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괴담 현실화, 교육계의 안이한 대처가 낳은 예고된 파문ㅎ대폰 커닝, 대리시험에 이어 또다른 부정조직 거론으로 사건 일파만파

'설마'가 만든 만신창이 수능
수능괴담 현실화, 교육계의 안이한 대처가 낳은 예고된 파문
ㅎ대폰 커닝, 대리시험에 이어 또다른 부정조직 거론으로 사건 일파만파


돈을 받고 수능 대리시험을 친 혐의로 조사를 받기위해 경찰에 출두하는 K씨

11월 17일 전국적으로 일제히 치러진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만신창이가 됐다. 주범은 물론 수능 부정행위다. 예년 같으면 수능을 끝낸 수험생 패턴과 사회의 인식은 대충 이런 식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수험생들은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자신들이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잠정적으로 결정하고, 2학기 수시모집과 학년말 고사에 대비하는 등 ‘포스트 수능’에 전력을 기울였다. 사회와 학부모, 친지들은 ‘12년을 고생한’ 수험생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대학 진학의 가이드를 제시하는 조언자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시험 이틀만에 광주에서 터진 수능 부정행위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사회를 온통 뒤흔들고 있는 양상이다. 입시 전략도 실종된 듯한 느낌이다. 휴대폰 부정행위가 대리시험으로 번졌고,휴대폰 커닝을 한 제2의 조직이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교육계가 총체적인 혼란에 휩싸였다. 일각에서는 올해 초부터 인터넷 사이트에서 공공연하게 떠돌던 ‘수능 괴담’이 현실화했을 뿐이라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말도 한다.

• '조직적 부정행위' 제보 사실로
여기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3개월여전인 9월 초로 되돌아가 보자.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광주교육청 홈페이지 등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광주 A고생들이 조직적으로 수능 부정행위를 꾸미고 있다. 수단은 휴대폰이다. 시험장에서 휴대폰으로 각자 잘 하는 과목 답안을 송신하고 취약 과목은 공부를 잘 하는 다른 학생으로부터 받아 득점을 올리기로 모의했다. 성적이 우수한 ‘선수’도 이미 상당수 확보됐다. 예행연습도 여러 번 했다.”

사실이었다. 경찰이 11월 22일 발표한 중간수사결과는 이 같은 제보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줬을 뿐이다. 경찰 수사결과 발표 내용은 이랬다. “부정행위 주도자 6명은 뚜껑을 열지 않고도 수신이 가능한 ‘바(Bar)형’ 휴대폰 40대를 구입하고 시험 당일 답을 중계할 후배 학생들도 물색했다.

이들은 시험실 입실 때 송ㆍ수신용 휴대폰 2대씩을 가져가 1대는 어깨나 허벅지 부위에 고정한 뒤 외투를 겹쳐 입었고 다른 1대는 외투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선수’ 학생들은 문제를 다 푼 뒤 어깨 부위 등의 휴대폰을 정답 번호 숫자만큼 차례로 두드려 광주 북구 용봉동 모 고시원 4개 방에서 대기하던 중개인 역할의 후배 재학생 40여명에게 전달했다.

후배 학생들은 휴대폰에서 들리는 모스부호식의 ‘똑 똑’ 소리로 답을 계산해 이를 다시 수험생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달했다. ‘선수’들의 답이 서로 다를 때는 다수가 보낸 답으로 정리했다. 부정행위 대가로 모두 2,000만원 이상의 커닝 자금이 오갔다.” 마치 첩보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이런 식으로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된 학생은 고교생은 모두 161명. 6명이 구속돼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다시 9월 초. 이번에는 검색포탈 사이트와 교육관련 사이트에 다른 내용의 수능 괴담이 등장했다. 이른바 대리시험 모집 광고였다. “명문 K대 재학생입니다. 수능 대리시험을 원하는 학생들은 연락주세요. 단 ‘거래’는 부모님과 하겠습니다.”, “Y대생입니다. 수능 고득점을 책임질 테니 500만원만 준비하세요.”

휴대폰 부정행위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 즈음 이번에는 대리시험이 경찰의 발목을 잡았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제적된 한 여대생이 수험생의 부탁과 함께 600만원을 받고 대리시험을 친 것이다.

구속된 K(23ㆍ여)씨는 9월 초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삼수생 J(20ㆍ여)씨로부터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고민이다. 수능 성적 10%안에 들어 서울권 대학으로 가고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K씨는 ‘착수금’조로 J씨로부터 300만원을 받은 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달이 넘는 기간을 ‘주경야독’하며 수능을 준비했다.

서남수(오른쪽) 교육부 차관보가 수능부정방지 대책반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마음이 바쁜 J씨도 ‘고득점 전략집’ 등 수험서까지 K씨에게 보내주고 약속한 600만원을 채워주기 위해 돈이 생기는 대로 나머지 돈을 송금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부모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K씨의 부모는 “딸이 붙잡힌 뒤에야 대리시험을 알았다”며 “부모 속 한 번 썩이지 않았던 착한 딸이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 '제2조직설로 수사 확대 불가피'
대리시험 적발로 수습 단계에 접어들 기미가 보였던 수능 부정행위 사건은 이제 ‘제2 조직’설로 다시 시끄럽다. 경찰이 광주 J고생 30여명이 조직적으로 휴대폰 커닝을 저지른 혐의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은 19일 처음 적발된 광주 S고생들과는 별개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수능 일주일전인 11월 10일 ‘공모’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학교 3학년 A(18)군이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B(18)군에게 처음 커닝을 제안했다. 이들은 이틀 뒤 같은 학교 출신인 재수생 선배 C군을 만나 “작년에 선배들이 했던 방법으로 한건 하자”고 제의해 이른바 선후배간 ‘대물림 커닝’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휴대폰 수능 부정행위→ 대리시험→ 제2 조직으로 속속 이어지는 수능 커닝 수법에 놀라고 있다. 휴대폰을 이용한 ‘디지털 첨단 커닝’에서 ‘1대 1 아나로그 대리시험’까지 수능의 온갖 부정 형태를 담고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수능 커닝 파문이 과연 언제 진화될 지에 모아진다.

수사가 좀더 진행돼야만 정확한 전모가 밝혀지겠지만 노출 위험도 적고 참여 인원도 적당하며 정답 확율을 높일 수 있는 30~40명 규모의 ‘중소그룹형 커닝’존재 여부에 대해 경찰과 교육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는 친한 친구들끼리 은밀하게 조직해 ‘실행’에 옮길 수 있어 광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자행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중소그룹형 수능 커닝에 매우 신경이 쓰인다”며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 학교에서 적발될 경우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도 있다”고 전했다.

• "수능시스템 보완" 한목소리
이번 사건을 접하는 교육시민단체들의 반응은 어떨까. 지난해 복수정답 및 출제위원 시비 등 출제 파문에 이어 올해에는 관리에 분명한 허점이 드러난 이상 수능 시스템 자체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입 정시모집이 12월 20일부터 시작되는 만큼 그 이전에 사태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함께하는 교육시민’ 김정명신 대표의 진단이 아무래도 현실적인 것 같다. “수능 부정행위는 올해 처음 생긴 게 아닙니다. 다만 조직적으로 적발된 게 다른 점이지요. 2년째 엄청난 하자가 발생한 수능을 대대적으로 보수할 사회적 합의가 마련돼야 할 시점입니다.”

김진각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 2004-12-02 13:55


김진각 사회부 기자 kimj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