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녀만의 세상에서 엄지공주로 살기독특한 작품세계 구현 프리마켓 초창기 멤버, 대학로에 새 둥지

[감성 25시] 쥬얼리 디자이너 백지현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녀만의 세상에서 엄지공주로 살기
독특한 작품세계 구현 프리마켓 초창기 멤버, 대학로에 새 둥지


“ 거기 아세요?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안 하이퍼텍 나다요. 바로 옆에 한 평짜리 작은 악세사리 가게가 있어요. 거기로 오세요.”

대학로의 ‘거기’에서 시작돼 ‘거기’로 끝난 곳은 홍대 앞 프리마켓과 희망 시장에서 쥬얼리 디자이너로 인기를 끌었던 백지현씨(30)가 둥지를 튼 가게다. 그녀의 비유를 빌리면, ‘엄지 공주가 사는 손바닥만한 가게’였다. 이름은 ‘미미루 자리’. 쥬얼리 상표이기도 한 ‘미미루’ 가 터전을 잡았다 하여 이름 붙힌 미미루 자리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백씨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귀걸이와 목걸이, 마켓에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의 작품들, 머플러, 가방, 토시와 신발, 옷과 소품들, 게다가 구체관절 인형까지 커다란 눈을 꿈뻑이며 가게에 오두카니 앉아 있었다. ‘미미루 자리’는 한마디로 선물하기에 딱 좋은 것들만 모인, 작지만 풍성한 가게였다.

무정체로 정체를 꿈꾸는 방
10월 달 가게가 오픈 했을 당시 놀러온 친구들이 ‘미미루 자리’에 들어선 순간 한결같이 하는 말, “딱 니 방 같다” 였다. 그만큼 그녀의 개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가게인 셈이다.

일본, 중국, 인도, 아프리카, 유럽 등 세계가 한자리에 모인 듯, 낯선 나라에 초대된 기분도 들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랑하는 가게는 그녀가 유목민처럼 떠돌며 여행하던 외국의 벼룩 시장과 마켓에서 보고 느낀 감성이 재구성된 공간이기도 하다.

“무정체로 정체를 꿈꾸는 방”이라며 자신이 디자인한 악세서리를 어떤 풍으로 정의하기 싫다는 그녀다. 그냥, 미미루 풍일 뿐이라고 강조하는데, 진열된 물건들은 어딘가에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유별난 고집스러움과 동시에 이쁘면서 톡톡 튀는 개성을 지녔다. 그녀를 닮았다.

오색의 찬란한 원석들과 가공된 씨앗이 그녀의 손을 거치면 아름다운 보석으로 재탄생 되었다. 목에 건 순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보석이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신선한 재료에 독특한 스타일, 이것이 미미루가 손님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이유기도 하다. 미미루는 이제 하나의 메이커가 되는 과정에 있다.

백지현씨는 홍대앞 프리마켓, 희망시장의 초기 멤버다. 주로 놀이터를 무대로 활동을 했던 그녀의 바램은 작은 공방을 하나 갖는 거였다. 주말마다 열리는 시장은 시간과 공간, 날씨의 제약을 받았다. 또한 지금처럼 추운 겨울은 11월부터 3월까지 문을 닫는 게 시장의 관례다.

그럴 땐 왕성하던 작품 활동마저 동면에 들어가야 한다. 이미 시장 활동 경력으로 고객까지 확보했고, 고객의 선호도까지 현지에서 직접 파악했기에 가게를 내는 건 고민 없이 시작되었다.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인기 디자이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쥬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그녀의 외모는 실제 나이보다 몇 살은 더 앳돼 보이기도 했다. 까다로운 여자 손님이 주 고객인 그녀의 단골 확보 전략은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작품을 사는 손님들은 자신이 만든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가는데, 그분들을 존중하는 맘을 가져야 한다는 게 그녀의 마케팅 전략인 셈. 그녀의 태도는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이 기분이 좋을 때 그날 매출도 달라지더라는 깨달음은 오랜 시장 활동을 통해 터득한 방법이기도 하다.

형식과 틀을 깬 디자인
그녀의 인기 비결은 독특한 작품 세계에 있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아티스트와는 구별되는 아마츄어의 창작 세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형식과 틀을 깨는 것은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은 제가 취미로 모으던 재료로 제 목걸이, 귀걸이를 만들고 싶은 욕구로 시작되었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쥬얼리가 없기도 했구요. 사람들이 참 특이하다, 첨보는 제품이다, 어디서 샀니, 라는 질문을 할 때 조금 자신감도 생기더라구요.” 남들이 “그건 좀 이상하다, 그게 어떻게 목걸이가 되니?” 라며 기존의 형식과 틀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녀는 오히려 과감해질 수 있었다. 자신만을 위한 악세서리를 만들자고 다짐한 것이 오늘의 미미루를 탄생시킨 것.

