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프지만 매력적인 직업"다시 시작한다 해도 수사형사가 되고 싶은 동대문경찰서 터줏대감

[우리시대의 2군] 강력반 형사 홍동표
"고달프지만 매력적인 직업"
다시 시작한다 해도 수사형사가 되고 싶은 동대문경찰서 터줏대감


삶에 변화가 일고 있다. 어쩌면 그 변화는 벌써 깊숙이 진행되고 있는 지 모른다. 젊은층이나 중년층이나 일자리 얻기가 쉽지 않지만 환경의 변화 못지않게 내면의 변화도 거세다. 겉으로 번듯하고 남이, 사회가 알아주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삶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찰 생활 24년 중 22년을 외근 형사로 뛰고 있는 홍동표 경사(51ㆍ서울 동대문경찰서 형사과 강력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 한 길을 달려가는 사람이다. 자정 무렵 퇴근해 새벽 출근을 하며 부딪치는 어려움과 마음 고생은 많지만 그는 자기 직업에 만족하며 보람을 느낀다.

홍 형사가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1980년 당시만해도 그의 표현대로 경찰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는 많이 바뀌었다. 경찰관이 되려는 지원자가 늘어 공채 경쟁률도 높다. 홍 형사는 한 우물을 판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178㎝의 큰 키에 점퍼 차림의 외모가 시원하다. 동대문경찰서 별관 지하 쇠창살문을 지나 강력반 조사실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홍 형사는 강력반이 형사계에서 분리돼 나온 것이 몇 년인가에 말이 머물기 무섭게 “확인해 봐야지요”라며 후딱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또 휴대폰 벨이 울리자 주저없이 점퍼 안 티셔츠 윗주머니에서 전화기를 빼내들었다.

“성격이 급한 모양이지요?”“예, 뭐 미루지않고 사건이 있으면 바로 바로 처리하는 편이지요.”홍 형사는 그러나 자신이 과격하거나 와일드한 성격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처음 전화로 이야기할 때는 딱딱해 조금 정나미가 떨어졌는데 이야기를 나누어가며 진지하고 정이 느껴졌다.


- 경찰 24년중 20년을 동대문에서

경찰 생활 24년 중 경찰종합학교를 나와 순경으로 임용돼 처음 6개월을 근무한 서울 남부경찰서와 서울경찰청 3년 6개월을 뺀 20년을 동대문경찰서에서 근무한 홍 형사는 동대문경찰서가 전통이 있고 서풍이 좋다고 했는데 새로 전입 온 직원들에 대해 텃세 없는 것이 좋고 오래 근무하던 곳이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했다.

그가 속한 강력4반은 살인 강도 절도 폭력 등을 모두 다루지만 폭력이 전문이다. 서울 토박이지만 경찰근무 햇수만큼 인천에 눌러 살며 심야 퇴근, 새벽 출근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강력반 형사 기본 근무 시간인 밤11시가 지나 퇴근하고 새벽 5시30분 인천 집을 나서는 덕에 출퇴근길은 막히지 않아 좋단다.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한 숱한 시간들, 대입 준비중인 외동딸은 클 때까지 잠자는 얼굴만 봐온 미안함, 격무에 비해 급여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그는 다시 시작해도 수사 형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고 학문적으로도 체계적으로 공부한 경찰관이 되고픈 바람이다. . 주위에 경찰이 되려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 권장하겠다는 그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첩보를 받아 정보화하고 탐문해가며 피의자의 인적사항을 찾아 범인을 검거하는 일이 매력적인 직업 아니냐”고 했다.

쉰을 넘긴 강력반 홍 형사는 이제 57세 정년을 6년 여 남겨두었다. 강력4반에서 큰 형님으로 통하는 그는 위로 반장(경위)과 20ㆍ30ㆍ40대로 다양한 5명의 반원들과 하루 세끼를 같이 하고 큰 사건이 나면 함께 뛰며 가족처럼 뭉쳐 지낸다. 직원들끼리 있을 땐 아들 뻘 막내 형사의 이름을 부르다가도 누군가 있으면 ‘이 형사’라고 부르는 그는 강력반 후배 형사들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는다. “요새 젊은 사람들 참 깨끗하고 사명감도 높아요. 컴퓨터와 게임 등에 익숙해 후배들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올해 추석에도 예년과 같이 빨간 날자 연휴에도 빠짐없이 출근한 그는 연휴 마지막 날인 29일은 아침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24시간 형사기동대 근무를 했다. 8일에 한 번 ‘차 타는 날’이 돌아오는 ?쨔?형사들의 형사기동대는 우범지역 순찰과 범죄발생 신고 출동, 첩보수집 활동을 한다.

대화 도중 홍 형사의 휴대폰은 이따금 두 대가 번갈아 울렸다. 한 대는 휴대폰 숫자로 주민등록번호를 누르면 수배자나 수배차량인지 즉시 조회가 가능한 기기. 말하자면 ‘국가가 준 휴대폰’이고 다른 한 대는 개인용이다.

첩보 수집과 사건 추적의 삶을 사는 홍 형사는 최근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2년 전의 종로6가 단란주점 강도사건을 들었다. 3인조 강도가 여주인과 손님들을 테이프로 묶고 5천만원대의 금품을 털어 달아나고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참 후 범인들이 전남 순천의 술집에서 사용한 수표1장이 발견됐고 현지로 달려간 홍 형사는 일대의 업소 등을 수소문, 범인들이 며칠 전 인근 포장마차에서 싸우다 경찰차에 실려갔다는 증언과 범인 중 한 명이 광양경찰서에 출두한다는 사실을 확인, 잠복하다 한 명을 검거하고 나머지 일당도 모두 붙잡았다. 강탈해간 금품도 되찾았다. 사건 해결후의 이 같은 회복은 형사들에게 보람과 희열을 안겨준다.


- 신고 꺼려하는 시민의식에 아쉬움

홍 형사는 옆 집이 잔디를 안 깎아도 이상하다며 신고하는 한 외국의 경우처럼 시민들의 신고가 사건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데 우리는 신고하면 불편과 보복이 따른다는 우려로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해 탐문수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체력만 따라주면 정년까지 강력반에서 뛰고 싶다는 홍 경사. 체력관리를 위해 경찰서 인근 헬스 클럽에 큰 맘 먹고 6개월치 회원권을 끊었으나 지난 3개월간 꼭 한 번 다녀왔다. 나이 들며 한창때에 비해 힘이 달리고 활동적인 젊은 형사들과 첩보 경쟁도 힘겹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그는 “큰 일 났지만 열심히 해야지요”라고 웃었다.

집에 양복이라고는 춘추복 1벌과 겨울용 1벌 등 예식장용 2벌이 있지만 양복에는 미련이 없다.

‘형사 생활에 남은 건 점퍼뿐’이라 듯 티셔츠와 점퍼차림에 운동화를 신으면 몸도 마음도 편하다. “누구나 그렇듯 승진 욕심은 있지요. 경위로 승진해 반장도 되고 싶고…그럴러면 사건을 해결하고, 열심히 뛰어야지요.”

수사 경찰로 살며, 다시 시작해도 경찰관이 되고 싶은 홍 경사. 젊은 후배 형사들에 수사 경험을 나누고 그들에게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가족처럼 또 선의의 경쟁자로 살아가는 그가 희망대로 강력반의 큰 형으로 오래오래 뛰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입력시간 : 2004-10-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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