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서의 性을 당당히 말하고 싶었어요"장애여성의 성적욕망 표현 위해 상처 드러내"저급한 상업적 의도"등 비난엔 가슴 아파

'장애인 누드' 주인공 이선희·박지주
"여자로서의 性을 당당히 말하고 싶었어요"
장애여성의 성적욕망 표현 위해 상처 드러내
"저급한 상업적 의도"등 비난엔 가슴 아파


이선희(뒤)씨와 기획자 박자주씨. / 김지곤 기자

10월 초 인터넷 공간의 인기 검색어는 ‘ 장애인 누드’. 누구나 관심을 갖는 누드라는 자극적 소재에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1급 지체 장애인이 촬영했다는 의외성이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킨 때문일 것이다.

‘ 장애인 누드’는 그래서 장애인의 성(性)을 우리 사회에 새롭게 부각시키며, 신선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인터넷에 자신을 알몸을 공개한 주인공 이선희(30ㆍ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상담 간사)씨와 이번 촬영을 기획한 박지주(33ㆍ장애인 자활후견 기관 ‘사람과 세상을 향한 큰 날개’ 사무국장)씨는 화제성과는 별개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 성매매 하는 여성 취급을 받는 것이 힘들었어요. 특히 가슴이 아픈 것은 이번 사진 공개 후 장애 여성의 성폭행이 증가할 것이라는 식의 비난을 받는 것이었죠.” 이선희 씨가 가장 속상해 하는 점은 ‘ 누드 = 선정적’이라고 몰아가는 시선이었다는 것. 일반인은 물론이고 비슷한 장애를 지닌 사람들조차 ‘저급한 상술’로 치부하고 나설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고. “ 돈 얼마나 벌었냐는 얘기를 들으면 황당해요. 돈을 번 게 아니라, 촬영하느라 쓰고 다닌 걸요.”

- 사회적 편견과 잣대에 항거

이선희 씨가 이번 사진 공개로 겪게 된 억울한 사연을 줄줄이 얘기하자, 박지주 씨도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거든다. “ 우리는 처음부터 돈을 매개로 하지 않았어요. 장애 여성도 성적 욕망을 가진 여자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 본연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는 알몸 사진을 찍은 것이지, 상업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죠.” 박씨는 이어 장애여성 성폭행의 물꼬를 텄느니 하는 비난에 대해서도 “ 성폭력은 성의 문제 이전에, 폭력의 문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 마치 여자들이 미니 스커트를 입고 밤거리를 다니면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식의 남성 편향적 시각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씨의 알몸 사진이 공개된 배경은 이렇다. 장애인 인터넷 신문 ‘ 에이블뉴스’(http://www.ablenews.co.kr)에 ‘ 박지주의 마음, 몸, 그리고 섹스’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박씨가 10월 초 올린 글과 사진이 발단이었다. ‘ 장애 여성 이전에 성적 욕망을 가진 여자에요’라는 제목을 단 글이었다. 화제의 사진은 10월 16일부터 서울 갈월 종합 사회 복지관에서 열리고 있는 ‘ 장애인 성(Sexuality) 향유를 위한 성 아카데미’의 포스터 사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장애 여성의 몸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사회에 전하려던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 중심은 사회에 대한 ‘ 도발’에 있다고 한다. 장애 여성의 몸이란 늘씬하고 탄력 있는 건강한 몸을 지향하는 사회적 잣대로 보면, 기준 미달이다. 특히나 눈으로 보기에 심각하게 드러난 장애는 외면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그처럼 상처 난 몸을 드러냈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며 그녀는 힘을 주었다. “ 걸친 옷을 벗는 것처럼, 장애와 사회적 편견이라는 두 굴레를 동시에 벗고 싶었어요.” ‘ 봐라, 우리도 섹시하지 않냐’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 사진마다 이야기가 있어요. 상처 – 고뇌 – 해방이라는 식으로요. 상처를 입고, 장애가 있는 몸을 직시하고 괴로워 하며, 다시 현실과 직면하는 용기를 얻게 되는 테마를 담았어요.” 박지주씨가 덧붙였다.

-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보라

“실은 촬영 과정도 공개하고 싶었어요. 사진만 보면 ‘예쁘다’, ‘ 별로다’ 식의 단편적인 판단을 하기 쉽잖아요. 고통을 감수하면서 촬영을 해 나가는 그 내면의 아픔까지 드러내고 싶었죠.” 이씨의 말대로 촬영 과정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옷을 벗는다는 용기는 차치하고서라도 불편한 몸으로 맨바닥에서 4~5시간은 떨어야 했고, 마른 몸이 땅과 부딪히며 골반뼈 부위 살이 벗겨지는 고통도 이겨내야 했다. 그래도 의욕 충만. 고된 강행군 작업에 먼저 손을 든 것은 사진 작가였다고. “ 외출시 소변 처리를 위해 착용한 장애인 의료용 기구(일명 폴리)의 모습까지 보여 줄 생각이었어요.”

장애인의 왜곡된 성 문제를 사회에 알려내려는 의욕이 그만큼 컸다는 것. 95년 4월 제주시 용두암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며 굴러 목뼈 5ㆍ6ㆍ7번이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고 팔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1급 지체장애인이 된 이씨는 “ 사고 후, 주변에서 은근히 ‘장애인도 ‘성을 느낄 수 있냐’며 무성(無性) 취급하는 몰이해에 시달렸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결핵성 척수염을 앓아 하반신이 마비돼 줄곧 휠체어 생활을 해 온 박씨 역시 “ 정신 지체인들에게 가해지는 불임 수술 같은 가시적인 인권 유린은 일단 둘째 치고서라도, 장애인을 아예 성의 대상으로도 보지 않는 시선이 더욱 잔인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 얼마 전 한 전신 마비 남성이 절박한 상담 전화를 걸어 왔어요. 자신이 변태인 것 같다고요. 항상 섹스에 대한 욕망이 떠나지 않아 괴롭다고요. 그러면서 자신의 폰 섹스 파트너가 돼 줄 수 있냐고 묻더군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성희롱이라며 분개했을 텐데, 그 사람의 행동은 미친 짓이 아니라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왔어요. 섹스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인데 장애인이란 이유로 누리지 못하고 사니 늘 그 욕망에 시달릴 수 밖에요.”

박씨는 “ 이처럼 장애 남성도 성에 대해 자유로운 건 아니다”라며 “ 장애인 스스로 성에 대한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이에 대한 왜곡을 깨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씨도 맞장구를 쳤다. “앞으로 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는데 남성 장애인들도 적극 동참해 줬으면 좋겠어요.”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10-20 19:13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