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50여건의 민원 접수, 제도개선·분쟁 중재자 역할

[인터넷 신문고 5년] 서민들 답답한 속, 두드려서 푼다
하루 350여건의 민원 접수, 제도개선·분쟁 중재자 역할

틈이 나면 청와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고(申聞鼓)의 공개민원게시판을 기웃거린다. 거기서는 이른바 ‘돈 없고, 빽 없는’ 서민들의 실낱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장삼이사들의 눈에 비친 우리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모순과 허점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기사가 될 만한 얘기들이 없나’ 해서인데, 한 날은 여기서 별다른 ‘건수’를 잡지 못했다. 이참에 ‘인터넷 신문고(www.smg.go.kr)’를 기사로 써보기로 했다. 더 많은 민생고들이 이곳을 통해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인터넷 신문고는 5월1일부터 ‘참여마당신문고(www.epeople.go.kr)’로 확대 개편돼 운영되고 있다.

“이번 학기만 마치면 졸업하는 대학 4학년 학생입니다. 학자금대출로 등록금을 대야 하는데 접수시작 하자마자 벌써 대출금이 다 소진됐다는데, 이게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군요. 어려운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학자금 대출이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채를 끌어다 써야 합니까? 학교를 포기해야 합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학자금 대출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2004년 2학기 등록금 납부가 시작될 즈음, 8월 한달 동안 인터넷 신문고에 오른 학자금 대출 관련 50여 건의 민원 중 하나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용 예산의 조기 소진으로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한 대학생의 사연이었다. 신문고의 반응은 어땠을까. 교육인적자원부를 통해서 202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긴급 편성해 은행에 배분하고 등록기간을 연장하도록 조치했다. 이 민원을 제기한 대학생이 구제를 받는데 걸린 시간은 단 4일.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이뤄진 조치였다. 신문고에 오른 민원은 접수일을 기준으로 통상 7일내 처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사안의 성질상 경찰청, 국세청 등의 자체 조사를 필요로 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조사 기간을 감안해 이보다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 1회에 한해 시한을 연장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접수된 민원 거의 모두 처리"
2000년 5월 사이버 공간에 신문고가 내걸린 후 지난 3월 31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접수된 민원 건수는 일일 215건에 해당하는 총 39만2,912건. 접수 건수의 부침은 있지만, 이도 증가 추세에 있어 청와대 민원제안비서실에서는 요즘 일일 평균 350여 건의 민원을 심사해 해당 기관으로 이첩처리하고 있다.

이렇게 쏟아지는 민원들을 인터넷 신문고는 다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접수된 민원은 거의 모두 처리된다”는 것이 청와대 민원제안비서실 최상집 국장의 답변이다. 그는 또 “100% 처리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다”면서 “입법ㆍ행정ㆍ사법의 3권이 국회와 정부, 법원에 각각 맡겨져 상호 견제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3권 분립의 정치 조직 하에서는, 행정부의 정점에 있는 청와대라 할지라도 법원의 권한에 속한 민원까지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고 말했다. 법적분쟁 민원까지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정도로 쉽게 접근해 너 나 할 것 없이 칠 수 있는 북이라면, 인터넷 신문고는 일각의 말마따나 ‘동네북’으로 불릴 만도 하다.

인터넷 신문고라고 해서 인터넷상에서만 칠 수 있는 북은 아니다. 인터넷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 민원의 특성상 여러 자료와 증빙 서류들을 불가피하게 첨부해야 하는 민원인. 이들을 고려해 우편으로도 접수를 받고 있다. 전체 민원의 20%를 이들 서신민원이 차지한다.

지난 3월 사고로 장애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 060 음성전화를 집중적으로 걸어 060정보를 이용하게 한 뒤 600여 만원의 이용요금을 청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회적 약자의 신체적 결함과 꼼꼼하지 못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강탈의 수준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이 억울함을 접수받은 신문고는 정보통신부로 하여금 해당 통신업?요금회수대행)와 민원인의 중재를 시도하도록 했고, 이미 자동 이체된 200여 만원을 제외한 400여 만원을 감액해주기로 처리했다. 관련 법령 정비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신문고에 오르는 민원은 제도 개선의 뇌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민원들의 기저에 제도의 불완전성이 내재돼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부에서는 접수된 민원을 제도개선의 방편으로 역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1402년(조선 태종2년)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하여 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이 신문고다. 인터넷 신문고는 말하자면 현대판 신문고로, 억울한 사연을 듣고 처리해 주는 일을 기본으로 하되, 분쟁의 훌륭한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해내고 있다.

차세대 축구 선수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없었던 ‘예비 국가대표’차찬수(가명ㆍ16)군의 사연이 그랬다. 차군은 축구선수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무료 합숙훈련과 축구화 등 일체의 경비를 대겠다는 학교로 전학을 했지만, 이전 학교에서 운동선수들의 호적등본에 해당하는 ‘이적동의서’를 넘겨 주지 않아 어떤 경기에도 출전할 수 없었다. 학교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인재의 유출을 아쉬워 하는 이전의 학교와 차 군이 전학 온 학교간의 갈등이었던 것. 결국 새 학교의 축구 코치가 민원을 제기해 신문고가 중간에 나섰고, 차 군의 뜻에 따라 결국 새 학교로 이적동의서가 전달됐다. 이로써 차 군은 축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한껏 키워 나갈 수 있게 됐다.

당시 민원을 냈던 김모 코치는 “1년 넘게 끌던 일이어서 글을 올리고도 반신반의했다”면서 “이렇게 일이 빠르고 부드럽게 처리돼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전화기 너머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다 하소연 해야 할 지를 몰라 이곳에 올립니다.” 인터넷 신문고에 공개된 민원들을 죽 읽어내려 가다 보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구절이다. 정부 조직만큼 크고 복잡하며 세분화된 조직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의당 나올법한 말이다. 이 같은 민원인들의 공통된 난처함을 감지한 까닭일까. 청와대는 보다 나은 민원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터넷 신문고를 확대 개편했다.

5월1일부터 '참여마당신문고'로 업그레이드
인터넷 신문고가 문을 연지 꼭 5년만의 일로, 5월 1일부터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의 민원접수 창구가 신문고와 통합돼 ‘참여마당신문고’로 거듭났고, 연말까지 전체 54개의 중앙 행정기관의 고충접수 창구가 이 시스템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접수된 민원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분류해 처리하고 회신하던 것을 모든 과정을 전산화해 보다 신속정확하고 투명한 민원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정민승기자


입력시간 : 2005-05-04 14:28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