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천박한 것이 가장 본질적인 것"두통이를 탄생시킨 이름 가수 앵앵이이야기를 그려내는 감성의 아티스트

[감성 25시] 이수경
"가장 천박한 것이 가장 본질적인 것"
두통이를 탄생시킨 이름 가수 앵앵이
이야기를 그려내는 감성의 아티스트


“나는 가수가 꿈이다. 나는 못생겼다. 나는 음치다. 나는 가수가 꿈이다. 나는 가수가 꿈이다. 나는 가수가 꿈이다.”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작가 수경을 만났다. 그녀를 만나기 전 ‘가수 앵앵이양’의 삶과 죽음이란 빨간색 찌라시를 보았다. “당신들을 가수 앵앵이 양의 삶 속으로 초대합니다.” 가수 앵앵이 양의 삶이라…. 빨간색 찌라시는 마치 서커스 안내문처럼 천박해 보였다. 처절하게 눈물 흘리는 빨간 곱슬머리의 여자하며, 밤무대 가수를 연상시키는 앵앵이 캐릭터는 삼류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때 빗 속을 뚫고 구세주처럼 나타난 수경 작가. 빗속에서 그녀는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아요?” 라고 인사했다. 아! 수경은 비를 좋아하는구나! 그녀의 애마에 올라탔다. 요요마의 리버탱고가 차안을 휘감고 감성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비와 태풍을 유독 좋아해 개인전도 장마철에 하는 이 감성아티스트 옆에 있으니 그 분위기에 절로 동화되는 기분이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상에 취해 있는데, 어느새 도착한 곳은 인천의 스페이스 빔이었다. “가수 앵앵이” 양의 삶과 죽음이라는 그녀의 네 번째 개인전이 열리는 곳.

- 앵앵이는 우리시대의 초상

“왜 앵앵이죠?”라고 묻자 작가 수경은 “세상에서 가장 조악하고 천박한 말을 찾았어요. 자학을 하듯 말이죠. 두통이 무척 심해서 잠을 잘 수 없는 날이었죠. 제 머릿속에서 앵앵거리는 소리가 떠나지 않는 거예요. 늦은 밤 찾아온 고질병인 두통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것이 아닐까, 두통을 이겨야 하는 내 삶이 처절하다고 생각했죠.”

앵앵이는 그녀의 고질병인 두통이 탄생시킨 이름이다. 두통을 이기기 위해 그녀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림은 그 다음에 탄생한 것이다.

“가수가 꿈인 여자가 있었죠. ‘내 꿈은 프리마돈나야’라고 하는 당찬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비웃을 뿐이었어요. 그녀는 이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았고, 결정적으로 그녀는 음치였죠. 하지만 그녀는 가수의 꿈을 접을 수가 없었어요. 가능하지 않을수록 그녀의 맘속에선 저주스럽게도 욕망이 불타 올랐고, 무대위로 오르기 위해 관객을 돈으로 사기까지 하죠. 그녀는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치지만 남은 건 빚더미 뿐이었어요. 결국 로또 앞에서 인생 역전을 꿈꿀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만나게 되죠. 이 비극의 여 주인공이 바로 ‘앵앵’이예요.”

앵앵거릴 수밖에 없는 그녀의 삶은 수경의 의도를 넘어,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린 앵앵거리며 태어났고, 또한 아둥바둥 하며 삶을 살지 않는가. 앵앵거리는 삶, 숨기고 싶지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치부 같은 컴플렉스가 바로 ‘앵앵’이다.

“앵앵이는 제 자신의 분신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를 대변해요. 현실적으로 배고플 수밖에 없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곡예를 해야 하는 젊은 예술가요.”

전시회 때 “우리도 앵앵이가 되자” 라는 아바타 프로젝트를 실행시킨 수경은 관객에게 앵앵이의 가발과 옷을 입혀 직접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체험을 하도록 했다. 남녀불문하고 모두 앵앵이의 가발과 옷을 입고 좋아라 했지만, 곧바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그들은 잠시 우울해졌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화려해 보이려는 금빛 나시 원피스가, 촌스런 빨간색 립스틱이, 호들갑스럽게 살아야 하는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작가는 결국 우리에게도 앵앵이 같은 부분이 있지 않느냐, 넌시지 묻는다.


