수 있죠.”

벌써 20년째 여름이건, 겨울이건 사우나에서 하루를 시작한 신문수 화백은 분당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 가락시장역 부근의 화실로 출퇴근한다. 출근시간 약 40분. 전철역 앞의 단골 분식집에서 라면이나 우동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뒤 5분 정도 걸어 화실에 도착하는 시간이 대충 아침 7시. 이때부터 낮 12시까지 신문수 화백이 온 정신을 쏟아 작업하는 시간이다.

“작업은 오전 시간에 집중해서 끝내는 편이에요. 아침 공기가 신선하고 정신이 맑아서 그런지, 제 경우엔 아침 시간에 아이디어 구상과 정신 집중이 잘 되요. 낮 12시까지만 일해도 5시간을 일하는 것이니 아침 시간을 넉넉히 활용하는 셈이죠.”


- 새벽 사우나, 정기검진’아름다운 규칙

신인 만화가 시절엔, 그도 보통 다른 작가들처럼 밤샘 작업을 하고 아침에 늦잠을 자는, 전형적인 올빼미 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찍 창 밖으로 활기차게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자신은 한없이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과 평범한 생활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저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낮과 밤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요즘 만화가 후배들도 대부분 올빼미형이에요. 하지만 제 경험상 밤샘 작업을 하다 보면 몸에 무리도 가고 더 피곤에 절게 돼요. 아침에 늦잠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요. 늙으막에서야 건강을 위해 비싼 돈 들여 보약을 지어먹어도 회복하기가 힘들어요.”

그는 하루에 5~6시간 정도 잠을 잔다. 그리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다 보니, 약간 부족한 잠은 점심 식사 후 약 30분 정도 소파에서 낮잠을 잔다. 잠깐이지만, 한숨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싹 풀리고 개운하다고 한다.

2002년부터 사단법인 한국 만화가 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오후엔 협회에 나가 업무를 보고, 각종 행사와 회원들 경조사 등 대외 업무로 많이 바쁘다.

그런데 협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후, 과다한 업무 스트레스였을까? 임기 1년이 지날 즈음, 중국에서 열린 세계만화대회에 참석 중 혈뇨가 나오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공항에서 곧장 응급실로 직행, 검사를 한 결과 의사로부터 ‘신장암 3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암세포가 퍼진 신장 하나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 낙관과 분투로 이긴 신장암 3기

그러나 그는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것 외에는 전과 다름없이 만화 그리는 작업도 왕성히 하고 있다. 암 수술 후에도 그는 종종 담배를 피고, 친한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약주도 가끔 한다. 주변에서 “회장님, 몸 괜찮으세요?”라고 묻는데, 그때마다 신 화백은 “아주 좋다. 암이라는 것, 겪어보니 별거 아니다, 정신적으로 강하게 무장하면 누구든지 암을 이길 수 있다”고 답하곤 한다.

“건강은 정신적인 면에 많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비록 의학적으로 보면 담배와 술이 나쁘지만, 제 경우 작업 중 담배를 피고 싶은데 건강 때문에 억누르고 참다 보면 더 큰 스트레스가 생겨 오히려 정신 건강에 해로워요. 적당히 하고 싶은 것을 조절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다스리면 건강도 좋아집니다. 60이 넘은 고개에 있는 지금, 새로운 인생을 다시 사는 기분입니다.”

신 화백은 가능하면 승용차를 타지 않는다. 출퇴근시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남산에 있는 만화가 협회에 갈 때도 지하철로 걷고 이동한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걷는 양이 만보 정도 된다고 한다. 시간을 따로 내 운동하지 않는 이유다. 일생 생활에서 걷는 것과 산책으로 저절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믿는 그다.

“만화가들이 대체로 성격이 좋고 낙천적”이라고 말하는 신 화백. 그는 “요즘 만화시장이 불황이고, 또 돈벌이가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하고 딴 직업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만화가로 시작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 후손ㆍ후학 교육 만화에 혼신

“처음부터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이 길에 들어섰다면 끝까지 싸우고 노력해서 성취를 이뤄야죠. 또 제가 힘이 닿는다면 우리 만화가들의 권익과 위상을 높이고 후배들이 맘놓고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신 화백은 재작년 ‘허풍이의 세계탐험 시리즈’를 낸데 이어 고우영, 이정문 등 5명의 만화가와 함께 ‘교육부 지정 상용 한자 1800’만화 20권 완성을 목표로 작업 중이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만화가 생활 40여년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자손과 후손, 후학들, 그리고 팬들에게 한자가 어렵지만 이렇게 재미있게 배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야겠죠.”

만화가는 현직에서 물러나면 직장인들처럼 퇴직금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만화가로서 작은 족적을 남기고 싶다”며 “건강한 정신과 육체가 따라준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책상 앞에서 계속 붓대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겁고 큰 기쁨입니다. 황금 같은 아침 시간을 일찍 시작하면 하루가 상쾌해요.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모든 일이 형통할 것입니다.”

허주희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6-16 11:36


허주희 객원기자 cutyhe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