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저 출산률로 고령화 및 인구감소 현실화

출산력 저하, 안낳나? 못낳나?
사상 최저 출산률로 고령화 및 인구감소 현실화

주부 박은채(36ㆍ가명)씨는 요즘 ‘임신과 출산’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남편은 네 살 연상. 만혼(晩婚)의 영향인지 결혼 후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아이 소식이 없어 고민이다. 그간 일과 학업에 푹 빠져 결혼 계획이 없다가 점차 혼자 지내는 게 외롭게 느껴져 지난해 서른 중반을 넘겨서야 결혼식을 올렸던 것. 불임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혹여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임신을 고대하는 심정은 여간 초조한 게 아니다.

늦은 결혼과 독신 여성이 증가하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이 줄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임여성(可姙女性) 인구가 사상 최초로 감소했다. 1970년대 이후 계속 떨어진 출산율에 이어, 급기야 출산력마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구의 자연 증가 규모가 사상 최저의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어 고령화 및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8월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출생ㆍ사망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5~49세 이하 가임여성은 1,375만8,000명. 2002년(1,378만5,000명)보다 2만7,000명 줄었다. 그 동안 저출산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는 자녀 수)은 1960년대 6.3명에서 2002년 1.17명으로 급격히 떨어져 왔으나, 가임여성 수가 절대 감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가임여성수 절대 감소

가임 여성의 감소 문제는 낮은 출산율보다 ‘국가 재생산 능력’에 위협적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출산 장려운동으로 비교적 단시간에 상승시킬 수 있는 상대적인 의미의 출산율 감소와는 달리, 인위적으로 높일 수 없는 절대적 의미의 ‘국가 출산력’마저 감소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가임 여성의 감소에 따른 인구 감소 우려는 이미 현실화하는 추세다. 지난 한해 동안 태어난 총 출생아 수는 49만3,500명으로 전년보다 1,100명이 줄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1일 평균 출생아 수도 가임여성이 감소하면서 1,352명으로 전년의 1,355명보다 3명 줄었다. 이는 출산율이 증가세(2003년 출산율은 1.19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증가)로 반전됐음에도 나타난 결과라서 더욱 당혹스럽다. 결국 가임 여성 감소 추세가 출산율 증가 추세를 앞지른 것이다.

가임 여성의 감소에는 결혼 연령 상승과 독신 풍조 확산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정책연구실장은 “80년대 이전에는 기혼여성의 출산율 감소가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었지만, 90년대 이후부터는 결혼 연령의 상승과 독신의 증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기혼여성의 출산율은 출산율을 높이는 추세로 돌아섰지만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전체 출산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기혼 여성의 평균 자녀 수는 94년 1.8명에서 2000년 1.7명으로 떨어졌으나 2003년에는 1.78명으로 늘어났다.이는 최근의 출산력 저하가 기혼여성의 출산 감소보다는 미혼자의 결혼 연령 상승과 독신에 주로 기인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반면, 50~60년대만 해도 10%에 불과했던 출산율 저하에 대한 혼인 연령 상승의 영향은 70년대 15%, 80년대 39%로 각각 높아졌고, 90년대 들어 크게 증가했다. 90~99년에는 195%까지 치솟았다.

독신 비율도 급속히 올라갔다. 25~29세 여성 가운데 미혼 비율은 1970년 10%에서 2000년에는 40%로 크게 늘었다. 30~34세 여성 중 미혼 비율도 같은 기간 1%에서 11%로 증가했다.


- 경제여건 악화가 한 몫

주목할 것은 이러한 결혼 연령의 상승과 독신의 증가가 자발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회사원 장모(36) 씨는 올 가을 결혼 예정이었던 3살 연하의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1년 뒤로 늦추었다. 장남이라 “더 늦기 전에 결혼해서 연로한 부모님께 어서 손주를 안겨드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결혼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대출조차 여의치 않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8~34세 미혼남녀 1,1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미혼남녀의 결혼관 및 가족가치관’에 따르면 현재의 미혼상태가 ‘비자발적’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절반에 가까운 46.3%나 되었다. 이는 결혼을 하고 싶으나 경제적 기반 등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결혼을 미루거나 계획이 아직 없음을 의미하는 것. 조사대상의 24%가 결혼을 하고 있지 않은 이유로 ‘경제적 기반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남자는 그 비율이 34%나 되었다.

결혼 연령이 상승하면서 불임부부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신생아 수에서 쌍둥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2%로 10년 전(1.13%)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의술이 발달하면서 불임부부의 인공 수정이 늘어난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난해 ‘영유아 소득공제’ 등 세제혜택을 발표했던 정부는 올해는 별도의 출산 장려책 대신 육아 지원을 통해 출산을 유도할 방침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직속 저출산사회대책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저출산사회대책 기본법안’을 마련해 9월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안명옥 의원은 “저출산사회에 대응하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백히 하는 것이 목표”라고 법안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럼에도 1960대의 가족계획운동 같은 정부 주도의 출산정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띠고 있다. 김승권 실장은 “출산은 사적 영역이므로 출산 장려정책이 자녀를 갖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출산 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최근 출산율의 급락은 여성의 고학력화로 출산시기가 늦춰졌기 때문”이라며 “2000년대 전반에 출산율이 바닥을 친 뒤 고령화 속도가 둔화되면 출산율 하락세도 완만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4:08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