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화백 부인 마사코 여사 최근 인터뷰서 밝혀

"이중섭은 같은 그림 한장씩을 두 아들에게 편지 대신 보냈다"
이중섭 화백 부인 마사코 여사 최근 인터뷰서 밝혀

“지금까지 접어 두었던 많은 작품 중에 골라서 옮겨 그리고(복사하고) 제작할 것이니 (작업이)빠를 것이오.”.

한국 근ㆍ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중섭(1916~1956) 화백이 1952년 가족과 헤어진 뒤 일본에 있는 부인 마사코(84ㆍ한국명 이덕남) 여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이 화백의 차남 이태성(56ㆍ일본명 야마모토 야스나리)씨는 8월 중순, 지인을 통해 이 화백의 편지(사본)를 기자에게 보내왔다. 4개월 이상 계속 되고 있는 이중섭 작품 진위 논란의 진실을 위해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 다른 이중섭 편지 중에는 “2, 3일 후에 작은 그림을 당신들에게 보낼 것이오”라고 쓰여진 것도 있다. 이는 이중섭이 일본의 가족에게 상당한 양의 편지ㆍ그림을 보냈고, 유사한 그림이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분명한 증거다.

지난 24일 일본을 방문중인 ‘이중섭 예술문화진흥회(회장 마사코 여사)’관계자를 통해 인터뷰 한 마사코 여사는 “남편은 두 아들 태현ㆍ태성에게 편지 대신 같은 그림을 한 장 씩 그려서 보내줬다. 종이가 없어 한 장만 보낼 때는 ‘싸우지 말고 사이 좋게 보라’고 아빠다운 다정함을 보였다”고 말했다.

마사코 여사의 증언이나 태성씨가 기자에게 전한 이중섭 편지에 나타난 다작과 유사 그림의 증거는 박재삼 시인이 펴낸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2000년, 다빈치 출간)에서도 확인된다.

“아빠가 사다 놓은 종이가 떨어져서 한 장 밖에 없어서 그림을 한 장만 그려 보낸다. 엄마와 태성이, 태현이 셋이 사이 좋게 봐 다오.”(171쪽) “아빠는 오늘도 태현이와 태성이가 물고기와 게하고 놀고 있는 그림을 그렸단다.”(179쪽) “아빠는 오늘 종이가 떨어져서 한 장만 써서 보낸다. 태현이와 태성이 둘이서 함께 보아라. 이 다음에는 재미있는 그림을 한 장씩 그려서 편지와 함께 보내 주겠다.”(180쪽)


























이중섭 작품 진위 논란은 3월16일 태성씨가 이중섭 50주기 기념사업과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아버지의 유골을 좀 더 나은 곳으로 옮기기 위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작품 몇 점을 서울옥션의 경매에 내놓으면서 불거졌다. 낙찰이 된 작품에 대해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이하 감정협회) 관계자가 ‘위작’이라고 발표하자 태성씨가 1주일 뒤 “유족이 50여년 간 보관 해 온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법정 공방으로까지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김용수(68ㆍ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씨가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작품 600여 점이 공개되면서 진위논란은 ‘이태성-감정협회-김용수’3자 간의 문제로 확대됐다.

감정협회는 이중섭 작품은 모두 300 점 정도에 불과하고 태성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복사한 흔적이 있어서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김용수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역시 위작범들이 그린 위작이고 김씨가 태성씨에게 위작을 건넸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수사에서 김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위작범과 연계된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고 김씨가 위작품을 태성씨에게 건넨 사실이 없다는 것도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섭의 작품수와 관련, 감정협회 최명윤씨는 “이중섭의 그림은 마사코와의 연애시절(1941~42년) 90여 점, 일본으로 건너간 1953년 8월 100여 점, 같은 해 국내로 돌아와 사망 직전인 55년까지 그린 우편 엽서 등 50~60 점 외에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업자를 통해 건너 온 30여 점 등 모두 300 점 안팎”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중섭을 가까이서 지켜 본 고 구상 시인, 김광림ㆍ허만하 시인 등은 이중섭의 작품이 300 여 점을 훨씬 상회한다고 술회했다. 고 구상 시인은 “중섭이는 방에 틀어박혀서 그림을 그릴 때가 많았고, 방이 비좁을 정도로 그림이 가득한 것을 봤다”고 회고했다.

