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바 신설·민속공연 확대 등 전통 문화시설 전면 재단장

삼청각, "이곳이 도심 속 파라다이스"
와인바 신설·민속공연 확대 등 전통 문화시설 전면 재단장

광화문 동십자각과 삼청동을 지나 삼청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좌측으로 숲 속에 파묻힌 듯한 단아한 모습의 한옥 몇 채가 보인다.

한때 정치권 등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던 비밀 요정으로 이름을 떨치다 지금은 전통 문화 시설로 탈바꿈한 삼청각이다.

삼청각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고아한 한복 차림의 안내원이 손님을 맞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올라가는 길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길 왼편으로 가재가 금방이라도 나올 듯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고 오른편으로는 벌겋게 드러낸 아름드리 적송 사이로 천추당과 천청당이 보일 뿐, 자연 그 자체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소리칠 법도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하다.

길 끝에 닿아, 삼청각의 본당에 해당하는 일화당에 오르면 풀내음 한껏 머금은 바람이 양볼을 스치고, 거기에 실려오는 은은한 풍경소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광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신선의 집을 의미하는 태청(太淸), 옥청(玉淸), 상청(上淸)에서 땄다는 삼청각(三淸閣) 이름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북한 적십자 대표단을 위한 만찬 장소로 건립된 삼청각은 1970~80년대의 막후정치, 요정정치의 주무대로 명성을 떨치던 곳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손님이 줄어들자 1990년대 중반 이름을 ‘예향’으로 바꾸고 일반 음식점으로 전환했으나 경영 호전이 안 돼 1999년 12월 끝내 문을 닫았다.

2001년 서울시에서 인수해 전통 문화 시설로 일반에 개방해 왔다.

그러다 지난 7월1일 파라다이스 호텔이 서울시로부터 신규 위탁운영자로 선정되면서 8월22일 새롭게 문을 열어 관심을 끌고 있다.

리모델링에 소요된 시간은 무려 50여일. 그 동안 공연사업과 식ㆍ음료사업을 분리해 각각 위탁 운영함으로써 효율이 떨어져 적자를 면치 못했던 사실을 감안, 파라다이스 호텔은 이를 일괄적으로 위탁 받아 운영해 시너지효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과거의 명성에 버금가는 ‘삼청각’을 꾸린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삼청각이 새롭게 내 건 캐치프레이즈는 ‘풍류문화공간’, ‘도심 속의 파라다이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공간

거의 모든 부분에 걸쳐 새 단장을 한 터라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운치 있게 보이지만,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여지껏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와인바다.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일화당 맨꼭대기층인 2층(일화당은 지하 2개층 포함 총 4층 규모)에 전통과 현대의 멋을 함께 살린 ‘다소니’다. 간단한 식사에 전통차, 전통주, 와인을 맛 볼 수 있다.

‘다소니’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순 우리말이다. 유럽대륙은 물론 신대륙에서 생산된 200여종의 와인을 갖춘 ‘투명한 대형 냉장고’도 압권이다.

이 냉장고는 다소니 내부의 한쪽 공간을 통 유리로 질러 만들어진 인테리어 냉장고로 전문 와인바가 부럽지 않다. 테라스의 테이블에 앉아 드는 와인의 맛은 두 배가 되고도 남을 듯하다.

다소니의 아랫층은 웰빙, 자연식을 표방한 한국전통음식전문점 ‘이궁(異宮).’ 왕족의 별장을 의미하는 그 이름에 걸맞게 메뉴 하나 하나가 수라상에 오르고도 남는 요리들이다.

일체의 요리들이 북악산 약수와 삼청각에서 직접 담근 재래식 장으로 조리된다는 점과, 사용되는 식기들이 도기공방 ‘낙원요’에서 제작된 세상에서 유일한 수공예품이라는 것도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특히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 물을 흐르게 한 인테리어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재개장과 함께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가 ‘풍류문화공간’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먹고 마시는 것만으로 끝낸다면 북악산자락의삼청각을찾는의미는반감된다.

