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들기는 글에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해 시집보내는 거죠"마흔의 홀로서기 '북 커뮤니케이션' 창업, 자신감이 가장 큰 밑천

[우리시대의 2군] 책 만드는 사람 김형옥
"책 만들기는 글에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해 시집보내는 거죠"
마흔의 홀로서기 '북 커뮤니케이션' 창업, 자신감이 가장 큰 밑천


‘직장 생활한 지 몇 년이 되면 독립해야지, 나이 몇이 되면 내 사업을 해야지’하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적잖다. 그러나 월급쟁이에게 독립이 생각같이 쉽던가. 조직에서 떨어져나가는 두려움, 가족과 주변에 비칠 달라진 모습, 아이들 뒷바라지 할 생각, 막상 생각 같지 않은 여건 등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더러는 새로운 항해에 나서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끝은 아니다.

김형옥(42)씨는 나이 마흔이 되면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실행했다. 딱 마흔이 된 2002년 다니던 한 기독교 출판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북 커뮤니케이션’을 창업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2가 중앙시네마 맞은편 건물 7층 임대 사무실의 주인이 됐다. 사무실은 도심의 빌딩 꼭대기 층 옥탑방이지만 창 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도심의 풍경이 심심찮다.


- 가장 잘 할수 있는 일에 도전

작은 출판사, 출판기획실의 관행대로 대표인 김 씨의 직함은 기획실장이다.

김 씨의 출판기획실이 하는 일은 출판사로부터 원고를 넘겨받아 교정을 보고 본문과 표지 등의 디자인 과정을 거쳐 인쇄 전 단계까지 책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책을 만들어 주는 곳, 김 씨는 자신의 일을‘책을 만들어 시집 보내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즐겨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창업해야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던 김 씨는 창업에 대비해 꼼꼼한 준비를 했다.

20년 전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출판사를 선택한 것도 돌아보면 우연이 아니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 대학진학을 미루고 출판사에 취업, 교정 일을 하던 1982년 당시는 디스켓에 담긴 요즘의 원고와 달리 200자 원고지에 쓴 작가나 번역가의 원고를 보고 활자를 뽑아 책의 판형대로 조판이 되면 원고와 교정지를 대조하며 읽고 교정을 보던 시절이었다.

첫 출판사에서 3년 반, 경력자로 옮겨간 두 번 째 출판사에서도 교정 일을 계속했다. 3년 후 결혼하며 출판사를 떠났으나 아이를 키우며 지내기 3년, 빨간 볼펜을 보면 교정을 보고 싶어 편집기획실에서 원고를 받아 일하기 3년, 다섯 번째 이자 마지막 직장이 된 한 기독교출판사에 취업해 2002년 가을 그만둘 때까지 4년간 일했다.

그 동안 진학의 뜻도 이뤘다. 1997년 방송통신대학 국문과에 입학해 졸업하던 해인 2001년 내친김에 대학원에 진학해 출판잡지를 전공하며 시야를 넓혔다. 모두가 준비된 작업이었다.

창업을 결정하고서는 인터넷을 통해 출판인들의 모임과 출판 추세ㆍ동향 등을 점검하며 ‘앞으로 출판계는 출판사가 책 제작을 외부에 맡기는 외주 추세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 편집기획실로 시작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ㆍ대형 출판사처럼 저자와 판권을 확보하고 3천 권 안팎의 초판을 찍고 광고ㆍ홍보하고 영업해야 하는데 드는 운영 자금 등 큰 돈 들이지 않고 일거리를 맡아 처리하면 바로 현금 수입이 생겨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창업 첫 해 김 씨는 혼자서 의뢰 받은 원고를 읽고 어떤 때 3∼4권이 한꺼번에 몰리면 밤샘도 즐거이 했다. 1년 동안 자신이 잘 할 수 있을지를 점검하며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김 씨는 편집 직원을 채용하고 디자인 팀과도 연계 체제를 갖췄다.

