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똑같이 서로에게 빛이 되다뮤지컬 에서 완벽 호흡으로 감동의 무대 이끌어

[감성 25시] 뮤지컬 배우 엄기준·조서연
따로 똑같이 서로에게 빛이 되다
뮤지컬 <사비타>에서 완벽 호흡으로 감동의 무대 이끌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아름다운 속삭임을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사랑”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함께 있어도 그대가 그리운 게 사랑이라면, 채울수록 공허해지는 것이 사랑의 속성일까. 사랑이란 함부로 정의 내리기엔 복잡한 것이지만 파트너처럼 늘 붙어 있어야만 빛나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비를 타고’(이하 사비타)에서 동현과 유미리 역을 맡는 등 그들만의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뮤지컬 배우 엄기준, 조서연 커플이 바로 대표적 예다. 이들은 빛과 그림자 같이 떨어질 수 없는 상태다.

연민 자극하는 공허한 눈빛의 배우
엄기준은 ‘위험한 남자’다. 다소 냉소적으로 보이는 눈빛으로 사람을 바라볼 때 그 느낌은 분명해진다. 이유 없어 보이는 우울한 눈빛, 호기심이 사라진 절제된 표정 등은 세상에 어떤 일도 그를 놀라게 하지 못할 것 같다. 20대에 이미 청춘의 독한 약을 먹은 것일까, 그리도 우울한 청년의 이미지를 풍기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근원을 알 수 없는 연민을 자극하는 엄기준의 첫 인상은 위험함 그 자체다.

19살(1995년)에 무대에 올라 올해로 10년째다. 무대에서 그는 완벽하게 사라질 줄 아는 배우다. 백지상태로 몰입하기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가면을 쓰는 배역이 그에게 적격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그는 번민하는 청년 베르테르의 슬픔을 특유의 공허한 눈빛으로 연기해 크게 호평을 받았다.(2002년과 2003년 두 번에 걸쳐 베르테르를 연기한 그는 2004년 한국뮤지컬 대상에서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 뮤지컬 ‘그리스’에서 존 트라볼타가 맡았던 대니 역을 그만의 느끼함으로 표현해 베르테르의 우울한 청년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 던져 많은 팬들을 놀라게 했다. 연극 ‘남자충동’에서는 게이인 동생 유정 역을 훌륭히 소화해 춤과 노래가 없어도 얼마든지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기본기가 탄탄한 배우라고 인정 받았다.

사비타의 (정)동현은 그를 ‘엄동현’이라고 부를 정도로 3년 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스스로 3년 전 동현에게 부족한 것을 지금에서야 이해하며 연기한다고 밝혔듯이 3년 동안 동현과 엄기준은 함께 성장한 셈이다. 200여 차례나 넘게 동현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역대 동현중 가장 오랫동안 그 역을 맡았을 정도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매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하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자신의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연기할 때 우울했어요. 베르테르에 쉽게 몰입해서 무대와 일상이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죠.”

비극적인 사랑으로 고뇌하는 청년 베르테르가 끝내 권총자살을 했을 때는 그의 일상이 베르테르처럼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다음에 또 베르테르를 연기해야 할까 두렵기조차 하다. 우울증을 앓을까 봐서다.

역할이 배우의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사실일까. 그가 요즘 명랑해졌다. 사비타 동현의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한 가지 이유가 또 있다. 같은 길을 가는 후배이자 연인인 조서연 때문이다.

뛰어난 가창력, 조승우 친누나
조서연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사람에게 기운이 있다면 그녀는 분명 ‘빛’이다. 밝은 기운을 몰고 와 일시에 주변을 환하게 만든다. 특유의 붙임성 있는 말투와 낯을 가리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그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

“하아, 숨차. 제가 좀 늦었죠. 승우랑 이야기 하다가 늦었어요.”

승우란 영화배우 조승우를 말한다. 그녀는 조승우의 친 누나다. “모니터요? 우린 서로 모니터 잘 안 해요. 서로의 영역이 확실하고 사생활을 존중하기에 늘 맘속으로 기도하고 응원해주고 있죠. 그게 서로를 위한 길이예요.”