허만하 시인은 “서정희(대구에서 이중섭이 남긴 그림을 보관옙쳄?의 담요 속에 보관돼 있던 그 많은 이중섭 그림은 어디에 갔나”고 애석해 했다. (이중섭의 유품으로 남은 수백 점의 그림은 서정희 시인에게서 김찬호 극작가를 거쳐 서울 인사동까지 흘러온 것을 김용수씨가 구입했다. 2005년 8월16일자 주간한국 2085호)

이중섭이 1954년 초 마사코 여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짧은 기간에 113점의 徘걋?완성했고, 새해에는 하루에 꼭 두 점씩 그리겠다고 다짐하면서 36점 째를 손대고 있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

마사코 여사는 24일 통화에서 “남편은 그림이 팔리면 일본의 가족을 만나러 가겠다며 그림을 미친듯이(빠르게) 그리고 있다고 편지 한 적이 있다”고 해 여러 정황상 이중섭이 생전에 남긴 그림이 1,000 점도 상회할 수 있음을 가늠케 했다.

감정협회가 태성씨의 소장품이 기존에 공개된 작품과 유사하고 복사한 흔적이 있어 위작이라고 단정한 것은 앞서 이중섭의 편지와 마사코 여사의 증언 등을 종합해 보면 오판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 리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작품 200 여점은 대부분 태현씨가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1979년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씨가 “이중섭 도록을 만들겠으니 작품을 보내달라”고 해 마사코 여사가 태현씨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중심으로 250 점 가량을 보내준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이중섭 유족에게 작품을 돌려주지 않고 화상 L씨를 통해 당시 삼성 호암박물관에 판매했다.

















따라서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편지 내력에 근거할 때 삼성 리움 박물관에 있는 태현씨 소장의 이중섭 작품이 진품이면 태성씨가 보관해 온 이중섭 작품 역시 진품일 수밖에 없다. 이는 리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태현씨 소장의 편지가 곁들여진 ‘길 떠나는 가족’‘아이와 복숭아’작품과 현재 태성씨가 소장하고 있는 같은 형태의 작품이 거의 일치하는 것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주목되는 것은 리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제주도 풍경’이라는 이중섭 작품과 김용수 씨가 1971년 경에 인사동에서 구입, 30년 이상 소장해온 같은 제목의 이중섭 작품이다. 태성씨는 올해 초 김씨가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아버지의 작품을 직접 보고 ‘진품’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도 ‘제주도 풍경’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엄마’를 뜻하는 일본어 표기가 리움 박물관의 태현씨 소장 작품과 달랐기 때문이다. 리움 박물관의 ‘제주도 풍경’에는 엄마가 ‘마마(ママ)’로 표기된데 반해 김씨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에는 ‘누누(ヌヌ)’로 되어 있다.

태성씨의 의문은 일본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편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풀렸다. 이중섭의 편지 중에 엄마를 ‘누누(ヌヌ)’로 표기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태성씨는 24일 통화에서 “아버지 편지를 보고 김 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진품이란 확신을 더욱 굳혔고, 어릴 적 헤어져 그림으로만 보아온 아버지를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태성씨는 “아버지 49주기(9월6일)에 즈음 해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져 아버지 작품에 대한 미술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접어 두었던 많은 작품중에 골라서 옮겨 그리고 (복사하고)제작할것이니 빠를 것이오.' 라는 내용의 이중섭편지.(왼쪽)'2,3일 후에 작은 그림을 당신들에게 보낼것이오.'라는 내용의 이중섭 편지















