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일기장 검사 논란 극복할 대안으로 부각

연필 대신 키보드…사이버 일기시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일기장 검사 논란 극복할 대안으로 부각

“교사가 학생 일기장을 검사하는 것이 아동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보장된 아동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국가인권위가 4월 7일 관행처럼 되어있던 학교 일기검사에 제동을 건 후, 학교 안팎에선 지금 일기검사를 아동인권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선생님께 편지 쓰기’ ‘독서감상문’ ‘생활문’ 등 개방 가능한 글짓기 과제를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것 등이 우선 눈에 띄지만, 특히 “디지털 시대의 특징을 반영해 아날로그 일기검사의 단점을 극복하자”는 목소리가 주목 받고 있다. 비공개가 가능한 사이버 일기쓰기가 대표적이다.

아날로그 일기검사의 순기능과 역기능
많은 교사들은 인권위의 이번 지적에 대해 “일기검사의 교육적 목적을 무시한 측면이 있다” 고 말한다. 경기 의정부 가능초등학교 황희원(26) 교사는 “일기검사는 그 어떤 교육적 행위보다도 효율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이라며 일기검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종이 일기장 검사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증대 시킨다. 예를 들면, 일기장의 ‘날짜’ 란에 ‘비-하늘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날’ 등으로 날씨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킨다든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날을 기준으로 일기 쓰는 날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세어서 표시해 날짜에 의미를 부여해보는 것 등이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인 황씨는 “4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쓰는 소위 외계어와 순 우리말을 헷갈려 하는 학생들이 많아 받아쓰기 연습을 시키고 있다”며 “일기를 통해서도 잘못된 외계어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올바른 우리말 지도를 하는 것은 선생님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밝혔다.

또 종이 일기장을 통한 학생들과 교사와의 대화는 학생들의 바람직한 인격형성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너무 성숙하거나, 여리거나, 자폐적인 기질이 있는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신뢰감을 줘 이들의 자아 개방과 원활한 의사 소통을 촉진한다.

반성하는 습관, 성실함과 책임감, 글짓기 실력, 사고력과 상상력 등의 신장이란 여러 이유로 일기 검사는 오래 전부터 교육적 측면을 인정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일기 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많다. ‘일기장을 보관해 나중에 읽으면 추억이 되고, 읽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일기검사는 선생님과의 친밀감을 형성한다’ ‘선생님께 도움을 부탁하는 통로다’ 는 등이 그것이다.

반면 공개가 쉬운 종이 일기장 검사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다인(26ㆍ회사원)씨는 “초등학교 시절, 한 남자 학우가 저한테 사랑고백 편지를 줬어요. 제가 그 편지내용을 일기장에 썼다가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사이 애들이 보고 제 일기장을 돌린 거에요. 한동안 반에서 큰 화젯거리가 돼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죠”라며 씁쓸해 했다.

학교 제출용 일기장과 개인 일기장을 구분해서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학생인 김모(22)군은 “ 정말 비밀스러운 일은 저만의 일기장에 따로 보관해요”라며 “성격이 소심한데다, 사춘기가 빨리 와서 제 고민을 선생님이 보는 일기장에 공개하지 않았어요. 진짜 콤플렉스는 제 마음속에 있었죠” 라고 토로했다.

또 ‘숙제’로 제출해야 할 때는 거짓으로 일기를 쓰는 경우도 꽤 있다. “한달 분량의 일기를 미리 써 놨던 적도 있다”는 이원숙(26ㆍ회사원)씨는 그 때문에 일기 내용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일기내용이 자신의 행동을 구속하는 일종의 문서가 된 셈이다.

사이버 일기가 대안?
‘일기나라’ ‘사이버 일기’ ‘누드 다이어리’ 등 인터넷 일기 사이트 담당자들은 “온라인 일기의 경우 일기를 보고 답글을 쓰는 형태로 서로의 고민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0대의 일기를 읽은 30, 40대의 충고와 격려의 글이 부쩍 많이 올라온다”고 입을 모은다. 교사와 학생 간의 1대 1 의사소통이 대세인 종이 일기장과 비교해 볼 때 의사 소통이 좀 더 개방적이고 폭 넓게 돼 세대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콤플렉스는 엉켜있는 에너지다. 이 에너지는 자아를 개방하고 표출하면서 풀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일기 공개가 한 개인의 콤플렉스 해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노출해 공감을 얻고 싶고, 주목 받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공개 일기가 인기를 얻는 이유일 것” 이라고 말한다.

일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연인이나 이성 친구 간에 공유하는 ‘커플 일기’, 가족들 간의 친목을 다지는 ‘가족 일기’, 그룹별로 돌려보는 ‘교환일기’, 고3 학생들 사이의 ‘수험일기’ 등 갈수록 늘고 있다. 개방형 커뮤니티의 단점인 가볍고 표면적인 소통을 벗어나 깊은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네티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성, 그 당당함’ ‘영어일기’ ‘돼지꿈 개꿈’ ‘알바 이야기’ ‘이별 이야기’ 등 주제별로 분류돼 골라 읽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온라인 일기의 장점들이다.

최근들어 초등학교 교사들은 ‘내용의 비공개성’ ‘그림 음악 사진 등의 멀티미디어 효과’ 등으로 아날로그 일기검사의 단점을 보완한 일기 사이트 이용에 적극적인 편이다. 무엇보다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황 교사는 “학생 개개인에게 모두 인터넷 인프라가 지원된다면 일기장을 걷고 나눠주는 불편은 사라지겠지만, 아이들이 일기를 매일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온라인 일기가 75% 정도 공개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진솔한 자기와의 대화가 아닌 ‘꾸며진 나’와의 대화로 일관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단점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글로 표현을 하고 꾸미면서 ‘미지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소설가도 허구라는 수단을 빌려 자신의 감성을 얘기하지 않는가. 글을 쓰는 것은 꾸며진 것이든 아니든 결국엔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을 기른다”고 반박한다.

홍세정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5-04-27 15:45


홍세정 인턴기자 magicwelt@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