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마케팅 전략 미숙, "정치적 목적·의도 간과해선 안돼" 지적도

한류逆풍, 일본·대만 등지서 악의적 보도 잇따라
현지 마케팅 전략 미숙, "정치적 목적·의도 간과해선 안돼" 지적도

“최지우는 양키계 여왕인가?”(일본 주간문춘, 2005.1), “욘사마 미소 속에 숨겨진 11가지 의혹”(일본 주간문춘, 2004.11) , “한국 드라마, 타이완을 침략하다!”(타이완 연합보, 2004.12)

‘한류 열풍’에 거슬러 올라오는 역풍(逆風)의 전조인가. ‘한류 열풍’이 휩쓸고 있는 일본과 동남아에서 한류 스타와 한류 문화를 겨냥한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 파문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의 유명출판사인 문예춘추사가 발행하는 주간문춘은 신년 특집호에서 한류 스타인 최지우를 서슴없이 난도질했다.

주간문춘은 “최지우는 양키계(‘날라리’라는 의미의 일본 비속어) 여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지우는 순정파가 아닌 스캔들 메이커”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스캔들의 근거로 염문이 있는 4명의 남자 톱스타 이름과 장관을 지냈던 유력 인사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는 한편, 한국 연예계를 잘 안다는 작가의 말을 인용하여 “최지우의 혀 짧은 소리는 성형 수술 후유증 때문”이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한류 열풍의 대표주자에 걸맞게 ‘욘사마’ 배용준은 최근 일본 언론의 ‘딴지 걸기’ 집중 대상이다. 일본의 타블로이드 신문인 석간 ‘겐다이(현대)’는 “왜 일본의 미디어는 이 얼굴색 나쁜 한국의 배우를 이렇게 높이 떠받들어 세계의 조롱을 당하는가”라며 이유 없는 거부감과 증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는가 하면, ‘배용준 신드롬’을 ‘국가의 치욕’이라는 표현으로 거칠게 다루었다.

‘주간신조’와 ‘주간문춘’ 역시 지난해 일본 방문 때 일어난 팬들의 가벼운 부상 사건을 두고 ‘동양 제 1의 죄짓기’라고 비난했고, 배용준의 얼굴에 두꺼운 화장기가 있으며 일각에서 성형 수술 얘기도 나오고 있다는 등 시비 걸기에 혈안이 됐다.

"일본인의 두 얼굴 잊지말라"
이 같은 근거 없는 모략은 ‘한류 스타 죽이기’라는 계산된 전략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 전 지역을 강타한 한류라는 장밋빛 열광과 환희의 무대 그 뒤편에는 만만치 않은 역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타이완의 연예인 노조는 최근 한국 드라마를 규탄하는 가두시위에 나섰다. 타이완의 유력 케이블들이 하루에 한국 드라마만 5편 이상을 방송하고 있어 출연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황금 시간대인 저녁 7시와 8시에는 자국 방송은 70% 방영하기로 돼 있는 방송 규정도 어기고 있다며 ‘생존권 박탈’을 호소했다.

