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관에서 스윙 댄스를 추다지치지 않는 실험정신, 감성의 서름 다섯 쌈지 스페이스 큐레이터

[감성 25시] 신현진
미숙관에서 스윙 댄스를 추다
지치지 않는 실험정신, 감성의 서름 다섯 쌈지 스페이스 큐레이터


쌈지 스페이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젊음과 열정, 실험정신, 자유분방함, 창조, 아트라는 단어들이다. 쌈지 스페이스야 말로 아방가르드, 언더그라운드의 메카 아니냐고 단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 영상, 연극, 춤이라는 아트가 집약적으로 모인 비영리 복합 문화공간 쌈지 스페이스가 홍대로 자리를 옮긴 후에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새롭고 진취적인 것을 표방하는 쌈지 스페이스는 그 자체가 젊음이다.

지루해질만 하면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을 포함한 놀이문화, 파티와 퍼포먼스를 기획해 젊은이들을 유혹하는가 하면, 해마다 신진 작가 발굴로 등단의 기회를 열어주고 중진작가의 후배와 제자들이 함께 그룹전을 열 수 있는 전시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는 것도 쌈지가 인기 있는 이유다. 이쯤되면 젊은이들을 매혹시키는 자극적인 전시를 기획하는 쌈지의 큐레이터가 누군지 궁금해질 것이다. 작가를 매체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예술가, 쌈지 스페이스의 제 1큐레이터는 신현진(35)이다.


- 더넓은 시야를 갖고 싶었다

“저도 작가였어요.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혼자 작업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제 자신이 원하는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기를 바랬거든요.”

홍대 회화과를 나온 그녀는 유학을 결정하기까지 1년 동안 방황의 시간을 가졌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에 고민없이 미술을 전공하고, 회화과에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그녀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작가의 표현 욕구가 자신에게만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다소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 그녀는 스튜디오라는 폐쇄적인 세계에서 혼자 작업하기에는 욕심이 많았고 또한 젊었다. 학문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 미술세계를 체험하고 싶은 그녀는 곧바로 유학을 결정하고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났다.

“작가활동을 넘어서 미술전시를 기획하고 그것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다면, 좀더 넓은 시각으로 미술계를 바라보고, 작품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리라 생각했어요.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제 인생철학의 종합세트 선물상자예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에서 미술 경영학 석사를 취득(98년)하고 스탠포드대학에서 MBA(2002년)과정을 거친 그녀는 연구원과 프로그램 매니저 활동을 하면서 7년 반 동안 미국에서 살았다. 그 경험을 한국에 돌아와 전시를 기획하는데 활용했다. 미국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언제나 신진작가들과 함께 일하고, 실험적인 미술을 많이 접한 그녀는, 지금 쌈지 스페이스의 큐레이터는 어쩌면 자신의 정해진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만큼 쌈지와 자신의 감성코드가 잘 맞는다는 소리다.


- 작가와 대중의 연결고리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에는 이제 큐레이터라는 개념이 어설프게 자리잡으려 할 즈음이었다. 그렇기에 초창기의 어려움이나 혼란은 짐작할 만하다. 큐레이터라는 자신의 직업과 위상을 알리지 못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녀 말에 의하면 아직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작가가 “이게 그 아줌마야?” 라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면전에서 창피를 준 적이 있었다. 물론 당하고 있을 그녀도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 전시가 잘되면 작가가 잘났기 때문이고, 잘못되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탓으로 돌릴 때였으니 그 고충은 짐작할 만하다.

“작가는 감성이 풍부하고 누구보다 인간의 삶을 해석해야 하는 직업이죠. 훌륭한 작가는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큐레이터로서 영광이죠. 결국 작가와 큐레이터는 동업자인 거예요.”

기획한 전시중에서 고 차학경씨의 회고전이 그녀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평소 존경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겠지만, 전시를 준비하는 중에도 내내 뿌듯함을 느꼈다 한다. 디스플레이에서 홍보까지 3명의 스태프가 다른 전시를 동시에 준비하면서 진행한 것이라 힘도 부쳤지만, 호응도 좋았고 전시도 만족스럽게 나와 그녀에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전시였다.

큐레이터는 예술가다. 작가의 작품은 큐레이터에 의해 재창조된다. 큐레이터에 의해 천재 예술가가 탄생이 되기도 하고, 무명작가가 어느 날 스타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큐레이터는 발굴가이기도 하다. 또한 큐레이터는 작가와 대중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도 한다.


- 한국작가·미술 세계에 알리고 싶어

이런 큐레이터의 일상은 어떨까. 아침 7시에 일어나 헬스장을 거쳐 사무실에 도착하면 서류작성 등 잡무가 기다린다. 또 2건 정도의 미팅은 기본이다. 최근에는 대안 공간 네트워크와 홍대 앞 문화지구 전시와 관련해 모임을 갖거나, 스폰서와의 미팅에도 참석한다.

다음 전시를 위해 공부도 게을리하면 안된다. 밤 12시쯤 귀가하는데, 무슨 큐레이터가 고3 수험생보다 힘든 생활을 하냐고 물으면 그녀는 “전 일을 즐겨요. 나름대로 생산적이고 재밌는 일들이예요.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제 적성과 끼에 잘 맞거든요”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마치 워커홀릭처럼 말이다.

그녀의 꿈은 사실 발레리나였다. “저도 몰라요. 춤추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대요. 발레리나 시켜달라고 엉엉 울기도 했다는데요, 전 기억 안나요. 지금도 스윙댄스 추는 거 너무 좋아해요.” 춤추는 것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춤추는 곳은 빠지지 않는다. 주말에는 꼭 스윙댄스 파티에 참석한다고 한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출 때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이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면 이미 몸을 옆으로 흔들고 있다.

“한국 작가와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어요. 아직 한국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일본이나 중국 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거든요. 더불어 재밌는 전시를 하는 게 바람인데요. 요즘 코믹한 작업이나 재치 있는 기획이 많아졌지만, 대중의 미술관람과 이해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동시대를 반영한 이슈가 있는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갖고 또한 관객이 즐기면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어요.”

스스로 엉뚱하다고 말하는 솔직한 큐레이터 신현진. 그녀의 말대로 우리도 동참할 수 있는 신선하고 산뜻한 그녀의 전시를 보러 가고 싶다.

“주말에 스윙댄스 추러 가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요?” 그녀의 제안은, 마치 미술관에서 춤 전시를 기획하니 놀러오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녀의 손을 거치면 모두 예술로 거듭 탄생하니까. 스윙댄스나 추러 갈까 보다. 가볍게.

유혜성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7-29 13:40


유혜성 자유기고가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