조서연은 1998년 ‘하드락 카페’의 여주인공 윤혜주역으로 데뷔했다. 아버지(70년대 유명 가수였던 조경수)에게서 물려받은 가창력으로 틀림없이 유명 가수가 될 거라고 주변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생 조승우가 뒤늦게 자신의 재??발견해 노력으로 쌓은 가창력을 지녔다면 조서연은 타고난 가수다.

그녀는 발라드 가수가 되기 위해 뮤지컬을 접고 3년 동안 외도했다. 그 기간은 악몽의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마저 의기소침해지고 소심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소속사와의 복잡한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다. 발라드 가수의 꿈은 아직 보류 중이지만 2004년 ‘지하철 1호선’의 선녀역으로 돌아와 지금은 사비타의 여주인공 유미리역을 맡아 뮤지컬 배우로서의 욕심은 더 커졌다.

“사비타의 유미리는 제게 희망을 주고 있어요. 갈수록 자신이 생기고, 선배와 호흡을 맞추어가면서 스스로 발전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거든요. 지하철 1호선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완벽한 파트너십
사비타에서 동현과 유미리역으로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야 했을 때 둘은 무척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사비타 연습기간 중 절반은 싸우며 보냈다.

“남들은 마냥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고 하는데 우리 둘은 배우로서 자존심이 걸려있기에 무척 심각했어요. 선배는 동현역으로 이미 인정을 받았지만 저에게 유미리는 처음이잖아요. 개인적인 감정을 없애고 각기 다른 역을 맡은 배우로 봐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죠.”

서로가 서로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따끔하게 지적할 때가 적지 않았지만, 보통 연인들처럼 티격태격하며 싸운 사소한 일이 연습할 때까지 이어져 처음엔 상대방을 바꾸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연기는 완벽한 파트너 십으로 찬사를 받는다. “6월까지 할 계획인데 저희 둘이 나오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어요. 관객들의 호응이 그 만큼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예요.”

처음 만남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였다. 엄기준이 베르테르 역을 맡았을 때 조서연은 꽃처녀 역이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고 엄기준은 말한다. 하지만 조서연은 “승우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포스터를 가지고 왔을 때 누군가가 연기나 노래를 잘해 배울게 많은 형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거예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때부터 배우 엄기준에게 호감을 가진 조서연은 그가 ‘남자충동’이란 연극을 할 때 용기를 내 말했다.

“나랑 많이 닮았고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 같은데 상처를 보듬어주며 서로를 완성해 가자.”

밝고 명랑한 그녀가 소심하고 의기소침한 그에게 먼저 프로포즈했다. 이미 엄기준은 그녀에게 빠져 있었는데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고 보는 순간 사랑이라고 느꼈다”고 그는 고백한다.

엄기준, 조서연 그들은 이제 바라보기만 해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파트너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이따금 거울을 바라보듯 서로를 응시하는 것이다.

우연처럼 시작된 배우 인생
창공을 자유롭게 날고 싶어 파일럿을 꿈꾸던 엄기준은 고등학교 때 헤비메탈 보컬로 활동하다가 우연히 배우가 됐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가 예고에 진학한다는 말에 혹해서 예고와 중앙대 연극과를 모두 수석 입학한 조서연은 우연히 배우의 길로 접어든 야무진 모범생이다.

둘 다 ‘우연히’ 시작했지만, 이제는 무대에서 연기하다 죽는 게 이들의 소원이다. 엄기준은 ‘지킬 앤 하이드’를 꼭 하고 싶어 하고, 조서연은 연인역만 아니면 동생 조승우와 뮤지컬로 한 무대에 서고 싶어 한다. 엄기준과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꼭 해보고 싶다는 그녀다. 이들에게 왜 함께 하냐고 물으면 거의 동시에 이렇게 답한다. “그(그녀)는 그(그녀)일 수 있고, 나는 그대로 나일 수 있기에.”

빛과 그림자처럼 함께 있기에 완성되는 이 파트너를 보려면 뮤지컬 ‘사비타’를 찾으면 된다. 가끔 동현이 유미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연인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으로 바뀐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사비타’의 가장 빛나는 명장면과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를 보는 것으로 충분한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혜성 객원기자


입력시간 : 2005-04-27 15:33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