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와 관객이 함께 부대끼는공유와 소통의 장 만들겠다'뮤지컬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 이끌어가는 뮤지컬 배우

[감성 25시] 뮤지컬 배우 이석준
배우와 관객이 함께 부대끼는
공유와 소통의 장 만들겠다
'뮤지컬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 이끌어가는 뮤지컬 배우


무대에서 그는 유령이었다. 인물들 삶에 개입해 배우의 심리를 조정하는 그는 신이었다.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배우들은 그가 자신의 운명을 조롱하는 것을 모르는 채 괴로워했다. 그는 관객과만 소통한다. 이 악마 같은 남자는 주인공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수시로 변신을 시키는데, 우유배달원이 갑자기 선생님이 되고 의사가 되는 것이다. 역할이 바뀐 것에 대해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그. 그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해설자이다.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존재. 어떤 역할을 해도 정작 자신을 잃지 않는 카리스마를 가진 뮤지컬 배우 이석준을 만났다.

방금 전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의 1회 공연 막이 내리고 , 감동이 잔잔하게 내려앉은 텅 빈 무대에서 텅 빈 객석을 내려다 보는 나에게 "배우와 관객은 그리 멀지 않죠? 그렇지만 서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많지가 않아요. 좋아하는 배우를 만나기 위해 좁은 분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게 고작이죠. 뮤지컬 배우와 관객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대사를 하듯 말하는 이 남자의 이야기. '뮤지컬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블러드 브라더스에서 카리스마 있던 나레이터와는 다르게, 그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는 편안한 남자였다. 외모는 토크 쇼 진행자 윤도현을 닮았고, 말솜씨는 입담꾼으로 소문난 김제동의 재치 그대로다. 세상엔 말 잘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에 모두 능한 이석준 처럼 끼 많은 사회자는 아마 드물 것이다. 게다가 뮤지컬 배우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 쇼는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선물이며, 그 자체가 신선한 이벤트다. 새로운 공연문화를 창조한 뮤지컬 이야기 쇼의 이석준은 좀처럼 다가갈 기회가 없었던 뮤지컬 배우와 관객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중계자다.

"뮤지컬 배우가 되기까지 배우들에겐 드라마틱한 사연들이 아주 많거든요. 유명해지지 않는 이상 배우로만 살아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죠. 그들의 생활과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와, 배역을 맡기까지의 고충들을 관객과 이야기 하면서 함께 공유하고 싶었어요."

일주일에 한번, 공연이 쉬는 월요일 밤에 진행되는 이야기 쇼는 이런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조승우가 출연했을 때는 예매수가 좌석수의 배가 넘기도 했고, 뮤지컬 '소나기'팀이 출연했을 때는 배우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이야기에 관객과 배우가 한 마음이 되기도 했다. 홍대 앞 테아뜨르 '秋'소극장을 빌려 벌써 20회째 공연에 들어간 이야기 쇼는 처음부터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요즘엔 관객들이 객석을 채워서 마음이 흐뭇하지만, 4월 중순 처음 시작했을 때는 스폰서 하나 없이 힘들게 진행이 되었죠. 스태프들은 뮤지컬을 사랑하는 팬들로 모였구요. 낮엔 직장 생활을 겸하면서 일을 도와주는데 조건 없이 도와주는 순수한 맘에 감격할 정도에요. 그러고 보면 전 행복한 남자인 것 같아요."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오스카 와일드의 아름다운 동화 '행복한 왕자'가 떠오른다. 그가 소년소녀 가장을 돕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금과 보석, 루비로 장식된 자신의 귀중한 것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비로소 행복해지는 왕자. 그렇다면 스태프들은 왕자의 값진 것들을 날라다 주고 그와 운명을 같이 하는 제비 같은 존재다. 그가 요즘 더 행복해진 이유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짬짬이 자원 봉사하는 사람들이 (짬봉이로 불린다) 줄을 서 있기 때문이란다. 인간적인 정으로 똘똘 뭉친 이야기 쇼는 100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음으로는 100회를 넘어서고 싶어요.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관객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무掃?입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예요. 2만5000원은 작은 돈이 아니거든요.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이나, 뮤지컬 배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들과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많이 마련해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죠. 이야기 쇼가 더 많이 알려지고 스폰을 받는다면, 모든 이익을 관객에게 드리고 싶은 게 제 마습結뮈?" 그는 역시 행복한 왕자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유독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대가족에 둘러싸여 어른들 앞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노래와 춤을 보면서 흐믓해 하는 어른들을 보면 절로 신이나 어린 맘에 앵콜 송을 서슴없이 불러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나 박수를 받거나 환호 받는 역할을 하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장래 희망인 적도 있었어요. 반 전체 학생을 지휘하는 캡틴 역할이잖아요. 농구나 축구 경기에는 빠지지 않았죠. 여학생들의 환호를 받으면 신이 나서 경기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운동을 잘하나 봐요."

타고난 스타의식으로 언제나 주목 받는 역학을 해야만 에너지를 얻었다는데 천진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가 배우가 되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아가씨와 건달들'이란 뮤지컬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서의 삶을 동경했어요. 관객에게 박수를 받고, 역할에 따라 다른 인생을 접해볼 수 있고, 제가 좋아하는 노래와 춤과 연기가 있는 곳. 제 꿈이 바로 무대 위의 인생이구나 싶었어요. 뮤지컬 배우. 고민할 이유가 없는 선택이었죠."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배우의 삶을 살아가는 그의 인생은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일년동안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아 슬럼프에 빠졌던 우울한 시기 한강에 투신자살하려던 못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를 배우로 크게끔 해준 연출 선생님의 채찍질이 없었다면 이야기 쇼도, 무대 위의 그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뮤지컬 배우의 숨은 이야기만을 끄집어 내서 관객에게 감칠맛 나게 전달하는 그의 인생도 만만치 않게 드라마틱 했다. 배우의 희로애락을 알기에, 이야기 쇼 진행자의 자격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이야기 쇼 100회째가 되면 이석준씨의 이야기가 진행되겠네요?" 묻자, "그렇지 않아도, 뮤지컬 배우들의 숨은 이야기를 자꾸 들춰내는 저를 보고 우리 스텝들이 '100회째는 무조건 이석준이다' 라고 말하고 다녀요. 제가 에 이야기를 한다면 무척 쑥스러울 것 같아요."

그의 멋진 춤, 노래 실력과 천연덕스런 연기를 보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그를 잘 모르겠다면 매주 월요일 밤 홍대 앞 테아르트 '秋'에 가 보라. 무대에서나 볼수 있는 배우들이 작은 소극장에서 수다를 떨고, 관객과 가까이서 이야기하는데, 그곳에 갔다는 것 자체가 행운인 것이다. 또한 이벤트에 당첨이 되면 선물도 받을 수 있고 배우들과 직접 통화할 수 가 있다. 돈이 없다면 짬봉이(짱짬이 자원봉사하는 사람들)를 지원하자. 그들에겐 무료란다.

그는 이야기하는 남자다. 관객이 한 명이어도 좋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는 자만 있다면 언제라도 무대에서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천상 그는 이야기꾼이다. '뮤지컬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길 바란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09-10 16:36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