“일본은 한국에게 지지 않는다. 아줌마들이 미쳤다. 창피하다.” KBS 2TV ‘추적 60분’이 신년특집 2부작으로 기획한 ‘한국, 한국인’에서는 한류 열풍 뒤에 숨겨진 일본의 또 다른 이면이 드러났다. 오사카에서 일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인 식당 ‘어머니’를 방문한 취재팀에게 한 소녀가 인터뷰를 요구했다. 마쓰다 마키(15)라는 이 여학생은 “욘사마에 열광하는 것은 일부에 국한된 현상”이라며 “일본 전체가 욘사마 한류에 빠져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일본 아주머니들이 배용준을 쫓아 다니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이 일본 사람들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싫다”고 잘라 말杉?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식당 주인 양행도(74)씨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류 열풍 뒤에는 일본인의 두 얼굴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말하는 한류 열풍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한류가 많은 것을 바꾸고 있지만, 근본적인 관계를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정병채 재일거류민단 오사카 지부 부장은 “한류 열풍으로 일본인들이 한국 배우나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고 꼬집었다. 하야시 가오리 도쿄대 교수 역시 “한ㆍ일관계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한류에 역풍이 분다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한류 열풍과 국가 브랜드의 연결 고리를 찾겠다는 의도로 일본 현지 취재에 나섰던 ‘추적 60분’의 구수환 PD도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밑바닥에서 감지되고 있는 한류 역풍에 대해 관심을 환기했다. “한국 스타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한류는 분명한 사회 현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치적 목적 등 의도가 잠재해 있다. 그 현상을 그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가 오면 흐름을 돌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예로 그는 올해 서서히 부각되고 있는 중풍(中風)을 근거로 든다. 점점 중국과의 교류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한류 대신 중국 콘텐츠가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류와 우호관계 증진은 별개
지난해 10월 일본 내각부가 ‘외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욘사마 등의 ‘한류열풍’으로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라는 대답은 사상 최고인 56.7%를 기록했고, ‘느끼지 않는다’는 39.2%로 최저였다. 하지만 한일관계에 대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전년보다 오히려 4.3% 감소한 55.5%였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가 3.4% 증가한 34.9%를 기록했다. 일본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이 반드시 한일관계의 우호증진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그렇다고 한국 대중문화의 일본 및 동남아 상륙이 다른 산업과 문화 방면에 미친 영향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파급 효과가 부풀려져 알려진 면이 적지 않다. 경제 효과가 그 단적인 예다. 일본 유력 경제연구소인 다이이치(第一) 생명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겨울연가’가 촬영된 장소를 찾고, 배용준의 모교에 한국어를 배우러 가는 등 욘사마 열풍이 일면서 한ㆍ일 양국에 미치는 경제효과는 2,300억엔(약 2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문제는 그 경제효과의 상당 부분을 일본이 거두었다는 것이다. 1월 8일 한국외국어대학 국제지역대학원과 한일사회문화포럼이 주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열린 ‘한일문화교류의 현주소’ 특별 강좌에서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채지영 정책연구원은 경제효과의 ‘역전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채 연구원은 “겨울연가의 파생 소득이 일부 신문을 통해 보도된 것만큼 크지 않다”며 “겨울연가의 실질 수출 금액은 4억4,000만원 정도인데, DVD와 소설의 판권이 모두 일본 방송사인 NHK가 가지고 있어 한국은 그 이익의 10~13%의 이내의 수익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경제적 역전 현상에 대해 현대경제연구원은 ‘한류현상과 문화산업화 전략’ 보고서를 통해 “대외 지역전문가 부족에 다른 적절한 마케팅 전략 등 현지 전략에 실패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략적 관리 없을 땐 '소멸'
일각에서는 “한류는 곧 꺼질 거품”이라는 ‘한류 거품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류의 전략적 관리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이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1월 10일 최근 타이완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한류국가를 방문한 결과를 정리한 ‘동남아 한류 견문기’를 통해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졌다. “한국은 과거 일본의 오만을 답습하며 한탕주의 가격 정책을 구사하고, 스타 프로모션에 소극적이다. 지금처럼 한류를 전략적으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길어야 5년, 짧게는 2~3년 안에 한류는 끝난다.”

한류 열풍의 단명을 우려하는 시각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 유효 시한을 언제까지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다만 한류 열풍이 일과성 붐이 아니라 뿌리깊게 확산하는 방안을 수립해야 할 때라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다. 조규철 한일사회문화포럼 대표이자 한국 외대 교수는 “마냥 한류 열풍에 들떠 있기보다는 한류를 어떻게 유지ㆍ발전시켜 나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실속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류스타 죽이기’의 표적이 된 최지우의 소속사인 싸이더스HQ의 장진욱 이사는 이렇게 한류의 지향 방향을 제시한다. “한류가 일방적인 우리문화의 전파가 아니라 상호 낮弼?되어야, 역효과를 줄이고 뿌리 깊게 살아남을 수 있다.”

민병두 의원 인터뷰
"한탕주의 지속 땐 한류 끝난다"

“지금 동남아시아는 문화전쟁 중이다. 오만한 가격 정책을 고집하다 시장에서 밀린 일본 드라마의 전철을 밟지 마라.”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인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1월 2~8일 동남아국가에서 전개중인 한류의 현황을 시찰하고 귀국한 뒤 “이대로 가면 5년 안에 한류는 끝난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경고를 던졌다.

민 의원이 10일 발표한 ‘동남아 한류 견문기’에 따르면, 타이완 방송국 ‘비디오랜드’의 경우 한국 드라마 방영 시간이 2002년 903시간에서 2003년 811.5시간으로 줄었으며, 수입 총액도 2003년 319만 9,100달러에서 2004년 181만 2,000달러로 급감했다. 민 의원은 “타이완에서는 현재 30여 개의 한국 드라마가 방영 중이지만 확실한 퇴조세”라며 “이는 단시간에 돈을 벌려고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리는 한탕주의적 가격 정책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민 의원은 현재 한류의 중요한 거점인 일본 시장에 대한 조사가 빠져 있다는 점과 관련해 일각에서 “포괄적 한류 정책의 대안으로 부적절하다”며 제기하고 있는 지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장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시장은 일본이지만, 향후 경제적 파급 효과는 미개척지인 동남아 시장이 더 크다”며 동남아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민 의원은 한류 열풍을 지속ㆍ확산시키기 위해서는 △한탕주의 가격 정책을 배격할 것 △현지에 한국 드라마 배급 대행사를 육성할 것 △한류 붐을 지속시킬 스타 프로모션을 강화할 것 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억압적 군사 정권 하에서 빠른 속도로 민주화를 이룬 과정에서 싹튼 창의성이 한류의 힘”이라면서 “아시아 국가에 문화 지한파(知韓派)를 만들기 위해 민ㆍ관ㆍ기업을 연결하는 유기적인 정책 수립을 펼치는 것이 중요 과제”라고 지적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1-21 11:06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