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들을 여왕처럼 보살펴야" 출산율 저하는 국가적 재앙…여성들의 건강은 사회의 책임
[메디컬 피플] 강재성 여성의학·건강엑스포 조직위원장 "임산부들을 여왕처럼 보살펴야" 출산율 저하는 국가적 재앙…여성들의 건강은 사회의 책임
핵폭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구폭발이라며 “둘도 많으니 하나만 낳자”던 정부가 요즘들어 “제발 애 좀 더 낳아라”고 성화를 부린다. 불과 30여 년 사이 산아제한에서 출산장려로, 나라 정책을 손바닥 뒤집 듯 한 배경에는 급속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추세로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 않아 3류국가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정ㆍ난관 복원수술 시 건강보험 혜택을 주고 육아휴직 급여 4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하는 등 당근을 잇따라 꺼내 들고 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이런 작금의 사태를 더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이 땅 여성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최근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여성이야말로 진정한 성장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여성과 여성 건강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이제라도 ‘우리를 먹여살릴 일꾼’을 잉태한 “임부(姙婦)들을 여왕처럼 떠받들자”고 외치고 나선 것이다. 이들 의사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노력으로 8월 26일부터 사흘간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여성 건강을 테마로 한 ‘여성의학ㆍ건강엑스포’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서 는 ‘임신 중’임을 알리는 배지를 임부들의 몸에 하나씩 달아주는 ‘여왕 발대식’을 열 계획이다. 표식을 단 ‘여왕’ 근처에서는 누구라도 흡연을 삼가고, 만일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다 임신부와 마주하게 되면 자리를 양보하도록 하는 지시물인 셈이다. 이 정도면 임부들에게 벌 세계의 ‘여왕벌’쯤 되는 대접을 해주자는 이야기가 된다.
모두가 임부들의 지킴이 돼야 여성의학ㆍ건강엑스포 행사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 의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강재성 교수의 ‘여왕 선포식’에 대한 변이다. 여성이 21세기 국가졍쟁력의 핵심인데, 이들의 건강과 미래를 재생산하는 능력에 빨간불이 켜졌으니 큰일 났다는 것이다. 또 ‘병이 나면 알리라’는 말처럼, 어서 빨리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산율 하락이 어디 산부인과 의사들의 외침만으로 해결될 문제일까. 여성들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육아나 교육비 부담 탓도 크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결혼을 안 하거나 늦추는 미혼ㆍ만혼 풍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3년 전체 가임여성 출산율은 1.19명 이었지만 기혼 여성들만 따로 놓고 봤을 때는 1.8명으로 훨씬 높게 나타나,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이 출산율 수치를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출산율이 떨어진 1970년부터 지난 35년 간 25~29세 결혼 적령기 여성의 미혼율이 9.7%에서 33%로 3배 이상 증가한 것도 이런 분석 결과를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거나 미루는 여성들만을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직장과 양육 병행할 여건 마련을
만혼이나 미혼 풍조 확산의 후폭풍은 출遠?저하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임신성 당뇨나 고혈압 등 임신 합병증이나 기형아ㆍ저체중아 출산 등이 점점 늘어나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동시에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통계 수치만 봐도 그의 말이 엄포가 아님이 금세 드러난다. 몸무게가 2.5㎏ 미만인 저체중아 출생 비율이 1993년 2.6%(1만8,519명)에서 1998년 3.5%(2만1,960명)로 5년 새 0.9% 증가했다. 난소암 발생이 늘고 있는 것도 골칫거리란다. 조기 발견이 어려워 더욱 치명적인 난소암은 보통 배란 횟수가 적을수록, 즉 출산을 많이 할수록 발생률이 떨어지는데 “아이를 많이 낳지 않게 됨에 따라 배란 횟수가 증가하여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사람들이 되도록 아이를 안 낳다 보니 산부인과 병원 풍경도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환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병원 문을 닫거나 아니면 고육지책으로 ‘비만 클리닉’으로 간판을 바꾸는 곳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서울과 수도권 산부인과 병원의 폐업률이 4.5%로 개업률 2.9%보다 훨씬 높은 실정이다.
여성의학과로 개명을 검토 중 “국내 의료계는 지금 진료과목 개명 작업이 한창입니다. 해부병리과가 병리과로, 마취과가 마취통증의학과로, 방사선과가 진단영상의학과로 이미 바뀌었다”는 그는 “산부인과도 여성의학과로 고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출산율 하락으로 환자 수가 격감한 데 따른 위기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료서비스에 대한 환자들의 욕구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상담이나 치료를 동일한 곳에서 전문적으로 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유방암이나 요실금, 배뇨장애 등의 경우가 특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여성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데다가 임신ㆍ출산이나 부인과 질환 상담 등을 위해 자주 왕래를 하면서 차마 다른 곳에서는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것들을 허물없이 주고받다보니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언뜻 들으면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하자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방암이나 배뇨장애 등을 부인과 의사들이 진료하고 있다고 답하면서 “다른 과와 협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런 분야를 함께 진료하기 위해서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전제도 빠뜨리지 않았다. “불임이라든가 임신합병증 치료라든가, 국내 산부인과 의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입니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기술도 사실 산부인과 불임치료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밝은 표정으로 국내 산부인과 의료 수준의 우수성을 자랑하던 그는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라고 이내 침통한 표정을 짓는다. “사람이 밑천이라고,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려와야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데, 되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의대 산부인과 지망자 수가 미달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을 정도예요.”
입력시간 : 2005-08-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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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