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간 벽을 허문 화합의 '발길질'

[사회] "스님 받으시지요"…뻥, "신부님 넘어갑니다"…뻥
종교간 벽을 허문 화합의 '발길질'

메밀꽃 피는 9월과 설국이 되는 겨울이면 전국각지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강원도 평창. 삼복 더위의 한 여름에 그것도 메밀꽃이 피려면 달포도 더 남은 강원도 평창이 지난 8월 6일 들썩대고 있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월정사 주지배 평창군 족구대회’의 시범 경기로 월정사 스님들이 춘천교구 소속의 성당 신부님들과 족구 경기를 벌이는 날이었다.

오전 10시 평창 진부의 오대천변. 공중에서 미동도 않는 애드벌룬과 어디에선가 격렬하게 진동하는 꽹과리 소리는 두메 산골 그곳이 축제의 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꽉 들어찬 자동차들과 이를 정리 하고 있는 택시 기사들의 분주한 호루라기 소리로 산골 마을은 활기가 넘쳤다.

천변 경기장도 마찬가지. 서울서 몰려온 방송 카메라들을 보기 위해 개천에서 멱감다 뛰쳐나온 아이들에서부터 삽 자루를 쥔 채 뒷짐을 지고선 농부, 늙수그레한 촌로들까지 족구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플래카드, 자갈이 든 빈 PT병을 이용한 응원팀의 예비 응원은 바람 한 점 없는 장내의 열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었다.

10시 50분.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던 각각 4명의 ‘선수’들이 심판의 휘슬 소리에 네트를 마주하고 섰다. 로만 칼라의 검은 수도복에 반바지, 운동화 차림의 신부들과 회색 승복에 털고무신, 운동화를 신은 승려들은 악수로 ‘페어 플레이’를 다짐했다.

“아뉘, 이기 지금 무슨 일이래~요.” 휘둥그레진 눈을 한 촌로의 말마따나 이번 일은 상식을 허무는 ‘사건’이었다. 최근 들어 다소 나아지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우월주의, 배타성으로 인한 종교간의 높은 벽과 이에 따른 갈등과 반목질시가 알게 모르게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웃으면서 족구를 하다니!’ 촌로는 놀랄 법도 했다.

이날 경기는 교도소 재소자들을 돌보던 김학배 신부가 같은 일을 하고 있던 월정사 관행 스님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처음으로 성사됐다. 지난 4월 월정사 스님들이 추진한 지역 교회 목사들과의 축구 경기가 일부 인사의 반대로 무산된 점을 감안하면 이번 종교화합의 족구 경기가 지니는 의미는 더욱 큰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세트 경기의 점수판이 9대 2를 나타내고 있을 때, 이대론 안되겠다 싶었는지 네트 우측에서 공격을 맡고 있던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쓰고 있던 밀짚 모자를 벗어 던졌다. 보살할미들은 주지 스님의 ‘화끈한’ 모습에 손에 불을 붙인다. 함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장내에 가득찬다.

이에 질세라 초당성당의 풍물패 ‘누리요셉풍물단’을 앞세운 춘천교구 천주교 신자들의 응원도 고조된다. “신부님 힘내세요”, “파이팅”에 이어 파도타기 응원 등 여느 경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수법은 다 동원됐다. 이들의 응원이 심판에 거슬렸나 보다. “제가 휘슬 불 때에는 꽹과리는 치는 일은 좀 참아 주세요, 예?” 공인심판인 지용원 주심이 들뜬 응원석의 분위기를 진정시킨다. 1세트는 15대 5로 신부팀의 압승이었다.

좌중의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는가 싶더니, 쉬지 않고 공이 네트를 몇 차례 넘나들자 분위기는 다시 고조된다. 2, 3세트 게임 중에는 심판의 입에서 “조용해달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염천이 이들을 달구는 게 아니라, 이들이 여름을 달구고 있었으므로. 경기는 2세트 종반부에 와 있었다.

