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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 본능 자극하는 '리얼 액션'
이종격투기 열풍 접입가경, 단순 스포츠에서 문화현상으로
폭력성 부각 우려에도 팬 급증…대학 내 전공개설 움직임도






6월10일 오후 9시. 나이트클럽을 연상케 하는 현란한 사이키 조명 아래 난데 없는 혈전이 벌어지고 있다. 주먹과 발이 허공을 가르고, 땀으로 범벅이 된 건장한 두 남자의 몸이 한데 뒤엉킨다. ‘퍽’하는 파열음이 들릴 때마다 이들을 빼곡히 에워싼 사람들 사이에선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이윽고 한 남자의 주먹이 날카롭게 얼굴에 꽂히자 그대로 고꾸라지는 상대. 순식간에 싸움이 끝나자, 관중들은 조금 더 ‘피 튀기는’ 결투가 아쉽다는 듯 주춤주춤 자리를 뜬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크우드 호텔 지하에 자리잡은 식당 ‘김미파이브’에서 열린 이종격투기 경기다. 매일 밤 6명의 전사가 혈투를 벌인다. 경기는 3분씩 3라운드. 유혈이 낭자한 선수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식사를 하는 것은 새삼 신기한 게 아니다. 지난 2월 문을 연 이곳에는 하루 평균 1,000 명의 인파가 몰린다. 경기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까지 올라오는 손님들도 많다.

흥미로운 점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관람 온 여성들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들을 위해 식당측은 링 바로 앞에 서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응원 공간을 ‘레이디 퍼스트’라는 배려 차원에서 마련해주기도 한다.



‘서울 나들이’ 길에 여동생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는 대구에 사는 주부 이모(46)씨. 경기가 종료된 직후 상기된 얼굴로 음료를 들이킨다. “TV에서 볼 때는 짜고 하는 ‘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눈 앞에서 보니 가슴이 떨리네요.” 그러나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는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은커녕 환한 웃음이 번진다. 그녀는 “경기를 보며 가볍게 술도 한 잔 하니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대구에 내려가면 친구들에게 할 말이 많을 것 같다”고 즐거워 했다.


- 피 튀기는 경기보며 식사도

링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까지의 거리는 불과 2~3m. 선수들의 ‘헉헉’ 대는 숨소리가 생생히 들릴 정도인데, 태연히 경기를 보며 스테이크를 썰거나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먹는 ‘간 큰’ 손님들도 적지 않다.

관람객 중에는 보다 잔인하고 거친 경기를 보고 싶다는 이들도 상당수다. 3개월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종격투기 경기를 처음 접했다는 김모(27, 회사원)씨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외국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아쉽다”며 “기량이 탁월한 세계적인 선수들을 초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격투기는 이종(異種)이란 문자 그대로 종목에 구애 받지 않고 각종 무술과 격투기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것. 킥복싱, 태권도, 유도, 레슬링, 무에타이, 합기도 등 다양한 격투기 선수들이 한데 뒤섞여 처절한 몸싸움을 벌인다. 때문에 불과 1년 전만 해도 “인간의 폭력성을 부각시켜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오히려 그 같은 냉혹한 싸움 방식 덕에 ‘리얼 스포츠’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추세다.



김한성 김미파이브 실장은 “처음엔 선수들이 다치고 피 흘리는 것을 보며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특히 여성들)이 꽤 있었는데, 요즘엔 피 뚝뚝 떨어뜨리는 게 진짜 ‘리얼’이라며 열광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주말의 경우, 경기를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무대 앞 테이블은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할 만큼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이같이 식당까지 점령한 이종격투기 열풍은 인기 스포츠 차원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코드로 깊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근래 들?이종격투기는 TV 드라마와 영화, CF 등에 빈번히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됐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에선 주인공 김민준이 이종격투기 선수로 나와 눈길을 끌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6월 11일 개봉한 태국 영화 ‘옹박’도 이종격투기를 앞세워 관객을 불러모으는 중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이종격투기 관련 까페가 700여 개나 개설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이종격투기 팬 규모는 최소 50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까지 추산된다. 2002년 말 위성방송 KBS 스카이를 통해 이종격투기가 국내에 소개된 지 채 2년도 안 돼 일어난 변화.


- 격렬한 대결에서 대리만족

이종격투기 해설가인 차성주 KBS 스카이 해설위원은 “누구나 마음 속에 억누르고 있는 원초적인 폭력성을 스포츠로 승화시켜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이종격투기”라며 “격렬한 육체활동을 벌이는 선수들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내년부터는 대학내 전공학과도 생겨나 학문으로도 다뤄진다. 경북 칠곡의 경북과학대학은 5월 말 국내 대학 최초로 이종격투기부를 창단한 데 이어, 2005학년도 입학전형에 사회체육계열 이종격투기 전공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 대학 사회체육계열 송창훈 교수는 “대학에 이종격투기 전공이 신설되는 것은 국내 무술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의 이종격투기 붐은 이내 사그러들 것이라는 ‘거품론’ 역시 만만찮다. 이종격투기가 인기를 끌면서 관련 단체와 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본래의 ‘무도 정신’보다 상업적인 개입이 두드러지고 있어 벌써부터 ‘껍데기 인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MBC-ESPN에서 김미파이브 경기를 중계하는 이명진 캐스터는 “폭발적인 관심에 비해 선수층이 두텁지 않고, 처우가 열악한 점 등 단시간의 급성장에 따른 문제점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차츰 경기의 내용이나 선수들의 복지 수준을 높여나가면서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6-1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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