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장애인 김광욱 씨고립의 인생, 얼굴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로 고통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우릴 외면했다
화상장애인 김광욱 씨
고립의 인생, 얼굴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로 고통


화상 환자들은 모습이 흉하다는 이유로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화재로 인해 얼굴을 다친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안면 화상 환자들은 최근 ‘안면변형’으로 새롭게 장애 범주에 포함됐지만, 여전히 사회적 편견의 문턱은 높다. 직장과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배척 당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화상 장애인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직장 문제다. 화상 장애인들은 단지 보기가 좋지않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생계수단도 확보하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세상에 얼굴이 보기 흉하다고 막노동도 시켜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사지가 멀쩡한데 굶어죽으란 얘기인가요.”

인터넷 장애인신문 ‘에이블뉴스(www.ablenews.co.kr)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김광욱(31) 씨. 그가 칼럼니스트란 명함을 갖게 된 건 3년 전 인터넷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에 ‘취업실패수기’를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생후 7개월에 연탄 아궁이에 머리부터 빠지는 바람에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김 씨. 그는 조선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영어 강사가 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면접만 보면 떨어졌다. 교감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사가 되려고 교육대학원 진학도 모색해봤지만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교원 임용에 성공하더라도 그를 채용할 학교가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만류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막노동 시장도 찾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김 씨는 “화상이 단지 외형의 문제가 아닌 장애라는 걸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과는 늘 정해져 있었어요. 능력이 아닌 얼굴을 먼저 보니까요. 그렇게 무려 700번의 취업 면접을 치르고 난 뒤에야 비뚤어진 사회 고발에 나서게 됐죠.” 김 씨가 자신의 처절한 경험담을 엮어 취업실패수기를 쓰게 된 까닭이다. 그는 이 180여 건의 수기를 엮어 2003년 ‘잃어버린 내 얼굴’(좋은 사람 발행)이라는 책을 펴냈다.

화상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좌절의 연속이다. 집 밖을 나서면 쏟아지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서부터 고통은 시작된다고 한다. “식당에 들어가면 주인은 얼굴부터 쭉 훑어봅니다.

목욕탕에선 더러운 전염병 환자 취급을 받죠. 이럴 땐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항의도 못합니다. 어디를 가도 환영 받지 못하는 신세가 서럽고, 자신이 괴물같이 느껴져 구석으로 숨고만 싶어집니다.”

자신을 혐오스러운 괴물로 취급하는 시선으로 인해 얼굴의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마음에 입었다고 한다. 그는 성장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의식하게 됐고, 그것은 혹독한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수십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돌을 맞았어요. 피투성이가 되었지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얼굴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지하철을 타면 주위의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겼고, 그의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치한으로 몰리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다.

“정말 단 한 순간만이라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 길거리를 다녀보고 싶어요. 얼굴을 가린 모자도 벗고 싶어도 여자가 알몸을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두려워 이내 포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냉대로 인해 화상 장애인들 중 상당수는 사회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집에서만 10~20년 지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화상을 입으면 그 순간 모든 사회적 삶이 중단됩니다. 학생이었다면 학교를 포기하게 되고, 미혼 여성은 결혼을 포기해야 합니다.”

화상 장애인들은 억눌린 마음의 상처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화상으로 신체가 손상됐다는 충격 뿐 아니라 생활하면 느끼는 좌절감 때문에 수시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

김씨도 하루에도 수천 번 자살 충동을 느끼고, 수없이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맞았다고 한다. “술과 담배로 괴로움을 달래고, 그것으로 안 되면 끝내 죽음을 택하기도 해요.

특히 여성들의 경우는 치명적이에요. 같은 화상 장애인으로서 위로를 해보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에선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어요. 모두들 낙이 없죠.”

2003년 7월 장애범주가 확대되면서 얼굴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안면 변형 장애인(2~4급, 1급은 없음) 등록을 하게 됐지만,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서 이중으로 고통을 겪는다.

“장애범주에 들어가도 사지가 멀쩡하니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를 않죠.” 장애 2급은 노출된 부위의 90% 이상 변형이 있는 사람, 3급과 4급은 각각 75%, 60% 이상으로 기준도 모호하다. 반면 얼굴을 제외한 전신에 화상을 입은 경우는 아무리 화상 부위가 커도 장애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과연 화상을 입은 사람에게 얼굴의 몇 %를 다쳤느냐가 중요한 문제일까요. 얼굴의 절반 이하에 변형이 왔더라도 어차피 사회에서 큰 불이익을 겪을 수밖에 없잖아요.”

화상 장애인으로 세상과 부딪치면서 김 씨는 투사가 됐다. 그런 관점에서는 그는 가끔 뉴스에서 접하는 ‘천사표’ 장애인은 아닐지 모른다.

화상 장애인들의 생존권을 위해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사이버 공간에는 사회적 약자로서 겪는 비합리적인대우의 단면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칼럼을 올린다. “사회로부터 엄청난 차별과 고통을 받아도 ‘난 모든 걸 이겨내고 이렇게 행복하다’는 식의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화상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가까운 무지한 사회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화재와 사고 등 누구도 장애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예비적 장애인”이라며 “화상 장애인을 격리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보아달라”고 당부한다.

인터뷰/ 장기언 한강성심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화상은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이 심각하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화상 피부는 당겨 오그라드는 작용이 있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24시간 지속되고,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화상 당시의 악몽과 같은 기억으로 외상후 증후군(Post-Traumatic Disorder)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강성심병원 재활의학과 장기언 교수는 "화상 피부는 완치가 어렵고, 통증과 가려움이 동반돼 장기약물을 복용하는 등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당부했다.

장 교수는 또 "화상장애인의 재활치료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피부 이식 수술 비용이 상당히 고가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부분의 피부 이식수술은 미용성형수술로 분류되기 때문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대부분의 화상 환자들은 미용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인이 되기 위해 절박하게 수술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의 장애 진단, 생명보험의 장애 진단 등에서 안면부 이외의 화상 흉터는 장애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팔, 다리 등 신체 화상인 경우에도 고통은 역시 극심하다.

심한 전신 3도 화상은 팔다리 절단, 척수 마비, 발기부전, 뇌 손상, 호흡장애까지 초래할 수 있다. 장 교수는 "몸통, 사지의 화상도 많은 장애와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에 화상 장애에 대한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8-30 17:16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