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박수근 '위작 논란' 새 국면으로

검찰 "위작"…위작범 수사가 관건
이중섭·박수근 '위작 논란' 새 국면으로

검찰(서울지검 형사7부)은 7일 중간 수사발표에서 국내 최대의 미술품 위작시비로 논란이 돼온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대해 “위작으로 의심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작품의 진위 여부를 놓고 유족들과 한국고서연구회 김용수(68) 명예회장,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감정협회) 간 공방의 대상이 됐던 그림 58점(이중섭 39점, 박수근 58점)에 대해 전문가들의 감정결과를 토대로 그러한 결론을 내린 것.

검찰은 수사발표를 통해 16명의 안목감정위원, 서울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각각 안목감정, 종이 제작연대 측정, 필적감정을 의뢰한 결과 58점 모두 위작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위작범은 밝혀내지 못했으며 김용수씨가 위작 제작에 관여한 증거들도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 수사발표에 대해 박수근 화백의 장남 성남씨(58)와 감정협회는 “사필귀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반면 이태성씨와 김용수씨는 검찰 수사결과에 대해 “감정위원이 협회측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으며, 방사성 탄소 시험에도 문제가 있다”며 불복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편 감정협회 엄중구 대표는 “한국미술품진위 문제는 미술 전문가들의 몫이지만, 위작자를 잡는 것은 검찰의 몫”이라며 위작자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이 미술감정에서 비롯된 만큼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을 구성하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 줄 것을 요구했다.

이중섭 차남 태성씨

"외국기관에 감정 의뢰할것"

이태성씨와는 검찰 수사 발표 후 이틀이 지나 통화가 됐다. 그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마츠카와를 왜 검찰이 아닌 감정협회 감정위원 최모씨가 심문을 합니까”. 태성씨는 첫마디에 검찰 수사의 불공정성부터 따졌다. 아직 충격과 분이 덜 풀린 음성이었다.

태성씨는 일본 화상(畵商)인 마츠카와가 2000년부터 최근까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화백의 은지화 3점을 국내 화랑에 소개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에서는 마츠카와와 태성씨의 지인이자 ‘이중섭 영화’제작자인 마크 핫토리씨가 김씨 소장의 그림을 태성씨에게 전달한 인물로 묘사됐다.

이 부분은 검찰이 수사 발표에서 ‘김씨 소장품 일부가 이씨에게 유입된 흔적이 있다’고 한 대목이어서 태성씨는 크게 분개했다.

“방송에서 나한테 전달됐다고 최씨가 주장한 김용수씨 그림은 SBS가 어머니와 인터뷰할 때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도움을 준 마크 핫토리에게 김용수씨가 감사의 표시로 준 것”이라면서 “4월에 서울(한백문화재단) 토론회서 소장하고 있던 30여 점을 전시할 때 핫토리씨가 그 그림을 섞어 넣어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씨가 김용수-이태성의 연계 증거라며 내보인 프린터물은 핫토리가 김씨에게서 받은 그림의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마츠카와를 통해 인사동 N화랑에 전달한 것이 감정협회까지 흘러들어가 공격의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것이다.

태성씨는 방송에서 인터뷰 중 당황하면서 카메라를 치우라는 장면에 대해 묻자 “SBS가 교묘하게 편집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SBS 제작팀의 취지에 동의해 첫날 취재에 응했으나 다음날 태도를 바꿔 “사기극을 꾸민 것이 아니냐”며 “순수히 고백하면 좋은 쪽으로 취재해 주겠다”고 취재 아닌 취조를 해 인터뷰를 거부했는데 이를 악의적으로 편집했다는 설명이다.

태성씨는 “검찰은 어떤 작품을 샘플로 감정해 위작으로 의심된다는 발표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며 “발표문은 박수근 작품으로 이중섭 작품을 위작으로 추정하고 누구(김용수 또는 이태성)의 소장품이 문제가 됐는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향후계획을묻民쩌淄쓴징갼팁?중간수사 발표니까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면서 “일본에도 감정을 의뢰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측에 16인의안목감정위원명단과 과학감정 결과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부득이한 경우는 한국에서 미공개 이중섭 작품을 전부 공개하고 학계, 미술계 인사들의 공정한 평가를 받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수근 장남 성남씨

"미술계 제자리 잡는 계기 돼야"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이중섭 박수근을 지키자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문화유산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라고 본다.”

