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드는 공명음 "그리움을 부르는 소리죠"천상의 소리 '오카리나' 전도사로 나선 자매

[감성 25시] 오카리나 연주자 박현미, 박지영 자매
마음을 흔드는 공명음 "그리움을 부르는 소리죠"
천상의 소리 '오카리나' 전도사로 나선 자매


오카리나(Ocarina)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겐 미스터리다.

입술을 살짝 대면, 그에게선 휘파람 소리가 난다. 바람이 만들어낸 추상적인 음악 소리로 연주자를 현혹시키는 악기.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친해질수록 미궁 속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처음처럼 신비한 소리는 온 데 간 데 없고 음정이 좀체로 잡히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묘한 연구심이 발동해 호흡과 싸우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바람이 벽에 부딪혀 울리는 부드러운 공명음이 마음을 울린다. 천상의 소리라 말하는 이도 있다. 이태리어로 작은 거위라는 뜻을 가진 그는 목에 걸면 그대로 애완(愛玩)이다. 알수록 빠져드는 오카리나는 길들여지지 않는 대자연의 소리와 닮았다.

“얘하고 함께 있으면 연애하는 기분이예요. 쉽게 얻은 사랑이, 어느 날 까탈스럽게 변하면 난감하잖아요. 이유를 알고 싶어 전전긍긍하며 발을 동동거리겠죠. 조심스럽게 불면 또 신비한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종일 같이 있어도 질리지가 않아요. 알수록 궁금한 연인의 복잡한 마음 같아, 애지중지 하게 만드는 악기예요”

오카리나 전문 아카데미 운영
오카리나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C.O.A(Cross Ocarina Academy)오카리나 전문 아카데미 원장 박현미씨다. 오카리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며 오카리나 대중화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힌 박현미씨는 오카리나 연주자로 먼저 이름이 알려진 동생 박지영씨와 함께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C.O.A에서는 오카리나 개인 레슨부터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을 통해 체계화된 교육이 펼쳐진다. 또한 교사 양성반을 두어 문화 센터나 구청의 복지관 등으로 강사를 배출하기도 한다. 교사 양성반에 수강하는 학생들은 오카리나 연주 실력에 있어선 수준급인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들이 아카데미를 찾는 이유는 보다 전문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대개는 오카리나 소리에 매료되어 독학으로 시작한 사람이 많다. 취미 수준으로 머무르기엔 아까운 실력이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가르치기엔 검증되지 않아서 망설인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동호회서 회장이었던 수강생도 더러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공들인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주하기 어려운 것이 오카리나”라고 말한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음악 기초 이론 과정을 따로 두었다. 이론은 연주자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실기와 테크닉, 호흡법 등 전문강사의 손길을 거쳐 교정을 받으면 어느새 절제된 음색을 내는 세련된 수준급의 연주자가 된다. 수강생들은 박현미, 박지영 자매를 가리켜 ‘오카리나 전도사’ 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카리나는 10년 전에 비하면 더 이상 생소한 악기가 아닐 만큼 대중화되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취미 삼아 배우는 동호회 수준”이라며 아카데미를 통해 한국의 오카리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자매는 말했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언니 박현미씨는 10년 동안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면서 작곡을 하는 평범한 음악인이었고, 동생 박지영씨도 유학까지 다녀온 피아니스트였다. 클래식을 전공한 이들이 장난감 같은 오카리나에 목숨건 이유가 궁금해진다.

"마술피리를 부는 기분이었어요"
“어머니가 오카리나 음악을 듣고 오시더니, 소리가 참 곱더라. 그런 이쁜 소리는 난생 처음 들었다. 신이 주신 소리 같더라.” 고 말해, 동생 박지영씨가 교본을 사서 독학으로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당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박현미씨는 동생이 피아노 학원 한 켠에 자리를 틀고 앉아 앙증맞은 장난감을 목에 걸고 연습하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별 볼일 없는 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기한 노릇이었다. 처음 듣는 오카리나 연주소리는 박씨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한참 후 지영씨가 자리를 뜬 사이 자기도 모르게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있더란다. “마술피리를 부는 기분이었어요. 장난감이 내는 소리가 갸륵할 정도로요.”