경기에서 편이 갈리면 그에 따라 으레 갈려야 할 응원팀이지만, 저쪽 팀이 득점해도 ‘와~ 짝짝짝’, 이 쪽이 득점해도 ‘와~짝짝짝’이다. 족구공이 8명의 선수들 몸에 닿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쾅, 쾅거리는 북, 장구 소리가 하나된 응원을 이끌고 있었다. 이 뿐인가.

가져온 수박을 쟁반에 썰어 담고는 경기장을 몇 바퀴씩 돌며 너 나 할 것 없이 베푸는 중년의 한 천주교 신자.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개량 한복차림의 불교 신뇩옘峙?조각을 두 손으로 쟁반을 받쳐 든 그 천주교 신자의 입에 물리는 흐뭇한 장면도 벌어졌다. 잠시 후 저쪽에서 낸 시원한 캔 음료수도 박스가 열리기가 무섭게 양쪽으로 배포된다.

깎아차기가 주특기인 한 스님 덕택에 2세트 경기는 15대 11, 승려팀의 승리로 끝났다. 점수판을 잡고 있던 김형근 부심은 “오늘 같은 경기 심판 보는 일도 즐거운 일이지만, 각 팀이 1승씩 가져가니 참 보기 좋다”고 말했다. 김 부심이 밝힌 이들의 족구 실력은 일반부 보통실력.

세트 스코어 1대 1로 박빙의 경기를 펼치고 있는 양팀 선수들의 작전 타임이 길어지고 있을 무렵. 한쪽에선 월정사 스님과 천주교 신자 둘 사이의 대화가 유난히 챵篇汰浩求?

“왜 어제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안 오셨습니까?”(천주교 신자);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족구 연습 거드느라 못 갔습니다.”(월정사 교무국장 동은스님) 이들의 대화를 범상치 않다고 여기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묻자, “이 분들이요? 절에 매일 놀러 오는 분인데요, 천주교 신자였네요.”(동은스님) “우리가 바로 불교적 천주교 신자 아닙니까.”(황혜자 씨) 스님은 또 천주교적 스님이란다.

속세를 떠난 그들이 무슨 승부에 연연해 할까 만은 만면에 가득한 웃음 사이에 비장한 눈빛은 역력했다. 얇게 들어온 승려팀의 강공 서브를 가뿐히 받아내는 신부. 공중 부양한 몸을 직각으로 틀며 그 공을 쏘아넣는, 선글라스를 낀 신부의 모습은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승려 측의 역공도 만만치 않았다. ‘족구 9단’으로 통하는 법상 스님의 소림권법을 연상케 하는 현란한 발놀림과 속공은 신부팀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종교의 벽을 넘는다는 게 이 행사의 취지였다지만, 스포츠를 통한 것인 만큼 봐주기식 경기로는 그 의미를 살려낼 수 없음을 양 팀 선수들은 알고 있는 듯했다.

14대 14. 3세트 마지막 경기는 듀스까지 가는 접전으로 좌중을 흥분시켰다. 14대 15. 신부팀이 1점만 올리면 게임은 종료되는 상황. 신부팀의 서브였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공이 네트에 걸리고 말았다. 환호와 탄식이 잠시 섞이더니, 장내는 바람소리,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사막으로 변했다.

승려팀의 서브가 그 고요함을 뚫고 네트를 넘어 갔다. 신부팀의 그 공은 다시 승려팀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공은 다시 신부팀으로 넘어오지 못했다. 경기는 결국 2대 1로 춘천교구 소속 성당 신부님 팀의 승리로 끝났다.

“신부님들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발 한번 제대로 맞춰 보지 못했지만, 아주 즐거운 경기였습니다. 스님들이 자비를 베풀어 사정을 봐 준 것 같습니다.”

천주교 춘천교구 교육국장인 오세민 신부는 겸손해 했다. 이에 법상 스님은 “스포츠에 자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신부님들이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고 응수했다.

그들이 족구 경기를 하던 날, 두 종교와 그 신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형제자매’가 돼 있었다.


정민승 기자


입력시간 : 2005-08-18 13:32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