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펴고…'베푸는' 새 삶 준비청소년 재단 설립, 사회산업·선교활동 등으로 여생 바칠 각오
이달 중 자유의 몸 되는 '조폭 대부' 김태촌 주먹 펴고…'베푸는' 새 삶 준비 청소년 재단 설립, 사회산업·선교활동 등으로 여생 바칠 각오
9일 오후4시 서울대병원 12층 특실인 112호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자 탁 트인 거실에 소파와 탁자 그리고 PC와 팩스 등이 보였다. 벽걸이 TV도 눈에 띈다. 한 눈에 고급 병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실제로 이 병실은 30여 평 크기에 하루 병실 이용료만 100만원 가까이 된다. 거실을 지나 왼쪽 방으로 들어가니 15년 동안 교도소에서 지내다 지난달 30일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일시 석방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57)씨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곁에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심부름 및 경호를 맡고 있었지만 ‘조폭’ 이라는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청바지에 흰색 면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말씨도 매우 정중했다. 아내 이영숙(56)씨가 김씨 옆에 앉아 있었고 김씨의 누나 등 가족들이 자주 병실을 찾았다. 전날 잠시 병실을 찾았을 때만 해도 김씨는 성대가 아파서 연신 쉰 목소리를 내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이날은 상태가 조금 호전돼 대화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기침을 자주 했고 목이 깔깔한 지 가래를 수시로 뱉어 냈다. 김씨는 과거 폐암 진단을 받고 한 쪽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데다 수감 중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몸은 매우 수척해 보였고 걸어 다니는 모습도 힘이 없어 보였다. 예전에 전국을 평정했던 조폭 우두머리의 모습 치고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아내와 지인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라 이씨는 자택인 경기도 의왕에서 오전 9시께 먹거리와 옷가지를 들고 병실로 와서 다음날 새벽 2시30분께 돌아간다. 남편이 호흡이 가빠 말을 많이 할 수 없어 하루 종일 말동무 해주고 약 챙겨주는 것이 이씨의 역할이다. 두 사람은 1996년 이씨가 수감 중인 김씨를 면회하면서 처음 만났으며 99년 옥중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내 자랑이 끝나고 과거 조직 이야기를 꺼내자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의 면회는 일절 안 받고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아내와 함께 새 출발을 하기로 오래 전부터 결심했거든요.” 그러면서 화제를 돌려 지인들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과 아내를 연결시켜 준 인천 순복음교회의 김성규 목사 칭찬에 이어 연예인 이야기로 접어 들었다. 김씨는 80년대 후반 나이트클럽을 주름 잡았던 경험 때문에 그 당시 인연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연예인들을 알고 있었다. 86년 자신이 프로야구 청보 핀토스 이사 시절 알게 된 야구해설가 하일성씨와는 둘도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교도소에 있을 당시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낸 데다 해설이 없는 날은 틈틈이 면회도 왔고 지금도 자신이 좋아하는 누룽지를 싸가지고 온다고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그 친구는 늘 가족의 중요성, 남을 배려하는 마음, 행복한 인생 등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탤런트 임동진씨 이야기도 빼먹지 않았다. 신앙심이 두터운 임씨 덕분에 많이 교화됐으며 최근에도 병원에 찾아오면 “아우님, 건강해라” 하면서 같이 기도를 올린다고.
조직 재건하는 일 절대 없을 것 김씨는 그에 대한 징표로 아내 이씨가 지난달 15일 출시한 복음성가 음반인 ‘이영숙 내 영의 찬양’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1970년대 가수로서 유명세를 탔던 이씨는 ‘그림자’ ‘꽃목걸이’ ‘가을이 오기 전에’ ‘아카시아 이별’ 등 귀에 익을 노래를 불렀다. 이 음반에는 총 11곡이 담겨 있는데 타이틀곡인 ‘기쁨 소망 주소서’는 힘든 사랑을 한 만큼 이제 두 부부에게 기쁨과 사랑을 달라는 의미로 작곡됐다고. 또 ‘정처없이 살아온’ 이라는 노래에선 김씨가 옥중에서 회개하는 마음, 두 사람이 8년간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매번 10여분만 만나야 했던 애절한 사연이 담겨있다고 전했다. 이 노래는 아내가 불렀지만 작사는 김씨가 했다. 김씨 부부는 “음반 취입 전에 연습할 당시 과거의 아픔이 떠올라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는 검ㆍ경에서 자신이 조직을 재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앞으로 교육부, 법무부, 국회 등과 협의해 청소년 재단을 설립할 것이며 음반 수익금은 양로원 고아원 등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회가 되면 암환자 돕기에도 나서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89년 폐암으로 한 쪽 폐를 잘라낸 데다 아내도 2000년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 아내 이씨도 “남편은 본래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만큼 크게 보면 이제 제자리로 되돌아온 셈”이라며 “3개월 정도 몸을 추스린 뒤 LA를 비롯한 전세계 선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남편이 폐활량을 늘리는 데 좋다는 말을 듣고 색소폰을 배우고 싶어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회에서 보호감호의 근거법인 사회보호법을 폐지하기로 함에 따라 김씨는 빠르면 이달 안에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될 전망이다. 그가 과연 과거와 다른 삶을 살 지 지켜볼 일이다.
입력시간 : 2005-07-21 19:24
|
강철원기자 str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