박현미(오른쪽), 박지영 자매

국내에 오카리나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양성소가 없던 터라 독학으로 시작한 자매는 듀엣으로 오카리나를 불기 시작했다. 이들의 오카리나 사랑은 이때부터다. 하루 아침에 몇 십년 동안 공부한 전공을 등한시하고 오카리나에 매달리는 자매에게 동료나 학교 선후배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들에게 오카리나는 외도였다. “목에 걸면 폐 가까운 곳에 닿죠. 그래선지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요. 연주를 할 때 연주자의 감정을 정확하게 느낄 수가 있거든요. 거짓말을 못하는 순수한 악기예요.”

점점 오카리나의 매력에 빠져든 자매는 오카리나의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에 가서 제대로 된 교육 과정을 밟자고 다짐했다. 일본에서 오카리나 일인자에게 배우는 것. 그 사람은 바로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오카리나 연주자 노무라 소지로의 스승, 아키타였다. 자매는 용감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도전한 것. “선생님은 처음엔 거절을 했어요. 외국인 제자를 키우지 않는데다가, 일본의 교육방식은 도제 관계가 철저한 피라미드식이거든요. 저희는 순전히 그 사이에 끼어 든 예외적인 제자였던거죠.”

갑자기 날아 온 한국 여자 둘이 막무가내로 사사를 부탁하자 아키타의 말, “한국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 동안의 설득 끝에, 자매의 연주를 들어보겠다는 아키타의 말에 그들은 잠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아키타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한국인의 소리는 일본 오카리나 연주법과 달라 소리가 신비롭다. 옆에 두고 듣고 싶은 소리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아키타는 외국인 제자를 처음으로 두게 된 셈이다. “아키타 선생님은 오카리나를 살아 숨쉬는 인격체로 바라봐요. 악기를 숭고한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와 연주자의 기본 자세를 배웠지요.”

일본 오카리나 연주법은 한국과 달랐다. 부드럽고 은근한 매력이 있었다. 과한 호흡은 오카리나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카리나 소리를 망치는 빠른 길이다. “부드럽게, 연인에게 키스하듯”, “호흡법에 대한 고찰” 등 자매가 배운 것은 철학적인 깨달음이다. 오카리나를 직접 제작, 연주하는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은 장인정신과 예술가 정신 또한 자매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아키타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따뜻하다. 자매에게 한국식 오카리나를 배워 기쁘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겸손한 예술가였다. 자매의 공연 때 게스트로 출연해 달라는 부탁에 그는 넉넉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카리나 문화 보급에 사명감
자매는 아키타의 라이브 하우스에서 한 달에 두 번 레슨을 받는다. 일본까지 가는 비행기 값이, 라이브 하우스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재즈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아키타 선생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자매는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의 오카리나 교류를 통해, 대중화시키는데 앞장서는 것, 한국의 오카리나 문화를 알리는 것, 이것이 어느덧 자매의 사명이 되었다.

“저희가 일본에서 어렵게 배운걸 여기서, 쉽게 알리고 싶어요. 하모니카 불던 시절처럼 언젠가 사람들 목에 오카리나가 자연스럽게 하나씩 걸리는 날이 왔음 싶지요.” ‘이웃집 토토로’에서 오카리나 소리로 바람의 정령을 불러들이는 자매처럼, 박현미ㆍ지영 자매는 오늘도 오카리나를 목에 걸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마음속 ‘동심’을 불러들인다.

텅텅 울리는 공명음처럼 가슴속 빈 자리, 그곳에서 울리는 ‘비밀’ 말이다. 오카리나는 그리워하는 마음이 서로 손짓하며 부르는 소리다. (http://www.okocarina.com)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1-12 15:42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