어릴 때부터 이쁜 돌이나 조가비를 보면 주머니에 넣어 하나하나 모아 목걸이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대학 전공은 미생물학이고, 항공 무역 회사를 다니며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 조직 생활은 맞지 않았다. 3년 동안 꾹 참고 다니다 미련 없이 그만 두고, 광고 회사에서 의상과 소품을 담당했다. 우연히 점집에 갔다가 쥬얼리 디자이너로 방향을 바꾸었다.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어서, 어딘가에 매어 시키는 일만 하는 직업은 적성에 맞지 않는데요. 절 보더니 자기 일을 하라고, 창작 쪽에 소질이 있으니, 손으로 만드는 것을 하면 성공할 거라고 하는 거예요.” 방황했을 당시여서 그 말은 그녀에게 나침반 역할을 했다. 그녀는 “인생은 어릴 적 꿈꾸던 것들이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과정” 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백씨는 또한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머리 속에 작품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걷고 걷는다. 순수한 창작을 하기 위해서다. 동대문, 남대문, 종로 일대를 돌아 다니며 재료를 구하고, 더 이상 신선한 재료가 없을 때 미국이나 유럽에 재료를 신청하기도 한다.

또한 일년에 한 두 번 혼자 외국 여행을 한다.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다. “작품이 스스로 지루해지면 견딜 수가 없어요. 창작하는 데 발전이 없구요. 직접 현지에서 신선한 재료를 사가지고 오죠. 일본에 재료를 사러 갔다가,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마켓에서 직접 작품을 팔면서 현지에서 시장조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외국에서도 반응이 좋았구요.”

외국 여행은 재충전을 하는 데 필수적인 코스다. 여행은 한 군데 붙어 있질 못하는 그녀의 성격과도 잘 맞았다. 외국의 벼룩 시장, 재래 시장을 갈 때가 가장 맘이 편하다는 그녀. 시장처럼 드넓은 공간에서 좌판을 펼치고 작품을 팔 때가 가장 편하다고.

손님들의 탄성과 감탄이 행복
처음 가게를 갖게 될 때 오랜 바램의 댓가에 대해 흥분도 되었지만, 부담이 더 컸다. 어느 한 곳에 얽매인다고 생각하니 처음부터 겁이 났다. “뿌듯함보다는 중압감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제 가게지만 매일 출근을 해야 하고, 한 평짜리 안에서 세상을 바라 봐야 하는 게 답답할 것 같았지요.” 하지만 그런 중압감은 손님들이 찾아 와 작품을 보고 탄성을 지를 때 비로소 씻은 듯이 날아갔다.

가장 바쁜 시간은 동숭아트센터의 연극 공연이 끝나는 시간과 하이퍼텍 나다의 영화 시간표에 달려 있다. “한 평짜리 공간이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을 보면 제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해요. 미안하기도 하구요. 또 아무도 없을 때, 성큼 들어오지 못하는 분들을 볼 때도 아쉽구요.” 미미루 자리에 한번 발을 들여 논 사람은 “세상에!”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없는 게 없네요” 라는 손님들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기 걸로 꾸며 주세요” 라는 손님도 있다.

유명한 연극 배우나 영화 관계자들도 종종 가게를 찾아 단골이 된다고 한다. “유명 배우들이 와서 깍아 달라고 할 때, 대략 난감해요. 물론 좋은 가격에 드리지만요. 동숭아트센터에 오시는 분들 중엔 독특한 취향을 가지신 분들이 많아요. 저마다 특색있고 끼 있고, 일반적인 걸 싫어 하시는 분들이라 저랑 잘 맞더라구요. 몇 시간 동안 이야기 하다 가시는 분도 있구요. 열 시간 동안 앉아 있어도 지루한지 모르겠어요.”

오후 12시에 문을 열어 10시에 莩쨈? 매주 월요일은 휴무. 공연이 쉬는 날 그녀도 함께 쉬는 셈이다. 쉬는 날은 서울 곳곳의 이쁜 집들을 찾아 다니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미미루 자리’ 말고 그녀의 작품은 인사동의 소소공방, 계동의 집, 삼청동의 픽토르샵, 목동의 인피플, 온라인의 바보사랑 등지에서 구입할 수가 있다. 올 초부터는 ‘텐바이텐 칼리지’에서 강의를 계획하고 있는 그녀는 신년부터 분주해서 2005년을 맞이한 느낌은 행복 자체라고 말한다.

백지현씨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고백하건데, 그녀가 홍대 앞 놀이터에서 작품을 팔던 시절 그녀를 인터뷰해야 했던 나는, 먼발치에서 그녀가 손님을 대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시간 비로소 그녀의 작품을 구경하다가 너무 이뻐 귀걸이 하나를 사기도 했다. 귀걸이는 만원에서 이만원대였다. 목걸이는 특이한 것은 5만원에서 8만원 선이었다.

대학로에 ‘미미루 자리’가 오픈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월요일 휴무인지도 모르고 불 꺼진 가게 문밖에서 작품을 구경하기도 했고, 하이퍼텍 나다의 이태리 영화제가 끝난 시간 손님들이 몰릴 때 문밖에 서서 삼십분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꽉 찬 공간에서 그녀가 밖을 내다보며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며 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는데 얼마냐고 물어보는 손님에게 15만원선이라는 그녀의 말을 얼핏 엿들었다. 미미루 풍으로 변신하는데 15만원선이라면 큰맘 먹고 기분 전환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미미루 자리’에 정식으로 초대된 오늘, 드디어 미미루 백지현씨를 만났다. 딸랑 딸랑, 풍경 소리처럼 낯익은 그녀가 반갑게 웃는다. 부담스러울까봐 주변에서 맴돌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엄지 공주가 사는 방은 이렇군요. 종일 쇼핑해도 모자라는 한 평짜리 백화점이네요.” 라고 말했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1-04 16:10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