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영혼을 가진 시리도록 순수한 스물 셋의 소년뮤지컬 콰지모도 역 으로 주목받는 신인

[감성25시] 뮤지컬 배우 이진규
맑은 영혼을 가진 시리도록 순수한 스물 셋의 소년
뮤지컬<노틀담의 꼽추> 콰지모도 역 으로 주목받는 신인


한 가지 이미지로 규정하기 힘든 배우가 있다. 매력을 표현하기에 단어가 부족하던가, 섣불리 정의 내리고 싶지 않은 경우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느낌을 주는 양파 같은 그는 천진난만한 얼굴을 가졌지만 가슴 속에 불을 감추고 있다. 순박한 소년의 이미지 때문에 모성애를 자극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보호해 줄 것만 같은 믿음도 생긴다. 색으로 표현하자면 일곱까지 무지개 빛깔을 보여주는 스팩트럼 같다고 할까. 그는 뮤지컬 ‘노틀담의 곱추’ 에서 콰지모도 역을 맡은 신인 배우 이진규(23)다.

너무 올곧아 융통성 없고 외곬수 같은 면이 숨막힐 때도 있지만, 늘 그 자리에 변함 없이 있어줄 것 같은 남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정도를 지키며 사는 이 남자는 요즘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시골 청년다운 순수함과 순박함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남성적인 강인함도 함께 지녀 담벼락처럼 기대고 싶은 남자로 꼽히는 배우. 곱추 콰지모도로 캐스팅한 신시 뮤지컬 컴퍼니에서 이보다 더 완벽한 캐스팅은 없다고 함부로 낙관할 수 있는 무서운 신인 이진규, 그에 대한 평은 대략 이랬다.

실제로 이진규를 만나고 돌아온 저녁, 월트 디즈니의 애니매이션 ‘노틀담의 곱추’를 보면서 콰지모도 얼굴 위로 이진규의 얼굴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얼굴은 전혀 괴물스럽지 않았는데 그는 콰지모도를 이미 너무 닮아 있었다. 그래서 일까. 신시 뮤지컬 컴퍼니가 ‘노틀담의 곱추’ 주연 배우로 그를 선택한 이유가.

열린 귀, 성실한 자세로 가능성 무한
그는 얼마 전 창작 뮤지컬 ‘소나기’의 주연을 맡은 적이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그는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한 신인이었다. 우상이기도 한, 뮤지컬 배우 이석준씨의 제안으로 경험 삼아 보러 간 오디션, 그것도 앙상블 오디션에 참가한 이진규는, 그 당시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오디션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고 했다. 성악을 전공한 선배와 셋이서 최종 오디션에 올랐을 때 그는 내내 실수를 연발해 분명히 떨어질 거라고 낙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 운이 좋았고, 신시는 조금 더 현명했다. 전통 성악 발성이 아닌 맑고 투명한 음색, 테크닉보다는 원색에 가까운 음성을 소화할 만한 인재가 필요했던 터에, 귀에 민감한 음악 감독 박칼린 선생은 실수를 연발하는 그 틈에서도 그의 음색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이진규는 콰지모도 역을 따낼 수 있었다.

“콰지모도 역에 합격했다는 소릴 듣는 순간부터 저 자신은 이미 콰지모도가 되었어요.” 디즈니 만화 ‘노틀담의 곱추’ 를 수십 번도 넘게 보면서, 때묻지 않은 콰지모도의 아이 같은 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는 그다. 콰지모도의 나이는 스무살이지만, 성 안에 고립되어 살았던 그의 정신 연령은 십대 수준일 거라 추측한 그는 그 날부터, 감정이입에 들어가기 위해 백제예대 뮤지컬과에서 배운, ‘생활이 연기다’를 실천했다. 동네 꼬마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눈여겨보고 따라하면서 말이다.

