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사회의 얽매임을 거부하는 자유의 세대실험정신과에너지로 충만한 뉴 프론티어

꿈과 열정의 아름다운 일탈-프리타族
조직사회의 얽매임을 거부하는 자유의 세대
실험정신과에너지로 충만한 뉴 프론티어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가 합해서 만들어진 일본식 영어 프리타는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자유롭게 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젊음을 반영하는 반항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성 세대가 지향하는 조직 생활의 숨막히는 체제를 거절하고, 당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취미와 여가를 더 소중히 여긴다. 번 만큼 쓰고 쓸 만큼 벌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당당히 밝히는 이들의 용기와 비장함은 건강하다.

한국에서도 프리타가 유행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당당히 조직 생활을 그만 둔다. 애초 자신의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미룬다. 대학교 때부터 취미 생활을 즐기며 결국 돈벌이까지로 진행시킨다. 이런 현명한 젊은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만나 보았다.

- 종합 예술가를 꿈꾸는 DJ Yong

강남에서 DJ Yong 이라 불리는 이용의(21)군은 종합예술가가 꿈인 대학생이다. 현대고등학교 시절, 음악이 좋아 클럽 Soul Alive에 놀러 갔다가 뇌리에 꽂힌 DJ형의 말, "DJ 장비가 다 있으니까, 너가 원하는 음악을 틀어.” 바로 이 말로, 지금까지 클럽 DJ로 활동중이다.

DJ Yong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불리워지는 게 즐거웠던 시절의 일이다. 클럽에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 평소 취미인 버려진 깡통, 크리넥스 상자, 안 쓰는 나무 상자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데 지나가던 형이 낙서를 본 순간, “야, 근사한데. 니가 그린 그림이 크리넥스 휴지 디자인보다 더 낫다!” 고 했다. “I♥DJ"란 로고가 박힌 티셔츠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트 안에 턴테이블을 만지는 귀여운 DJ의 이미지를 넣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티셔츠를 받은 사람들이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깝다”고 말해 판매까지 하게 되었다. 한 벌에 28,000원으로 판매. 제작하자마자 3주만에 매진될 정도였다. 그의 팬들은 모두 그 티셔츠를 입고 클럽에 온다고 한다.

평소 취미인 낙서가 디자인이 되고, 거기다가 DJ를 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해 광고 효과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기에 그는 아직 꿈이 많다. “유학을 갈 거예요. 뉴욕의 어느 건물에 저의 공간을 만들어 mix tape, 그림, 장식물 등 제가 직접 만든 것을 판매할 거예요. 두고 보세요. 아직 과정이지만, 종합 예술가 Yong라는 이름을 널리 알릴 테니까요.” 그는 여름 휴가철을 이용해 그로테스틱 크로우라는 팀과 함께 부산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 놀기와 돈벌기의 화려한 만남

마치 랩을 하는 듯한 말투의 장비호씨(29). 그의 직업은 클럽 디제이, 파티 플래너, 그리고 기획사 직원, 의류 브랜드의 사장이다. 그는 프리타로서 성공한 케이스다.

“고등학교 때 일일 락카페에서 춤추며, 바비브라운, 엠씨 해머, 스노우, 듀스의 음악을 틀어 놓고 안무 연습을 했어요. 그때 아, 맨날 이렇게 살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죠. 군 제대(’97) 해서 종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사장형이 음악을 틀어보라고 해서, DJ를 시작했죠. 2000년도에 하우스 힙합 파티를 열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대박이었어요. 그 때만 해도 힙합을 트는 클럽이 없었거든요. 당시 홍대의 몇 분이 의기 투합해서 남사당패란 이름으로 행사와 파티를 했는데, 제가 기획일을 맡게 된 거죠.”

그의 말을 들으면 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싶을 만큼 온통 노는 문화뿐이다. 하지만 그는 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바로 돈벌이까지 연결시켰다. 그렇게 놀다가 2002년, ‘at431project’ 브랜드를 설립한 그다. 그곳에서 ‘절충’이란 앨범과 ‘피규어’라는 구체 관절 인형을 제작했다. 또 브랜드 의류 제작과 해외 언더그라운드 의류 도소매를 하면서 행사와 공연 파티를 기획했다. 현재는 m-tom이라는 기획사에 스카웃 되어 일주일에 하루 출근하며 프리랜서 기획자로 지낸다.

