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로 변한 강남 재개발 아파트 단지, 청소년 탈선장소로 이용되기도

[이색지대 르포] 금싸라기 땅에 웬 유령도시
폐허로 변한 강남 재개발 아파트 단지, 청소년 탈선장소로 이용되기도

말 그대로 ‘폐허’였다. 시가전을 소재로 한 전쟁 영화의 배경 같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좀비’가 튀어나올 듯 한 게임 속 ‘유령도시’와도 닮아 있다.

총 164동 6,800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강남 J 지역의 S 아파트. 재개발을 위해 입주민 대부분이 떠나버린 이곳은 현재 텅 빈 아파트만 남아있는 도심 속의 ‘유령도시’가 되어버렸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들이 떠나자 인근 지역에 좋지 않은 소문들이 끊이질 않는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주인 없는 유령도시에 가출 청소년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문. 하긴 재개발을 위해 빈집이 된 지역마다 가출 청소년이 몰려든 것이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단지 한쪽 구석에 위치한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새벽녘 텅 빈 아파트 단지에 귀신 소리 같은 신음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 그렇다면 가출 청소년들 사이에 혼숙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 적막함만 가득… 기분까지 으스스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S 아파트 단지는 외부 도로 면에 펜스를 쳐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해 놓은 상태였다. 아무리 철저하게 폐쇄해 놓은 곳일 지라도 개구멍은 있는 법. 폐교가 된 단지 내 초등학교 부근 개구멍을 통해 S 아파트 단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후 6시경이 되어서야 어렵게 들어선 유령도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끝도 없이 펼쳐진 아파트 단지에는 적막감만 가득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뜯고 낸 철조물들이 여기 저기 쌓여있고 버려진 자동차와 가구들이 삭막함을 더한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깨진 유리조각과 쓰레기들이 넘쳐난다.

가출 청소년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들어간 주인 없는 아파트 내부는 더욱 처참했다. 베란다 부근의 철조물을 뜯어내 부분 철거가 이뤄진 아파트 내부는 더 이상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버려진 가재도구와 쓰레기들, 유리는 하나같이 깨져 조각으로 널 부러져 있고 버리고 간 가구들에는 먼지만 자욱했다.

상가 건물 역시 마찬가지. 사람의 손길이 끊긴 지 이미 오래인 빈 상가에는 위태롭게 걸려 있는 간판들만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상가 내부에서 처음으로 누군가 기거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주하는 주민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침대 매트리스를 누군가 빈 상가 내부로 옮겨와 베개까지 갖춰놓은 것. 베란다 부분 철거로 사람이 거주하기 힘든 빈 아파트와 달리 상가는 아직 비교적 깨끗한 상태였다. 빈 아파트의 부분 철거가 이뤄진 뒤 누군가가 거주지를 이 곳 상가로 옮긴 것으로 보였다.


- 펜스 쳐 출입통제… 곳곳 거주 흔적

S 아파트 단지는 중앙 도로를 기준으로 1, 2단지로 나뉘어 있다. 이 도로에 위치한 파출소 바로 옆에 정식 출입구가 위치해 있었다. 이 곳 파출소는 현재 외부인 출입 통제와 순찰로 더욱 바빠진 상태다.

여기서 만난 한 경찰관은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는 범죄 발생의 우려가 높기 때문에 순찰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없다. 한때 노숙자들이 빈집에서 기거했지만 펜스를 친 이후 대부분 여기를 떠났다”고 얘기했다. 소문으로 나도는 가출 청소년에 대해서는 “노숙자는 자주 봤지만 가출 청소년들은 보지 못했다”면서 “한정된 파출소 인력만으로 164동 전체를 커버하기는 힘든 상태”라고 밝혔다.

S 아파트 단지 내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 것은 또 다른 상가에서였다. 상가 건물을 둘러보던 도중 지하에서 대화하는 소리와 불빛을 감지할 수 있었다. 큰 기대감을 갖고 내려가 보았으나 만난 이들은 아직 이주하지 않은 상가 상인들이었다. 이 상가 건물에서 유일하게 이주하지 않은 이 가게에는 이미 이주한 상가 상인들 몇몇이 모여 소일삼아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이들에게 전해들은 놀라운 사실은 일부 이주민들이 아직 이주하지 못하고 거주 중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아직 20여 세대가 이주하지 않고 살고 있는 데 펜스까지 쳐서 출입을 통제한 것은 너무한 일”이라며 “빈집에 머물던 노숙자들과 떼로 몰려다니던 몇몇 청소년들 때문에 부분 철거와 펜스 작업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S 단지의 이주 시한은 지난 4월까지였다. 이미 지난 해 가을부터 이주가 시작된 단지의 90% 이상이 빈집이 된 것은 지난 5월 초로 이때부터 이 단지는 밤이면 불이 켜진 집이 거의 없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이 당시부터 노숙자와 가출 청소년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한 것. 당시에는 외부 출입에 통제도 없었기 때문에 인근 학교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등 일탈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온갖 소문이 나돌았던 것이다. 그리고 외부통제로 인적이 끊긴 요즘, 여전히 여기서 잠자리를 청하는 이들도 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곳곳에 뚫려있는 개구멍이 입증한다.

아직 거주중인 입주민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단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해 밤 9시 경 불이 켜진 몇몇 집들을 찾을 수 있었다. 입주민이 거주중인 아파트의 경우 아직 부분 철거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 철조물과 유리창이 그대로였다. 이런 아파트 동의 다른 빈집들은 아직 숙식이 가능할 만큼 깨끗했고 화장실 역시 사용이 가능했다.

오랜 기다림. 야생 고양이와 가끔 다니는 순찰차가 유일했던 단지 안에는 공포감만이 존재했다. 서너 시간을 기다린 끝에 철수를 고려중이던 새벽 1시경 드디어 개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남자 둘을 만날 수 있었다.

가출 상태로 현재 주변 편의점에서 자정까지 일한다는 이들은 뚝섬유원지 부근의 재건축 지역과 인근 또 다른 재개발 지역 J 아파트 3단지에 머물다 철거 이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 역시 철거 직전의 상황. 이들은 곧 인근 J 아파트 1단지로 거주지를 옮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J 아파트 1단지는 최근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상황으로 외부 통제 이후 S 아파트를 떠난 가출 청소년들 대부분이 다시 모여들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 “혼숙 등은 소문 일뿐” 강변

이들은 혼숙 등 가출 청소년 관련 소문을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대부분 각종 아르바이트 등으로 바쁘고 시간이 나면 오토바이를 타는 등 어울려 놀기는 하지만 혼숙 등 난잡한 생활은 안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빈집을 찾는 것 역시 잠자리를 찾아서일 뿐이라고 했다. 오히려 인근 고등학교의 문제 학생들이 낮 시간에 빈집을 찾아 흡연과 혼숙 등 일탈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출 이유 등 개인적인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한 이들은 가출 청소년 보호 시설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강한 반발감을 보였다. 방송을 통해 조성된 가출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청소년증’이라는 가시적인 결과물 하나를 만들어낸 채 다시 사그라졌다. 사회의 무관심이 결국 이들을 서울의 재개발 열풍이 만들어낸 유령도시를 맴돌게 만든 셈이다.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는 이들은 이제 숙달되었다고 얘기했다. 대화를 마친 뒤 위험이 도사리는 철거 지역의 빈집으로 피곤한 몸을 옮기는 이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위험스러워 보였다. 하긴 잠자리뿐이겠는가. 가출 이후의 일상 자체, 아니 불투명한 미래까지 이들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유령도시를 빠져 나왔다.

황영석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7-20 17:30


황영석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