곱추 콰지모도 역을 하려면 등을 굽히고 한쪽 어깨를 내려야 해서 평소 뻗뻗한 자세를 유지하던 그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마비 증세가 찾아왔다. “오아시스의 문소리씨처럼 일부러 장애인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그게 좀 힘들었어요.” 영화는 장면마다 컷이 있기에 쉬었다 갈 수 있지만 거의 한 신도 빠지지 않는 주연급이라 뮤지컬 내내 몸을 구부리고 있어야 하는 고통이 따랐다. 에스메랄다 역의 정선아씨는 그와 함께 공연하면서, 몇 번이고 울었다고 한다. 그의 연기가 소름 끼칠 정도로 리얼하고 얼굴 표정이 실제 콰지모도의 순진무구한 표정과 너무 닮아 연습 도중 목이 메어오는 경험을 몇 번이고 했다고 한다.

하루하루 콰지모도를 닮아가는 그에게, 갑자기 날라 온 입대영장은 잠시 그와 신시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다시 오디션을 보아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이진규 만큼 콰지모도 역에 적격인 배우도 드물다고 판단하던 때였다. “영장을 몇 번 미루던 차라 이번에 가야 할 상황이었는데, 국립극장 관계자와 신시쪽에서 이번 뮤지컬을 위해 한번 더 미루는데 도움을 주셨어요. 이제야 뮤지컬 배우가 되었다고 실감했는데, 콰지모도 역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콰지모도는 High C 음역까지 안정되게 소화해내야 하는 게 관건이다. 어릴 적 락커의 꿈을 안고, 가수가 되기 위해 혼자 산에 가서 노래 연습을 했던 내공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배우 외길 걷고 싶은 순박한 청년
그는 충청도 출신의 시골 청년이다. 순박해 보이는 이미지는 그가 도시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춘기 시절 가수 김경호가 노래하는 모습에 반해 뒷산을 연습실로 삼아 노래를 불렀다. 돈이 모아지면 동네에 딱 하나뿐인 노래 연습실에 갔고, 돈이 떨어지면 야산으로 직행했다.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산골에서 주민들의 제보가 들어왔겠는가. “진규는 한가지에 몰두하면 무서울 만치의 집중력으로 그것을 해내요. 어찌보면 답답한 경향도 있지만 잔머리 굴리지 않고 성실하게 연습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귀가 열려 있어 자기 고집이 있음에도,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아는 앞으로도 실망시키지 않을 배우예요. 진규에게 숨은 매력이 아직도 많거든요.”

학창시절 그를 직접 가르쳤다는 뮤지컬 음악 감독 구소영씨는 그가 배우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콰지모도는 바보가 아니예요. 그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는 없을 거예요. 티끌 하나 없는 그 표정을 보면 제가 가슴이 시리는 걸요. 그걸 표현해내야 하는 부담감, 관객들이 이 콰지모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게 제일 떨려요.”

완벽한 캐스팅이라는 찬사는 외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성격 또한 콰지모도와 닮았다. 그는 꾸밈없는 사랑, 한결 같은 사랑,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순수 청년이다. 너무 순수하고 맑아 연인에게서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은 날, 그는 술을 마신 뒤 아버지에게 “착한 것도 죄가 되냐구” 따진 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왈, “그래 착한 것은 죄다.” 단칼에 베어버렸단다. 그 말에 더 충격 받았던 그다. 그의 아버지는 약한 아들에게 채찍질을 해주고, 나중에 편지를 보냈다.

“사람이 되는 과정이란다. 사랑할 때는 주위가 안 보이는 법이지. 목숨을 걸진 마라. 미련 갖지 마라. 돌아보지 마라. 이것을 시련, 고통이라 말하지 마라. 힘을 달라고? 그릇을 만들어라. 너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세상 참 넓다. 사랑한다. 나의 맏상주!”

이 말에 또 왈칵 눈물을 쏟았다는 그. 그리고 편지를 고이 간직 해 힘들 때마다 꺼내본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착한 것은 죄가 아니라고 믿는 순수한 맘을 간직하고 싶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다. 자기만의 방식을 간직한 채 한길로 가고 싶은 고집 있는 배우는 자신에게 보내는 잠언 같은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산다.


** 공연문의:745-1987, 577-1987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12월23일~2005년 1월23일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4-12-29 16:15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