호주에서 나와 한 달째 서울에 머물고 있는 박성남(58)씨는 13일 “검찰발표를 전해 듣고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이중섭 화백 유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이번 기회에 미술계가 제 자리를 잡고 문화 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며 소회를 나타냈다.

박씨는 1986년 호주로 이민했으나 지난 여름 한국고서협회 김용수 명예회장을 박수근 작품을 위조, 유포한 혐의로 고소하고 다시 김씨로부터 무고혐의로 고소 당하면서 검찰조사를 위해 수차례 한국과 호주를 오가며 생활해왔다.

박씨는 이중섭ㆍ박수근은 한국 근대미술의 양대 산맥으로 위작논란에서 두 분이 무너지면 근대미술이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됐는데 다행히 진위가 가려져 현대미술, 나아가 문화가 활력을 갖게 됐다고 전망했다.

박씨는 김용수씨가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그림을 보지는 못했지만 작품수만으로도 ‘가짜’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그린 수채화도 빨아서 다시 그림을 그릴 정도로 종이 한장도 아끼시던 분이다.

그런 분이 창신동에서 이사할 때 그림을 버리고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김용수씨가 소장하고 있는 박수근 그림이 대부분 드로잉이나 에스키스 등 1960년대에 돈이 안되는 것이더라도 예술 혼이 담긴 그림을 박 화백이 소홀히 다룰 리 없다는 설명이다.

“아버지는 밑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다시 지우는 형태를 반복해 완성된 밑그림 한 점씩만 보관해왔다”면서 “김용수씨가 소장하는 것만큼 드로잉이나 에스키스가 많을 리 없다”고 말했다. 판화도 15점 정도에 불과해 김씨가 갖고 있는 700여 점 판화는 가짜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박씨는 “유족이기 때문에 작품을 가장 잘 본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정보를 자료화하고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에 제공해 평가에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11월5일 박수근 기념미술관이 있는 강원도 양구에서의 ‘예술 3대전’을 준비하느라 무척 바빠 보였다. 미술을 전공한 누님(박인숙 화백), 박씨, 박씨 아들(진홍) 3인이 미술전을 갖는 것.

박씨는 인터뷰 말미에 이번 사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충격적인 말을 남겨 검찰 수사 발표에 의구심을 일게 했다. “70년대에 아버지 작품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M화랑의 문모 화가(작고)가 사후 사인을 했다. (박수근)드로잉 중 그런 사인이 있는 작품이 적지 않다.”

박씨의 말대로라면 검찰은 김용수씨가 소장한 박수근 그림을 감정(특히 서체)하는데 어떤 작품을 표준모델로 삼았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 만일 사후 사인이 들어간 작품을 표준 모델로 삼았다면 수사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용수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

"측정방법 오류·불공정성 간과"

“감정물 58점 중 단지 3점, 그것도 종이 연대가 이중섭 당대인 두 점은 제외하고 한 점만 문제삼아 2,000여 점에 달하는 그림을 전부 위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김용수씨는 7일 검찰의 감정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수사결과에 불복, 항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내가 대학(서울대)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아들도 화학교수로 있지만 종이 제작연대를 측정한 탄소연대 측정방법은 오차 범위가 매우 큰 측정방법으로 이 방법으로 8년 정도의 시간적 차이를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작품은 1954년 작인데 종이는 1962년(또는 1958년) 산(産)’이라는 검찰의 발표에 대한 반박이다.

