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되는데 테스트 한번 받아보시죠"길거리 캐스팅 전성시대, 한시간에 10여 명씩 연예인 입문 기회

[이색지대 르포] 대한민국 스타산실은 길거리?
"얼굴 되는데 테스트 한번 받아보시죠"
길거리 캐스팅 전성시대, 한시간에 10여 명씩 연예인 입문 기회


명동 스타벅스, 삼성동 코엑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그리고 동대문 시장, 이대 부근 보세 거리 등등. 이곳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은 거리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연예인이 배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당 10여명씩 연예인 데뷔의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니 말 그대로 ‘선택의 땅’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소위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 “너무 느낌이 좋다. 한번 카메라 테스트 받아보지 않을래요?”라고 말을 걸어오며 건네는 명함 한 장. 평범한 여성에서 연예인으로 신분을 바꿀 기회가 오는 것이다.


- 신분상승으로 이어질까?

명동 중심가 초입, 스타벅스가 위치한 사거리는 ‘길거리캐스팅 4거리’라 불릴만큼 캐스팅 매니저들의 세상이다. 두세 명이 무리를 지어 한 팀을 이루는 캐스팅 매니저들이 적게는 한 팀에서 서너 팀까지 몰려들면, 길을 지나는 행인보다 캐스팅 매니저가 더 많을 정도다.

이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미래의 스타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몸에 딱 붙는 정장으로 한껏 폼을 잡고 손에는 두꺼운 명함 지갑이 들려있다. 점 찍은 여자들에게 명함을 건네고 그들의 연락처를 받는 게 이들의 주요 업무.

과연 이들이 명함을 건네는, 다시 말해 길거리캐스팅의 영광을 누리는 대상은 어떤 여자들이고 또 얼마나 이런 기회를 잡게 될까. 취재진은 10월 5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두시간 동안 명동 스타벅스 앞 사거리에서 이들의 모습을 밀착 취재했다.

이날 길거리캐스팅에 나온 이들은 총 4명. 두 명씩 한 팀으로 서로 다른 기획사에서 나온 이들이었다. 도로 양쪽 끝에 서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주목하던 이들은 취재 시작 5분여 만에 첫 번째 길거리캐스팅을 시도했다. 왼쪽 편에 서있던 한 캐스팅매니저가 교복을 입고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여학생 3명에게 다가갔다.

명함을 건네며 여학생들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자 여학생들이 깔깔거리며 화답한다. 그렇게 5분가량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캐스팅매니저는 무언가를 받아 적는다. 아마도 여학생의 핸드폰 번호를 적는 것으로 보였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대성공. 비슷한 시기에 반대편 캐스팅 매니저들도 작업에 돌입했다.

이들의 캐스팅 대상은 중고생이 아닌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성 두 명. 하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두 여성이 이들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을 따라가며 계속 말을 거는데 결국 실패로 마무리됐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서 행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10여분쯤 시간이 지나 이들은 또 다른 여학생들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넨다.

이렇게 두 시간 동안 두 팀이 명함을 건네고 연락처를 받아낸 이들은 총 21명. 말을 걸었지만 명함을 건네 받는데 실패한 경우가 총 2번. 결국 두 시간 동안 23명이 접촉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런 영광을 누리는 여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냉담했다. “이런 명함 한두 번 받아본 것도 아니고 오랜다고 가봐야 돈 내란 얘기밖에 안 한다”는 한 여중생은 “친구 중에 속아서 계약했다가 돈만 3백50만원이나 날린 애도 있다”고 얘기한다.


- 연예 아카데미 종사자가 대부분

그렇다면 이들에게 선택돼 명함을 받은 여학생들은 어떤 이들이었나. 대부분 평범했다. 약간 튀는 스타일의 옷차림이나 외모를 갖췄다는 점이 나름대로의 특징이랄까.

결국 이날 취재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약간 튀는 스타일로 꾸미고 길거리캐스팅이 자주 이뤄지는 거리를 오가면 대부분 캐스팅 매니저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

실제 연예계에 종사중인 매니저들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말한다. 길거리캐스팅을 통해 연인웰영풔?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라는 것. 차라리 공개 오디션을 통해 좋은 신인을 선발하는 게 요즘 흐름이란다. 거리에서 명함을 건네는 이들은 대부분 연예인 아카데미에서 나온 이들일 뿐 연예인이 소속되어 있는 연예기획사와는 다르다는 얘기.

결국 캐스팅 매니저는 길거리캐스팅에 성공해 아카데미 학생 수를 늘리느냐는 요원이며 포섭 숫자에 따라 보수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건네는 명함 역시 실제 아카데미 전단지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명함을 건네 받는 대상 역시 연예인으로 성공 가능성이 보이기 보다는 연예인이 될 꿈에 부풀어 고액의 아카데미에 등록할 만한 이들을 찍은 것이다.


- 튀는 외모·스타일의 여학생에 초점

길거리 캐스팅을 위해 나선 이들에게 최고의 캐스팅 대상은 예중 · 예고에 재학 중인 여학생. 평범한 여학생들에 비해 ‘끼’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예중 · 예고에서는 ‘연예계 데뷔 시 자퇴’가 룰로 정해져 엄격히 관리하고 있지만 한번 연예인의 꿈을 가진 여학생들은 자퇴나 전학도 불사한다.

최근 길거리캐스팅을 통해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김정은 양(가명ㆍ14)이 바로 그런 경우. A예중 2학년생인 김 양은 최근 친구와 함께 삼성동 코엑스 부근을 지나다 길거리캐스팅이 됐다. 명함을 건넨 캐스팅 매니저에게 별 생각 없이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 김 양은 다음 날 B엔터테인먼트로부터 “사무실로 와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아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다음 날 친구와 함께 찾은 연예기획사 사무실. 으리으리한 사무실 인테리어에 우선 기가 제압되고 인기 연예인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걸린 벽을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 서서 플래시가 터지는 쾌감과 설레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카메라 테스트를 통과하면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가수 데뷔를 준비하겠다”는 김 양의 충격 선언에 놀란 아버지와 함께 취재진은 B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찾았다.

예상대로 카메라 테스트는 합격이었다. 게다가 “정은이가 예중에 적성에 안 맞아 고민이 많아 보이더라”는 얘기까지 들은 김 양의 아버지는 황당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상담원은 “우리는 절대 아카데미가 아니다. 기초적인 교육을 위해 연기나 노래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어디를 다니건 우리는 관여치 않는다”고 설명하며 “다만 회사 내에서 교육을 받기 원하는 이들을 위해 싼값에 강의를 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싼값은 4달에 2백90만원.

결국 김 양 아버지는 “제발 우리 딸에게 다시 연락하지 말아달라”며 사정했고 실랑이를 벌이던 상담원도 하는 수 없다는 듯 “연락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상황은 종료됐다. 사무실을 나온 김 양의 아버지는 “평범한 우리 딸을 어떻게 꼬셨는지 모르겠다. 책상이라도 뒤엎고 싶었지만 혹씨 정은이에게 전화하던지 피해가 갈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사정해야 했다”며 한숨을 지었다.


- 캐스팅 제의, 전단지 받기와 같아

명동의 한 거리에서만 시간당 10명 이상의 여학생들이 이들의 명함을 받아가는 상황이니 김 양의 부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경우도 상당수일 것이다. 길거리캐스팅을 통해 연예인이 되는 길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길거리캐스팅에서 접촉 대상이 됐다는 것은 전단지를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한다. 세상은 점점 교묘해지는데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더욱 필요한 대목이다.

입력시간 : 2004-10-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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