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지정학적으로 고립무원의 위기에서 일으킨 세계 최고수준의 독자적 무기체계

방위산업 강국 이스라엘을 가다
자주국방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지정학적으로 고립무원의 위기에서 일으킨 세계 최고수준의 독자적 무기체계


우리 군의 전력을 한 차원 높일 조기경보통제기(EX) 도입 사업이 올들어 재개되면서 사업참여 업체인 미국 보잉사와 이스라엘 IAI사의 발길이 분주해 졌다. 특히 지난해 시험평가에서 탈락했던 IAI사는 조기경보기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보잉사에 맞서 사운까지 걸고있다.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과도 같은 IAI의 도전은 이스라엘의 자주국방을 가능케 한 선진 방위산업을 그 저력으로 하고 있다. IAI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방위산업의 현장을 탐방했다.

텔아비브 = 김정곤 기자

절체절명의 과제로 일으킨 자주국방

국영기업 IAI사는 벤 구리온 국제공항에 맞붙어 있었다. 바로 인근에는 공군기지도 있다. 항공산업을 전력화하기 위한 3각 동맹식 포진인 셈이다. 입구에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우지 기관단총을 든 보안요원들이 이중의 감시망을 펼치고 있었다.

IAI본사 로비로 들어서자 1m정도 크기의 은회색 모형 비행기가 진열돼 있었다. 독자개발을 추진하다 과도한 비용 때문에 80년대에 개발중단된 전투기 ‘라비(LAVI)’였다. 마중나온 시몬 엑크하우스 IAI사 부회장은 “미국의 F15보다 성능이 좋았다”며 아쉬워했다. 세계 최고의 전투기에 도전했던 배경에 대해 묻자 그는 ‘푸림(purim)절’ 유래를 들려줬다. 과거 페르시아에서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던 대신(大臣) 하만이 유대인으로서 왕비가 된 에스더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 것을 기념해 축하하는 날이 푸림절이란다. 2,000년 역사 이래 사방의 적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방위산업에 눈뜬 것은 1948년 독립 이후 네 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면서다. 초기 무기체계는 프랑스에 의존했다. 그러나 1967년 ‘6일전쟁’ 이후 프랑스 드골 정부는 이스라엘이 선제 침략했다는 이유로 무기판매를 금지하자 미국과 손잡고 독자적인 방위산업 체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서 도입한 전투기와 조기경보기 E2C 등으로 1973년 4차 중동전쟁과 1982년 레바논 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군사력이 특히 공군력에 집중됐다. 엑크하우스 부회장에 따르면 미국의 압력으로 전투기 개발이 좌절되는 바람에 이스라엘은 미사일과 레이다 등 첨단 탐지ㆍ요격시스템 자체개발에 주력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세계 최초로 탄도미사일요격시스템을 실전 배치하는 국가가 됐으며, 전투기 개조와 인공위성, 지역방위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수준을 유지하게 됐다고 자부한다.

이스라엘의 전체 수출 가운데 방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로 다이아몬드 가공에 이어 제2의 수출 효자산업이며 IAI의 지난해 수출만도 16억 달러(약 16조원)에 이른다. 엑크하우스 부회장은 “1만7,000여명의 직원 가운데 엔지니어가 5,000명이고 매출의 5%를 연구개발비로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방위산업 부문별 경쟁력
▲ 조기경보통제기(Airborne Early Warning & Control)
IAI사의 3세대 조기경보기인 G550의 레이더 성능 실험실. 사각뿔 모양의 검고 뾰족한 스폰지들이 벽면과 천정을 가득채운 실험실 한 가운데 가로6m 세로1m 크기의 L밴드 레이더가 2m높이 단 위에 우뚝 솟아 있다. 경보기의 몸통 양쪽에 배치되는 L밴드 레이더에는 256개의 안테나 소자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고 소자마다 연결된 라인들은 커다란 신호처리기로 이어져 있다. IAI사의 자회사로 조기경보기 제작사인 엘타시스템의 이스라엘 리브낫 사장은 “이 안테나들이 신호를 주고받아 경보기 좌우 각 200해리(400㎞)까지 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조기경보기 개발은 이미 3세대를 맞고있다. 보잉707기를 기반으로 한 ‘팰콘’ 1세대는 1995년 첫 개발에 나서 페루가 인수해 운용 중이고 러시아제 일루신(IL)기로 만든 2세대 팰콘은 지난해 인도와 11억 달러(약 1조1,000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걸프스트림사의 G550기로 만드는 3세대 팰콘은 당초 이스라엘이 자체 운용목적으로 개발했다. G550은 2006년 이스라엘 공군에 인도예정으로 아?완성품은 없지만 10년의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EX사업에도 참여하게 된 것이다.

