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강변의 위태로운 '비행'가출 충소년에서 폭주족까지 이단아들의 해방구, 술 파티·즉석 부킹 등 탈선의 공간

[이색지대 르포] 탈선 무풍지대 한강시민공원
새벽 한강변의 위태로운 '비행'
가출 충소년에서 폭주족까지 이단아들의 해방구, 술 파티·즉석 부킹 등 탈선의 공간


한강시민공원의 주인은 누구일까.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이곳에서 운동하는 시민들의 것이며 차가 막혀 답답한 출퇴근길 잠시 바라보며 피곤을 씻는 운전자들의 것이다. 휴일을 맞아 바람을 쐐기 위해 나온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고 낭만적인 데이트를 즐기려는 연인들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자정이 지나 새벽이 오면 이곳의 주인은 청소년들이 된다. 가출청소년부터 시작해 오토바이 폭주족까지 세상이 이단아로 구분한 비행 청소년들이 밤새 술을 마시며 노니는 공간이 되는 새벽녘의 한강시민공원. 이 곳의 주인은 분명, 이들 청소년들이다.


- 자정 넘기며 서서히 모습 드러내는 청소년

자정을 막 넘긴 시간의 한강시민공원 A 지역, 하나 둘씩 몰려든 청소년들이 공원 이곳 저곳에 자리를 잡는다. 한강시민공원의 자정은 그 주인이 뒤바뀌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 전까지 한강시민공원을 채우고 있던 일반인들이 하나 둘 귀가 길을 서두르면 새로운 주인인 청소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우선 자리를 잡는 이들은 남자들이다.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이 대부부이고 간혹 성인들도 보인다. 이들이 어디선가 구입해온 술과 안주로 술 파티를 벌이면 곧 한강시민공원의 새벽이 시작된다.

특이한 점은 술자리 인원수보다 훨씬 많은 종이컵들. 남자 서너 명이 몰려와 술을 마시면 종이컵은 보통 30여개 정도를 준비한다. 이는 누군가 합석할 이들을 위한 배려다.

술자리가 무르익기 시작하면 중학교 2, 3학년 내지는 고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학생들이 무리지어 한강시민공원의 이곳 저곳을 배회한다. 애띤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한 아이들. 사실 한강시민공원에서 만난 여학생들은 고등학생보다 중학생이 훨씬 많아 보였다. 이제 고작 15살 가량의 여학생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여기 저기 술자리를 돌아다니며 술 파티를 벌이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인다.

한강시민공원 새벽시간의 절대 원칙, 부킹은 철저히 여성 위주로 이뤄진다. 남자들이 술자리를 벌이고 충분한 종이컵을 마련해두면 주위를 배회하던 여성 무리가 마음에 드는 이들을 선택해 합석한다. 그렇게 이들의 하룻밤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종이컵을 충분히 마련하는 이유는 부킹이 단 한번에 이뤄지지는 않기 때문. 함께 술자리를 가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부킹은 끝이 난다. 그리고 또 다른 만남을 찾아 여성 무리가 이동하는 것이다.

새벽 1시를 넘어서서 오토바이 몇 대가 한강시민공원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본진에 앞서 이곳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한 선발대. 경찰의 순찰 상황 등을 살핀 뒤 연락하면 곧 본진이 들어온다. 이들은 술자리를 벌이기보다는 오토바이로 온갖 묘기를 부리며 여학생들의 환심을 산다. 들어올 때는 혼자였지만 누군가 뒷자리에 태우고 함께 떠날 여자를 찾기 위해 한강 시민공원을 찾은 것이다.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한강시민공원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 금세 여학생들이 몰려든다. 이들의 현란한 묘기를 구경하며 함께 환호성을 지르고 함께 담배를 나눠 핀다.

한강시민공원 A 지역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중인 한 상인은 “여자 애들이 무척 어린데 새벽까지 여기서 놀다 돌아간다”면서 “옷 가방을 아예 들고 다니는 얘들도 있고 며칠동안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애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가출 청소년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 외국인 노동자와 가출 청소년 부킹

한강시민공원을 가득 메운 청소년들 사이에서 기자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한강시민공원 A 지역 인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들 역시 새벽에 이곳을 찾아 술을 마시며 놀다 들어가곤 한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여느 술집보다는 이곳이 더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이들의 술자리 한 구석에 마련된 수십 개의 종이컵을 발견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외국인 노동자와 가출 청소년의 부킹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銖?것은 아니고 친구네 집에서 잔다고 집에 거짓말하고 친구들과 함께 한강시민공원에 나왔다는 중학교 3학년의 한 여학생은 “남자애들 물이 너무 안 좋으면 외국인들과 합석하기도 한다”면서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닌데 가출해서 노는 애들보다는 씀씀이가 좋은 편이라서 가끔 어울린다”고 얘기한다.

기자는 오랫동안 이들 외국인의 술자리에 여학생들이 부킹하는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이날 외국인 노동자들은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가끔 순찰을 도는 경찰의 모습도 눈에 띈다. 순찰을 도는 경찰의 주요 임무는 싸움이 생길 경우 말리고 헬멧을 쓰지 않은 폭주족들을 단속하는 것. 물론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고 이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제지하고 귀가를 종용해야 하나 그러기에는 청소년들이 너무 많다.


- 여자 태운 폭주족들의 무한질주

새벽 두시 반이 지나면서 하나 둘 씩 한강시민공원을 떠나기 시작한다. 다시 남녀가 각각 무리지어 떠나 가기도 하고 무리 지어 어딘가로 향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부킹의 목적인 남녀 커플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인기가 있는 이들은 단연 오토바이 폭주족. 뒤에 여학생을 태운 채 한강시민공원을 떠나는 이들이 상당수다. 물론 대부분은 헬멧도 쓰지 않은 상태로.

가출한 지 2년, 그 동안 한강시민공원 A지역 주변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며 지내고 있다는 한 남학생은 “피차 돈이 없기 때문에 갈 곳도 뚜렷하지 않다”면서 “예전에는 바로 부근 주택가가 철거를 앞두고 비어있는 상태여서 거기로 많이 갔는데 지금은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으로 되어버렸다. 오토바이 타는 애들이 어딘가 잠자리를 파악해놓고 여자를 꼬시러 왔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어디론가 향하는 이들의 모습에 ‘탈선’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6월부터 8월까지가 한강시민공원의 피크라는 게 주변 상인들의 설명. 새벽에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9월부터 하나 둘씩 모이는 이들의 수가 줄어 곧 한강시민공원의 새벽은 다시 텅 빈 공간이 되고 만다.

과연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따스한 가정을 떠나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이들을 돌보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은 누구의 몫일까. 10대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벌이는 술 파티와 무작위적인 부킹, 그리고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는 잠자리와 혼숙까지.

이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롭게 보였다.

입력시간 : 2004-09-2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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