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에 소주 마시며 나이트클럽서 부킹해요불황기 생존전략 '포장마차 메뉴', 젊은층에 폭발적 인기

[이색지대 르포] 유흥가 새 명소 '나이트포차'
김치찌개에 소주 마시며 나이트클럽서 부킹해요
불황기 생존전략 '포장마차 메뉴', 젊은층에 폭발적 인기


‘불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흥업계의 몸부림이 이제 거의 발명가의 창작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나이트포차’역시 불황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왜 나이트클럽에서는 꼭 값비싼 양주와 병맥주만 주문해야 하나’, 가벼운 지갑을 부여잡고 아쉬움을 달래야 했던 이들에게 ‘나이트포차’를 소개한다. 나이트클럽에서도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시며 부킹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싸게 많이 팔지만 서비스는 최고급
1월 초 밤 9시30분 서울 청량리의 한 나이트포차에 도착했다. 조금 이른 시간인 데다 요일도 손님이 없다는 화요일. 어렵게 찾은 나이트포차는 손님 하나 없는 폭풍전야였다. 나이트포차의 존재를 제보 받을 당시 ‘부킹 가능한 포장마차?’로 이해했던 취재진은 웅장한 청량리 나이트포차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문으로 적힌 ‘PDCHA’라는 문구 외에는 다른 나이트클럽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곳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성인 나이트클럽이었다.

실내 인테리어 역시 마찬가지. 스테이지에는 오색 조명이 반짝거렸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램프와 풍선까지, 다른 나이트클럽과 별 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웨이터로부터 받은 메뉴판을 펼쳐 든 순간 확연히 달랐다. 양면으로 구성된 메뉴판의 한쪽 면은 다른 나이트클럽과 유사했다. 우선 국산 양주 세트가 적혀있고 그 밑으로는 외국 양주 가격표가 자리 잡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점. 심지어 10만원을 훨씬 밑도는 가격의 양주 세트가 있는가 하면 가장 비싼 양주 세트 역시 다른 나이트클럽의 가장 싼 양주 세트와 비슷한 가격 수준.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그 뒷면. 지금까지 나이트클럽 메뉴판에서는 전혀 만나볼 수 없던 술과 안주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가장 반가운 소주를 비롯해 백세주, 산사춘 등이 있고, 생맥주 2000cc 피쳐 주문도 가능하다. 과일 안주 등 일반 나이트클럽 안주 메뉴는 물론이고 김치찌개를 비롯한 소주용 안주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술은 일반 술집보다 1,000~2,000원 비싼 수준이고 안주는 1만5,000원~2만5,000원이다.

‘싸게 많이 팔아서 불황에 맞서겠다’는 게 이곳 나이트포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런 유형의 나이트포차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벌썬 2년여가 됐다. 잠실 신천역 부근 유흥가에 처음 생긴 나이트포차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젊은 대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후 수유리, 신사동, 성남, 청량리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저렴한 가격인데다 소주를 판매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는 업소 관계자는 “다른 데서 1차나 2차를 한 뒤 나이트클럽을 3차 정도로 찾아야 했던 기존 나이트클럽과 달리 여기는 한꺼번에 1, 2, 3차가 모두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가격만 저렴하다고 손님이 모이는 것은 아니다. 확실한 부킹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고 유명 DJ를 고용해 음악에도 신경쓰는 등 최고급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을 아까지 않고 있다. 확실한 물관리를 위해 ‘고연령층 손님’(30대 이상)의 입장을 사절하고 청소년 출입을 방지하기 위한 주민등록증 확인 절차도 까다롭다.

30대 이상 사절, 부킹성공률 높아
10시가 지나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손님은 20대 중반의 손님 세 명. 얼핏 보기에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를 위한 술자리로 보였다. 그리고 곧 20대 초반의 여성 두 명이 들어오더니 금세 테이블 10여개가 메워졌다. 그리고 11시 경에는 절반 가까운 테이블이 메워지며 뜨거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여성 손님의 테이블은 대부분 2,000CC 생맥주 피쳐에 과일 안주나 마른안주 등이 배달됐고 남자 손님 테이블은 소주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활발한 부킹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 동료들과 가끔 이곳을 들른다는 회사원 주인석(남ㆍ33ㆍ가명)씨는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지만 부킹 성공률이 높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며 “가끔 용돈을 달라며 투정(?)부리는 애들도 있지만 좋은 데 데려가 한잔 더하고 잠자리 죽이는 데 잡는 것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성공률이 높다’는 기쁜 소식 앞에 일말의 의혹이 떠올랐다. 성매매 특별법 이후 나이트클럽을 자주 찾는 윤락여성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사실. 이곳도 여러 조건들로 볼 때 그 가능성이 높다. 청량리 집창촌 바로 옆에 있고 처음 업소 문을 연 시점 역시 성매매 특별법 시행 직전인 9월 초. 어쩌면 이들을 노리고 업소를 오픈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업소 관계자는 “절대 아니다. 손님 가운데 업소 애들이 몇 명 섞여 들어올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단언했다. “요즘에는 보통 애들도 부킹을 잘 나간다. 소주를 팔기 시작하면서 취해서 소란피우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젊은 친구들 노는 게 쿨하다. 간단히 마시고 부킹 나간다”고 그는 얘기한다.

업소 관계자는 소주를 시키더라도 부킹해 주는데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부킹온 여성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 아무래도 소주보다는 양주를 시켜야 부킹 성공률이 높다고 한다. 주씨는 “보통 처음에 소주를 시켜서 마시다가 물이 오르면 부킹을 위해 양주를 시킨다”며 “어차피 부킹 성공은 정해진 원칙에 따라 이뤄지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같은 과 친구 세 명이 함께 이곳을 찾은 여대생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인근에 위치한 대학교 학생들로 얼마 전 MT를 다녀온 뒤 뒤풀이로 이 업소에 와본 뒤 단골이 됐다고 한다.

“가격이 싸고 가까워 자주 오는 편이에요”라는 여대생 최지희(여ㆍ22ㆍ가명)양은 “가끔 이상한 아저씨들이 용돈 준다며 놀자는 식으로 접근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것도 일종의 재미라면 재미다”고 했다.

물관리는 위해 30대 이상의 손님은 입장을 거절하는 편이지만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깔끔하게 꾸미고 오는 들어온 30대 초반 남성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 가운데 의도적인 영계 사냥꾼들도 있는 듯. 이들이 적당한 용돈을 제의하며 ‘원나잇스탠드’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값비싼 양주나 병맥주만을 주문받아 큰 돈(?)이 필요했던 나이트클럽에서 이제는 부담없는 소주를 마시는 시대가 됐다.

조재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1-20 15:12


조재진 자유기고가 sms9521@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