출판계는 인맥으로 연결돼 있듯 오래 전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일거리를 맡겨오고 한 번 일을 준 사람들이 연결이 돼 고객이 생겼다. 김 씨는 이제 일거리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큰 밑천이다.


- 창업 2년만에 25권 만들어

창업한지 2년 가까운 동안 김 씨는 25권의 책을 만들었다. 아니 만들어 주었다.

?씨가 꼽는 기억에 남는 책은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창해) △대중의 미망과 광기(창해) △의사 결정의 순간(21세기) △3040, 희망에 배팅하라(창해) △강한 회사는 회의 시간이 짧다(21세기북스) △세계 자동차전쟁(시아출판사) 등이다.

“서점이나 지하철에서 우리 손을 거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자식 같은 생각이 들어요.”

책의 교정은 오ㆍ탈자 만 잡는 것인지 아니면 내용에까지 손을 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오ㆍ탈자도 잡고 문장이 어색한 부분이나 앞뒤가 연결되지 않고 튀는 부분은 번역서인 경우 원서와 대조하기도 하고 번역자에 문의해 바로 잡기도 합니다.”

간혹 번역자가 잘못 번역하거나 슬쩍 넘어가 버린 부분을 발견해 고칠 때도 있다.

교정 일에 일가견이 있는 김 씨 주변에는 전문적으로 일을 맡는 프리랜서 네 다섯 명이 동참하고 있다. 책 한 권의 원고를 보는데 보통 한달, 한 원고를 3∼5번 본다.

스스로 선택한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편집을 대행하는 곳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될 것 같지 않은 책, 내용이 그저 그렇거나 부실한 책의 제작을 의뢰 받는 경우 편집대행비를 받으니 그냥 만들어 주는지, 그럴 경우는 어떻게 하는지….

“원고를 받아 검토하면 답답한 경우도 있지요. 출판의도가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은 경우 등. 그러면 출판의도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판매위주의 책이라면 이렇게 보완하는 것이 좋겠다, 어떤 경우는 내용을 만들어 넣는 경우도 있지요. 문장력이나 흐름을 끌어가는 힘이 없는 글도 있고, 그럴 경우 의뢰한 출판사와 협의해 고치고 다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 간직하고 싶은 책 만들고 싶어

시의를 반영한 일회성 책과 장삿속 책이 범람하는 풍토를 지적한 김 씨는 좋은 책, 때를 타지않고 오래도록 꾸준히 읽힐 책을 편집하면 좋다고 했다.

우리 사회 다른 부문도 엇비슷하지만 출판계도 사람을 키우지 않고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는, 잘 팔릴 책을 꺼집어 내는 기획자에 눈길이 쏠리며 투자와 인내가 필요한 출판 실무자들, 사람에 대한 투자는 뒷전이 됐다. 그래서 출판사의 책을 만들어 주는 일, 출판대행의 추세로 갈 것이라는 게 김 씨의 전망이다.

“출판을 문화사업이라고들 하는데 출판사들이 문화는 포기하고 사업에만 집중하는 문제점도 큽니다. 어떤 부문에도 디자인이 중요하지만 질은 따라주지 않는데 포장만 번지르르할 때 책을 읽은 독자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됩니다.”책 만드는 사람의 걱정이 예사롭지 않게 전해 온다.

“출판사들도 먹고 살아야 좋은 책을 만들지요. 좋은 책을 내면 독자들이 읽어주고 판매가 돼야 출판을 계속할 수 있으니 어느 한 쪽만 탓할 것은 아니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일로 창업해 자신감이란 적지않은 성과를 이뤄낸 김 씨는 앞으로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투자가 가능할 때 만들어 주던 책을 직접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경험을 바탕으로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김 씨는 “2년 전 그 때 제가 잘 시작한 것 같다”고 말한다.

준비하고 변화의 추세에 민감하며 욕심내지 않고 나아가는 도전의 한 모습을 본다.

입력시간 : 2004-09-0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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