김씨는 탄소 측정방법으로 흔히 ICP MASS(inductively coupled plasma)가 사용된다면서 이 방식은 극미량의 오차에도 수십년의 오차가 생겨 근현대 미술품의 감정에는 사용될 수 없는 심각한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나머지 두 점의 탄소연대 측정결과는 발표하지도 않弩?뿐더러 발표된 한 점의 감정결과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에 대한 것일 뿐 이중섭 화백의 그림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김씨 소장의)이중섭 그림 중에 유사한 그림이 많고 연필로 눌러쓴 흔적을 ‘연필로 모사한 후 채색한 증거’라는 주장에 대해 김씨는 “이중섭 화백의 경우 기존 작품을 일부 발췌하거나 똑 같이 그린 그림은 그의 작품이나 도록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것들이며, 눌러 그리거나 쓴 자국 역시 이중섭 화백의 독특한 기법 중 하나”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안목감정의 불공정성도 지적했다. 안목감정에 관여한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감정협회 감정위원 출신인데다 16인의 안목감정위원 중 상당수가 감정협회와 직간접의 이해관계가 있는 인물로 구성됐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안목감정위원 중 민중미술가 Y씨, 추상화가 K씨는 이중섭 작품을 위작으로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SBS의 방송에 대해서도 강력히 성토했다. 그 중에 청계천의 책방에서 오래된 책을 구해서 이중섭 그림을 위작하는 과정을 시연하는 장면과 관련, “이중섭 그림이 실린 책은 일본에서조차 찾기 힘든 희귀본이고, 시전지나 해방전 발행된 앤더슨 엽서 등은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인데 그런 식으로 방영하느냐”며 분개했다.

김씨는 이중섭ㆍ박수근 그림 2,700여 점에 대한 항간의 오해(수천억 내지 1조원이 된다는)에 대해 이중섭 그림 900여 점 중 드로잉이나 습작화 수준이 500 여 점 되고, 박수근 그림 1,700여 점은 드로잉, 에스키스(습작화), 판화로 80% 이상이 두 화가의 미술사적 자료로 의미 있고 소위 ‘돈이 되는’ 그림은 20% 미만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김씨와 연계된 위작범을 수사한다는 방침에 대해 그는 “다른 화가의 위작범은 몰라도 내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은 진품이기 때문에 위작범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향후 계획과 관련해서는 “우선 진실을 밝히는 게 급선무로 국외 감정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진실이 밝혀지면 그림 대부분을 국가나 사회의 기념관에 기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중섭ㆍ박수근 미술품 위작논란 일지

▦3월2일=이태성(이중섭 차남)씨, 이중섭 50주기기념사업 추진차 미공개작 8점 서울옥션 통해 공개.

▦3월16일=서울옥션 경매서 ‘아이들’(3억1,000만원) 등 4점 낙찰.

▦3월22일=이태성씨 내한 해서 ‘경매 출품작 유족이 50년간 소장’ 주장.

▦3월30일=한국미술품감정협회, ‘물고기와 아이’ 등 경매 통해 팔린 작품 4점 위작 주장.

▦4월7일=이태성씨, 도쿄에서 ‘물고기와 아이’ 진품 주장.

▦4월12일=감정협회 ‘이중섭 작품 진위에 관한 공개 세미나’서 위작주장 반복.

▦4월22일=감정협회, 한국고서연구회 김용수 명예회장이 이씨에게 가짜 그림 건넸다는 의혹 제기, 검찰수사 촉구.

▦4월25일=김용수씨, 이중섭 그림 650점 소장 주장하며 50여 점 공개, 박수근 그림 200여 점도 소장 주장. 이태성씨, 감정협회를 명예훼손 고소.

▦5월4일=박수근 아들 박성남씨, 김용수씨를 명예훼손 혐의 고소.

▦5월11일=이중섭 유족, 도쿄에서 이중섭 그림 150점 소장 주장.

▦5월13일= 김용수씨, 박성남씨와 감정협회를 상대로 무고, 명예훼손 등으로 맞고소.

▦6월9일=서울중앙지검 위작논란 이중섭ㆍ박수근 그림 감정의뢰.

▦10월7일=검찰, 전문기관 감정결과 토대로 58점 위작 발표.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5-10-18 18:3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