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성 짙은 아름다운 선율 감정의 호사에 젖는다가슴을 울리는 감미로움 전해주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감성25시] 클래식 기타리스트 권대순
서정성 짙은 아름다운 선율 감정의 호사에 젖는다
가슴을 울리는 감미로움 전해주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낙엽이 구르고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면, 괜시리 코트 깃을 곧추 세우고 낙엽 길을 밟고 싶어진다. 쓸쓸함이 더 잘 어울리는 11월, 감미로운 음악이 함께 한다면 늦가을 풍요로운 고독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권대순씨를 만난 날, 내 맘속엔 그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 ‘서정’이 싹트고 있었다.

“19세기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잠적했던 적이 있었죠. 3년 동안 그는 완벽하게 기타리스트의 삶을 살았습니다. 기타와 사랑에 빠진 거죠. 사실 그는 기타리스트였던 어느 귀족 부인과 사랑에 빠졌던 겁니다. 불륜의 사랑이 만들어낸 명곡들에 우리가 위로를 받는 셈이죠. 그는 ‘기타의 화음은 미치도록 아름답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파가니니의 소나타 제 6번 한번 느껴보세요.”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가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흘러 나온다. 우리에겐 낯익은 곡, 그래서 더 와 닿는 곡, 바로 드라마 ‘모래시계’ 에서 혜린의 테마로 인기를 끌었던 곡이다. 음악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여서 인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연주였다.

- 기타인구 저변확대 위해 동분서주

“기타는 매우 인간적인 악기예요. 연주할 때도 사람의 심장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고, 기타의 울림을 몸 전체가 느낄 수가 있죠. 결국 가슴이 전하는 연주인 거예요.” 인간적인 악기를 연주하는 권대순씨야 말로, 인간적인 기타리스트로 보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후덕한 웃음과, 하나 하나 설명해주는 자상함과, 히끗히끗 보이는 머리색이 그를 더욱 그렇게 보이게 했다.

권대순씨는 클래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꽤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미국의 명문 피바디 음대 출신으로 학부 과정 내내 우수 학생으로 음악성을 인정 받았고 피바디 어워드를 수상까지 한 실력파 기타리스트다. 대학원 과정까지 마치고 귀국한 해가 1999년, 몇 차례의 독주회를 거쳐 2002년 독주집 ‘풍요로운 강가의 오후’를 출반했지만, 그는 아직 대중에겐 낯설다.

그것은 그가 한국에 돌아와 기타리스트로서 자신을 내세우는 일보다, 기타의 위상 정립을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유명해지고자 맘을 먹으면 누구나 유명인이 될 수는 있죠. 하지만 그 유명세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음악성이고, 더욱 나아가 자신이 다루는 악기에 대한 애정이예요. 기타는 우리나라에서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비해 대우를 못 받고 있습니다. 기타가 독주 악기임에도 아직 한국 대학엔 기타과가 분리되어 있지 않거든요.”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또한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기타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 그래서 그의 후배나 제자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 그의 바램이다.

그는 2003년 스페인 기타 페스티발, 2004년 라틴 아메리카 뮤직 페스티발, 국제 기타 콩쿨 대회 등을 개최하며 한국기타 발전의 모색을 시도해 왔다. 또한 전국 기타 콩쿨 대회를 국제 기타 콩쿨로 격상시키기 위해 그는 국내의 기타 음악과 관련된 단체뿐만 아니라, 스페인,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대사들과 외교적인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너무 자신을 내세우는 일 보다는, 기타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다같이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 동아리 활동에서 싹튼 기타리스트의 꿈

어릴 적부터 조용한 성격이었던 그는 클래식 음악 감상이 유일한 취미였다. 테이프가 늘어져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때까지 듣고, 고전 음악과 영화 음악에 흠뻑 빠져 지낸 유년 시절, 그의 오랜 꿈은 사실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하지만 그에겐 음악을 전공할 기회가 오지 않았고, 대학 학부 전공도 음악과 상관없는 공대에 진학한다.

그는 동아리 서클에서나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었지만 관淄풔騈?없어서, 할 수 없이 선택한 것이 클래식 기타반이었다. “운명이었나봐요. 난생 처음 기타 연주를 했는데도, 어색하지 않았고, 하루 하루 실력이 늘어나는 것에 감탄한 선배들이 연주곡에서 감정이 느껴진다는 칭찬을 했죠.”경희대 주최 전국 대학생 음악 경연대회와, 한국 기타중주대회에서 우수상과 최우수상을 휩쓸고 자신을 얻게 된 그는 기타리스트의 삶을 살리라고 결심한다.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유학을 결정하던 해, 마뉴엘 바로에코의 첫 내한 독주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경이로운 테크닉에 감동을 받아, 그가 가르치는 피바디 음대에 가기로 결정을 했죠.”서른이 넘어서 유학을 가, 학부 과정부터 밟은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에 전념했다. 물론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손 자세와 또 다른 테크닉을 배웠고, 바루에코 선생에게 아론 쉴러(기타 잡는 자세와 오른손에 관한 견해가 기존의 테크닉과 다른)의 주법을 배웠다.

왼손 오른 손 분리 연습을 배우고 나서 가장 이상적인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바루에코는 “프레이징이 매우 높은 수준이며 튼튼한 테크닉과 음악성을 소유”한 기타리스트라고 그를 칭찬했다. 데이비드 레셀과 함께 살아있는 기타리스트 중 최일급 주자이며 세계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인 바루에코에게 찬사를 받는 것도 드문 일 일테다.

“그 순간 눈물이 나왔죠. 바루에코의 연주회를 처음 접하는 아마추어 기타리스트는 새로운 희망을 얻고, 프로 기타리스트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대한 절망을 갖는다는 말이 있죠. 그는 기타리스트라면 누구나 우상으로 삼는 존재죠.” 자만하지 않는 성실한 태도, 화려함보다는 자연스러운 테크닉,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 바루에코의 칭찬이 과찬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피바디 대학원 졸업후 조지 워싱턴 대학 초청 연주회 등 많은 연주회를 거치면서 그는 세계에서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지금 선화예중과 수원 과학대에 출강을 하고, 분당의 피바디 기타 음악원에서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기타리스트의 꿈을 키우는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개인 레슨을 받기 위해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겸손하게 대한다. 그에게 레슨을 받는 사람들은 “선생님에게 배운 사람들은 음색부터가 달라요. 음이 깊고 아름다운 선율에, 정확한 테크닉까지. 일반인들까지 배울 기회를 주니 오히려 저희가 영광이죠. 이 분은 클래식계에 숨어 있는 보석”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사람들에게 훈훈한 불빛이 되길

“제가 서른이 넘어 기타를 시작한 거나 다름 없어서, 중년이 넘어서 기타를 배우러 오신 분들을 보면 남 같지가 않아요. 기타 연주곡이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그들의 마음 속에 불빛이 되어 준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요.” 말을 마치고, 자신의 일이라는 듯 기타를 가슴에 안고 치기 시작한다.

그가 좋아한다는 레어 브라우어의 ‘11월의 어느날’ 이 흘러 나오자, 소란스럽던 카페엔 순간 정적이 흐르고, 그의 클래식 기타만이 마음속에 돌멩이 하나를 풍덩 던진다. 그의 1집 앨범 ‘풍요로운 강가의 오후’ 어느 한 때처럼 여운이 잔잔하다.

** 피바디 기타 음악원(031-716-2879)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11-17 17:07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