-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로또를 만난 앵앵이는 마지막 희망을 찾는다. 아티스트들에게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은 수경은 “상황은 예전보다 나아졌고 방향성은 제시가 되었지만 아직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생활은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에요. 작품은 여전히 팔리지 않는 게 현실이구요. 유명한 기성 작가들과 비교할 때 젊은 아티스트의 생활이란 삶에 찌들어 허덕일 수밖에 없는 수준이죠.”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지원을 받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던 수경 자신의 경험담이 앵앵이의 삶 속에 녹아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작가의 개인전 준비과정을 관객에게 알리는 또 다른 개인전이 열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렇담 우리는 그 고충을 알고 작가의 작품에 연민이라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개인전을 할 때, 적자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하는 아티스트가 많아요. 심지어 설치 미술을 하는 선배는 빚을 져가며 개인전을 하죠. 작가에게도 생활이란 게 있는데, 예술은 예술이고 생활은 생활이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에겐 예술이 삶이고 생활인데 말이에요.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티스트의 삶이란 얼마나 처절한가요.”

지원을 받아도 힘든 환경에서, 개인전을 마쳤을 때 적자가 안 나면 다행이라고 숨 돌리는 아티스트들. 화려해 보이는 그들의 생활 이면엔 모두 앵앵이의 처절한 삶이 숨어 있었다.

그렇기에 수경은 앵앵이를 내세워 자학한다. 네번째 전시회인 ‘앵앵이전’ 은 몽환에서 열렸던 세번째 전시회 ‘자학기계’의 연장선이다. 자학기계를 만들면서 성장한 수경이다. 자학기계는 상처를 잊기 위한 스스로의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다. 다소 우습기까지 한 이 컨셉. 일테면 두통이 심한 그녀는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으로 전이시키고자, 여자 발 냄새를 맡는 남자를 등장시킨다. 변태적인 성향의 남자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떠나간 여자를 잊기 위해 그녀의 가장 안 좋은 냄새를 추억하며 잊으려 자학하는 것이고, 찔리면 상처가 오래간다는 선인장에 발을 올려놓는 행위는 육체적인 아픔으로 실연의 상처를 지우기 위함이다.


- 자학과 상처의 연장선상에서

흰 이를 드러낸 사나운 불독 앞에 용감하게 다가간 손가락은 그야말로 물리기 일보 직전의 아슬아슬함을 보여준다. 스릴과 두근거림을 즐기는 수경은 자신의 근본적인 걱정거리와 불안함을 자학기계라는 컨셉으로 잊으려 몸부림쳤다고 말한다.

그녀의 본명, 이수경처럼 그녀의 얼굴은 이름만큼이나 흔한 이미지를 지녔다. 하지만 그녀를 계속 만나고 작품을 접하게 되면 익숙한 것이 마치 나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 그녀의 작품은 곧 나의 작품이라는 착각이 들 만큼 말이다.

“흔하디 흔한 수경이란 이름은 점점 사람들의 머릿속에 흔하게 다가가지만, 어찌어찌하여 이수경을 알게 되고 그 흔하게 알게 된 이수경의 그림이 점점 당신들의 관념을 자극하여 변화시키고, 스믈 스믈 당신 곁으로 다가갑니다.”

간밤에 기습적으로 찾아온 두통으로 언제나 머리가 묵직한 그녀의 바람은 가볍게 사는 것이다. 서슴없이 “난 힘들게 작업하는 것이 싫어. 그럼 보는 사람도 힘들고 복잡해지니 말야.” 라고 말하는데, 그래선지 그녀의 작품은 맞장구를 칠 수 있는 친구 같은 편안함을 지녔다. 이렇게 편한 작가를 만나고 나니 음치인 나는 수경이와 함께 노래방에 가고 싶어졌다. 앵앵이 앞에서는 소심한 나도 용감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수경작가와 소주를 마시며 인생을 노래하고 싶어졌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7-21 11:53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