“ 제가 하는 일들은 소득이 일정하진 않지만, 능력에 따라 한 달에 몇 천만원을 이득 볼 수도 있고, 또한 그만큼 손해 볼 수도 있는 직업이죠.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에 이익과 손해도 혼자 책임져야 하는 불안함도 있지만 능력에 따라 자유는 언제든지 보장되어 있는 직업이예요.” 자신의 직업의 장단점까지 밝힐 수 있는 그는 “부와 명예가 성공이라면 전 성공하지 않을래요. 그에 따르는 것들이 날 가둘 테니까요.” 라고 말하는 자유로운 타입의 인@潔駭? “지금 하는 일이, 이건 내가 아니어도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그만 둘 거예요. 외국에 나가 ‘아, 이렇게 좋은 것이 한국엔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이미 제가 작게나마 하고 있을 거예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만 가는 그는 직업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는 비호(飛虎)였다. 성공을 거부하면서도, 성공을 위해 달리는 남자였다.


- 느리게 살며 인형 만드는 남자

‘기따씨’ 라는 개인 브랜드를 운영하며 인형을 만드는 남자 오윤철씨(27). 그가 만드는 인형은 바로 그의 인생관을 반영한다. 인형 이름도 유유자적이다. 홍대 불문과를 나왔지만, 복수 전공으로 선택한 섬유 미술과에서 염색, 직조, 패션 일러스트, 그래픽 작업, 조형작업 등을 배우면서 디자인 쪽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현재 프리마켓의 작가이기도 하다.

“대학 3학년 때는 OFF(전국 대학생 패션 연합)라는 곳에서 의상과 패션 퍼포먼스 공부를 하며, 쇼 의상을 만들고 퍼포먼스를 기획했죠. 쇼에 세웠던 의상이 좋은 반응을 보여 뮤직 비디오용 의상 제작에 참여했고, 나중엔 어린이 뮤지컬 쇼 룸 의상 등 행사 의상 제작일도 했구요. 4학년 때 남대문 시장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 하면서, 재료 구입, 제작, 유통까지 시장 물건들이 어떻게 돌고 도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었죠. 대학교때 ‘Moon Dance'라는 토탈 패션 악세서리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

유유자적이라는 점에서 오윤철씨와 아주 닮았다. 그의 인형처럼 느리게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예술가다. 실컷 놀면서 일해도 한달 100정도 수입은 들어 온다고 말하는 그는 언제나 여유 있어 보였다. “취미와 상관없는 과를 갔다고 우울해 할 필요는 없어요. 불문과를 나왔지만,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길을 뚫었잖아요. 자기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늘 기회가 오기 마련이예요. 불어라는 언어는 저에게 작품을 만드는데 영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는 요즘 새로운 일을 꾸미는데, 인형 캐릭터들과 자신의 삶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그림책이 그것. 우리는 조만간 유유자적 인형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작업을 하는게 오윤철씨의 꿈이다.


- 프리마켓 액세서리 미녀

‘프리마켓의 미녀’로 불리는 백지현(30)씨는 나이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외모를 지녔다. 피어싱을 한 그녀의 외모는 어딘가에 매여 있다거나, 구속받는 이미지가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창작해 내는 자유분방한 이미지다. 공방보다 프리 마켓의 시장이 더 잘 어울렸다. 그녀는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3년 동안 항공무역회사엘 다녔는데, 어느 날 조직사회에 염증을 느껴 그만 두었다. 그 후 아르바이트로 광고 스타일리스트 일을 시작하면서 자재 시장을 갈 기회가 자주 생겼고, 오가면서 취미로 한 가지 두 가지 재료를 모아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말에만 열리는 마켓에만 의지하면 생계 유지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희망시장, 프리마켓은 다른 영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백지현씨는 오프라인 쇼핑으로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인사동의 공방에서도 그녀의 작품이 판매된다.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악세서리 샵에서도 그녀의 작품은 인기다. “ 작은 공방을 하나 낼 거예요. 제 작품을 보면 아, 미미루(백지현의 브랜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만드는 거죠.” 쥬얼리 디자이너, 백지현씨가 밝게 웃는다. 구김살 없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 작품을 하나 사고 싶어진다. 그녀의 젊음의 비결은 바로 손님들에게 받는 사랑이었다.

“ 이력서 준비에만 열 올리지 말고 외국으로 취업을 나가라.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라” 라고 말한 어느 유명인사의 말처럼 청년 실업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만은 없다. 최근 일본에서는 프리타가 기생충(parasite)과 독신(single)이 합해져서 ‘패러사이트 싱글’이라며 부정적인 의미로까지 변형되긴 했지만, 한국의 프리타는 그 자체가 젊음과 열정을 품은 활력소다.

프리타는 조직사회에 얽매인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유분방한 현대 정보화 사회의 과도기적 문화 현상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프리타는 단지 자유에 미쳐 취업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도전 의식으로 성공을 위해 달리는 젊은 세대의 열정을 대변한다. 긍정적인 의미로서 프리타 정신을 배운다면, 프리타야말로는 한국 청년 실업의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다. 그들의 식지 않은 꿈과 실험 정신, 에너지를 본 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8-25 20:28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