이중섭 작품 진위 논란은 검찰이 서울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비롯한 전문 감정기관의 감정 결과를 종합, 9월 말 최종 수사 결과를 밝힐 예정이다. 검찰과 화랑계의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서울대와 국과수의 1차 감정결과 ‘진품’쪽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종 통보에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논란이 있었던 7월 말 안목감정결과(14 대 0으로 ‘위작’이라는 결론)는 검찰(형사 7부 김철 검사)이 “공식적인 검찰 입장이 아니다”고 밝힌 데다 서울대와 국과수의 감정결과와 상반된 것으로 알려져 오히려 검찰의 불신을 초래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개월째 이번 사건을 추적해 온 MBC 관계자는 “안목 감정을 한 14명의 전문가 선정 과정에서 전임 검사의 불찰이 발견됐다”면서 “모 평론가의 경우 진위 작품을 잘못 판단해 문제가 된 전력이 있고, C교수는 출판을 위해 화랑에 손을 내밀고 있는데다 K씨는 감정협회측 최 모씨와 사제관계에 있고, H화랑 P씨의 경우 제2 옥션을 준비하고 있는 등 감정단 구성의 공정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MBC 법뗬읏【?활동했던 Y씨는 “ 검찰이 위작범에 초점을 맞춰 4개월 이상 수사를 하고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법조와 문화팀의 취재결과 이번 사건은 진위 문제가 아닌 감정협회와 서울옥션 사이의 불편한 관계에서 출발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장남 태현이 소장하고 있던 '아이와 복숭아'(삼성 라움박물관 소장)와 차남 태성이 보관하고 있는 '아이와 복숭아'


























또 다른 MBC 관계자는 “ 최근 감정협회측 최모씨가 이중섭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는 대전의 모 변호사와 접촉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이고 있고, 모 방송국의 김모 팀장까지 나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9월 6일 49주기를 맞는 이중섭은 캬蘭湧?진흙탕 싸움을 어떻게 바라볼까. 4개월 여에 걸친 ‘진실게임’이 마무리되는 9월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이중섭 유족 마사코ㆍ이태성 인터뷰>

[마사코 여사]

- 소장하고 있던 그림이 한국에 오게 된 과정은.

▲조카 이영진씨가 유명 사진작가를 통해 도록을 만든다고 해 소장하고 있던 남편 그림 중 태현씨에게 보낸 것을 중심으로 200여 점을 건네줬다.

- 당시 그림은 삼성측에 팔렸는데.

▲서울에서 이영진씨한테 도록에 대해 물어보니 만들지 않았다고 해 그림을 돌려달라고 하니까 표구가 돼있다며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어느날 호암미술관에서 “이중섭의 권리(저작권 등)를 팔지 않겠냐”고 물어와 삼성측에 팔린 것을 알았다.

- 그 점에 대해 이영진씨는 무어라고 했는가.

▲호암미술관에 데리고 가 무슨 말을 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 남편의 권리가 삼성측으로 넘어간 것을 알았다. 구상 시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별 도움이 안됐다.

- 이중섭 그림은 얼마나 소장하고 있나. 한국에서 논란이 많은데.

▲(잠시 망설이다) 있다는 정도만 얘기하겠다. 남편 그림으로 자식들까지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니 이영진씨한테 그림을 돌려 받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이태성씨]

- 감정협회에서 태성씨 그림을 위작이라고 하는데.

▲감정협회가 위작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이중섭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감정협회가 왜 그런다고 생각하나.

▲유족이 나타나면 두려워 하거나 힘을 잃을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 9월6일이 이중섭 49주기인데.

▲한국을 방문할 것이다. 진위논란이 어떻게 결론 나든 내가 이중섭 아들임이 변하지않는 한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아버지 그림은 진품이다. 내년 50주기에 기념사업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과 힘을 弔?생각이다.

- 김용수씨 작품을 어떻게 보나.

▲진품이다. 그 분이 일본에 와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박종진기자


입력시간 : 2005-08-30 16:13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