G550은 4만 피트(약 1만3,000㎞)의 높은 임무고도와 10시간 이상의 체공시간 등이 장점이다. 그러나 경쟁사인 보잉사의 B737기는 비슷한 제원에다 이미 완제품이 출시됐다는 점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 이에 대해 IAI사는 가격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보잉사가 4대에 2조원 가량을 요구하고 있는데 비해 IAI사는 절반 정도를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탐지능력. 우리 공군의 시험평가에서 IAI사의 G550은 200해리까지 탐지하기 위해 몇 차례 겹치기 탐색을 해야 약점이 노출됐다. 그러나 리브낫 사장은 “짧은 신호처리 과정을 거치면 완벽한 탐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탄도미사일 요격시스템(Anti-Ballistic Missile System)
이스라엘은 서쪽의 지중해를 제외하고 3면에서 4개 아랍국들과 접해있다. 70년대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른 것도 이 같은 지정학적 위치와 무관치 않다. 이스라엘은 특히 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의 스커드와 시리아의 프로그 미사일 공격을 받고 상당히 좌절했다고 한다. 예고도 없이 국경을 넘어 날아오는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탄도미사일 요격시스템 개발이다. 미사일을 쏘아 맞힌다는 의미에서 시스템을 ‘애로우(arrow, 화살)’로 명명했다고 IAI사의 보아즈 레비 애로우프로그램 팀장이 밝혔다.

이스라엘은 2000년부터 애로우Ⅱ라는 요격시스템을 실전 배치해 놓고 있다. 미사일방어(MD)시스템을 서두르는 미국이 번번이 시험발사에 실패하고 있는 반면 이스라엘은 탄도미사일 요격시스템을 운용하는 첫번째 국가가 됐다. 실전 배치 후 계속되는 성능제고 실험에서도 이스라엘은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중순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협조로 캘리포니아 미 해군기지에서 애로Ⅱ시스템의 시험발사를 성공리에 마쳐 미국의 부러움을 샀다.

이스라엘에 배치된 애로우Ⅱ는 모두 2개 포대로 한 포대 당 8개의 발사대를 갖추고 있으며, 한 개의 발사대에는 6개의 미사일이 탑재돼 있다. 고고도 미사일을 맞추는 애로우Ⅱ는 저고도방어를 담당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함께 운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사대가 레이다 및 통제시스템과 지근 거리에 있는 패트리어트와는 달리 애로우Ⅱ의 발사대는 통제시스템에서 약 100㎞정도 떨어져 있는 게 차이점”이라고 레비 팀장은 설명했다.

▲ 무인 항공기(UAV, Unmanned Air Vehicle)와 인공위성

이라크 전에서 미국의 무인항공기 프레데터가 정찰 임무수행 중 적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현대전에서 UAV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UAV시장의 최강자는 물론 미국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UAV 수준도 미국 못지않다. 1973년 4차 중동전쟁부터 개발을 시작해 74년에 첫 작품을 선보인 이스라엘은 UAV를 30년 이상 실전에 배치하고 있다. 90년대에 개발된 서처의 경우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12개국에서 200대가 운용되고 있다. 1986년 개발된 초기 제품 파이오니어는 미 해군과 해병대가 20년 이상 사용하고 있으며 뒤이어 나온 헌터도 미 육군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체 길이가 1.5m에 불과한 버드아이 등 소형 UAV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버드아이는 10㎞의 작전반경에서 60여분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칼라이미지를 제공하는 비디오카메라를 장착, 2004년 네덜란드 경찰의 시험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스라엘은 인공위성 개발에도 일찍부터 착수해 이미 1988년 ‘오펙1’이라는 위성을 발사 시켰으며 96년 통신위성 ‘아모스1’, 2000년 산업위성 ‘에로스’를 순차적으로 발사 시켰다. 차세대 인공위성으로 ‘합성개구레이더(SAR)’를 장착한 ‘에로스 지구자원 탐색 위성’의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인터뷰] 모세 케렛 이스라엘 IAI사 회장
"방위산업 분야 세계 Top 5가 목표

이스라엘 방위산업의 총아인 IAI사 모세 케렛 회장(71ㆍ사진)은 “무인항공기나 인坪㏈? 공중조기경보기, 항공기 개조 등 모든 방위산업 분야에서 세계 5위를 차지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무인항공기나 조기경보시스템에서는 이미 1, 2위를 다투고 있다고 은근히 자부심도 내비쳤다.

케렛 회장은 남한의 4분의1 크기에 불과한 소국 이스라엘이 방위산업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을 세가지 위협으로 설명했다. 첫번째는 주변 아랍국의 위협이다. 인구나 장비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이스라엘로서는 기술개발만이 유일한 활로였으며 전략적으로 공군을 키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공군을 지원하는 방위산업이 국가규모에 비해 크게 발전하게 됐다는 것. 다음은 금수조치.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로부터 금수조치를 당하면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국가 전략이 됐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이스라엘이 미국 등으로부터 공급 받는 장비는 아랍국들도 마찬가지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능가하기 위해서는 오리지널을 개량시키는 게 절실했다는 설명이다.

케렛 회장은 1985년 IAI사 회장이 된 이래 20년째 줄곧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기집권의 비결에 대해 그는 “매일같이 운동하고 일하며 좋은 직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이스라엘 협력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등과 친교를 맺고있다.


입력시간 : 2005-04-0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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