일화당의 나머지 공간에 꾸며진 예술공연장 ‘예푸리’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예술을 풀어내는 곳’이란 의미의 예푸리에서는 현재 전통 예술 공연인 풍류 춤판 ‘바람의 도학’이 연중 상설 공연되고 있다.

김태균 작ㆍ연출에 강상구씨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바람의 도학’은 조선 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모티브로 삼아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풍류와 비극적 삶을 전통적인 무용극 양식에 접목시킨 이미지 춤판.

자연을 음유하고 관상하며 안빈낙도를 꿈꾸던 조선 선비들의 청아한 정신세계를 오롯이 그려내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다.

전통 공연과 환상적인 무대가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공연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국내 공연사상 전통예술공연물로 레퍼토리화되어 1년 이상의 장기공연을 갖게 되는 예는 ‘바람의 도학’이 처음 이다.

월~금요일까지 밤 8시, 토ㆍ일요일은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입장료는 VIP석 5만원, S석 4만원. 144석 규모다.

공연 시작 시간이 남았다면 일화당 앞마당으로 난 대문을 통해 밖으로 나서보는 것도 좋다.

삼청각에서 일화당이 본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까닭에 온전하게 보존된 자연환경을 삼청각의 백미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문을 나서 주차장의 반대편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유화정. 흔히 볼 수 있는 팔각정이되 그 규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계곡을 끼고 있어 삼청각 중에서 음기가 가장 세 귀신이 출몰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파라다이스 호텔은 이곳을 이달 중에 국악 체험장으로 운용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권력자의 아방궁이 현회장으로

유화정과 마주한 한옥은 청천당. 계곡을 마주하고 앉은 이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유일하게 청천당 주변에만 쳐진 높은 담도 단골이었던 그를 위해 쌓여진 것이다. 삼청각을 그의 ‘아방궁’으로 부르는 예가 있다면 바로 청천당을 두고 하는 얘기다.

70~8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회갑연, 돌, 세미나 손님과 단체 외국인 관광객 등을 맞는다. 청천당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곳은 천추당. 영화 ‘스캔들’이 촬영되기 전에 배용준이 예절교육을 받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관광객들이 이곳을 빠뜨리지 않고 찾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천추당은 다례교육장으로 이용된다.

이외에도 취한당이 규방공예체험장으로 사용되는 등 삼청각은 먹고 마시며 즐기는 풍류의 공간으로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교육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숲에 안긴 듯한 동백헌은 숙박시설로 사용한다는 계획이지만, 당국의 허가가 아직 나지 않아 일반인들이 이곳에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삼청각을 가려면 대중교통편이 없어 자가용 또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셔틀버스는 무료이며 경복궁ㆍ인사동 입구ㆍ을지로 1가 삼성화재(롯데호텔 건너편)ㆍ교보문고 정문 앞 등에 정차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주차비는 차ㆍ식사 고객은 무료, 공연관람객은 3,000원. 문의 (02)765-3700 / www.3pp.co.kr

전통문화와 자연의 풍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삼청각에서 가을에 취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삼청각의 어제와 오늘

정치권력자들의 '비밀의 방'

1970년대 독재정권에 의해 지어진 요정정치의 주무대…강남 룸살롱에 밀려 쇠락, 변신 거듭하며 옛 명성 회복에 안간힘

삼청각(三淸閣)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데는 무엇보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뒤에 숨은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삼청각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모아봤다.

삼청각이 건립된 때는 1972년. 북한과 7ㆍ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물밑 협상 중이던 박정희 정권이 북한 대표와 비밀협상 장소로 쓰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기를 맞추지 못해 실제 협상장소로는 쓰이지 못했다.

대신, 7ㆍ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직후 북한 적십?대표와의 만찬 장소로 이용되었다는 것이 삼청각 설계를 맡았던 라이온건축의 고 정재?2002년 4월 작고)씨의 아들, 정혁진(38)씨의 말이다.

현재 정씨는 선친의 대를 이어 서울 서초구에서 건축사무실을 운영중이다.

2001년 세종문화회관이 삼청각을 위탁경영할 당시 운영팀장을 맡았던 김승업(53ㆍ현 김해문화의전당 사장)씨도 삼청각 건립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김씨는 “한 남측 인사가 북한의 옥류관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 ‘북측 사람들이 남한에 오면 남한에서도 그 정도 ¤遊?해야 하는데’라는 얘기를 했었다”며 삼청각이 비밀회담 장소라기보다는 귀빈 접대용으로 만든 시설이라는 데 무게를 실었다.

삼청각은 본당에 해당하는 일화당(一和堂)을 비롯 유화정, 청천당, 천추당, 취한당, 동백헌 등 여섯 동의 건물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중앙정보부의 지휘아래 현대건설이 시공했다.

여섯 동의 건물 중 4층 규모의 일화당은 유일하게 콘크리트로 지어져 관심을 끈다. 시중에선 방탄 문제를 염두에 두고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설계를 맡았던 라이온건축의 얘기는 다르다.

정혁진씨는 “선친의 얘기들을 종합해 볼 때, 그 같은 규모의 건물을 목조로 짓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라며 건축 기술상의 문제로 분석했다.

정씨는 “중앙정보부가 공사 지휘감독을 했던 만큼 실제 공사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무수히 현장을 오갔고, 특히 땅 고르는 작업에는 군인들이 와서 공사를 하기도 했다”고 선친의 말을 전했다.

공사기간도 삼청각을 얘기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설계에서 완공까지 걸린 시간은 단 3개월.

초고속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방탄 건물로 믿을 정도로 건재하다.

일화당의 경우 외양은 한옥이지만 기중, 대들보는 물론 서까래 하나까지도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정씨는 “요즘 이 같은 건물을 짓는다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콘크리트 부품을 납품 받아 조립하겠지만, 당시에는 서까래 하나까지 거푸집 공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무척 힘든 공사였다”며 선친과의 대화를 회고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때문인지 일화당은 지금도 한눈에 콘크리트 건물임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정교하다.

일화당을 제외한 목조 건물 다섯 동을 짓는 데에도 최고급의 수입 목재와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도편수들이 대거 동원됐다.

삼청각은 1970년대라는 시대적 특성과 맞물려 ‘밀실정치’, ‘요정정치’의 주무대로 이름을 날렸다.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이 극소수 실권자간의 비밀화합으로 이뤄졌고, 정치인들이 밀실 대화 장소로 찾던 곳이 바로 삼청각이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으되 안에 들어서면 서울임을 망각케 할 정도로 산 속에 푹 파 뭍인 삼청각은 정치인들의 비밀 아지트였던 셈이다.

술과 여자, 그리고 북악산 중턱이라는 아늑함이 삼박자를 이뤄 매일 밤 질펀한 향연이 벌어졌고, 그 속에서 국가 중대사가 결정됐다.

대금연주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죽향 이생강(69)씨도 한때 이곳에서 연주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삼청각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했다. 90년대 강남의 룸 살롱이 성업을 이루면서 ‘밀실정치’의 무대도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삼청각은 마침내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의 기생관광지로 전락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96년 삼청각은 결혼식장 겸 중국 음식점 ‘예향’으로 변신, 본격적인 재기에 나섰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영 악화로 고전하다, 2001년 3월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삼청각 전통문화시설 조성사업 보고회를 시작으로 그 해 여름 리모델링 공사를 한 후 세종문화회관(공연사업)과 프라자호텔(식음료사업)이 공동으로 위탁 운영하게 된다.

2005년 8월에는 이원화 돼 있던 사업을 파라다이스호텔이 단독 위탁 받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정민승기자


입력시간 : 2005-09-13 19:39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