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후 "감동있지만 현실과 너무 달라"

룸살롱을 비롯한 유흥업소에서 조심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가능한 한 명함을 건네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마담’이나 ‘상무’ 등의 명찰을 단 업소 간부들이 명함을 요구하거나 접대여성이 간곡히 부탁해도 가능한 한 명함을 건네지 않아야 한다.

괜한 스팸 문자가 쇄도할 가능성이 농후한데다 행여나 해당 업소나 접대여성이 좋지 않은 사건에 휘말릴 경우 자신의 이름이 ‘고객 리스트’에 올라 있어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데 피하기 어렵게 다가오는 경우도 다반사다. “오빠 나중에 연락하면 맛있는 거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라”하며 연락처를 요구하는 것.

이런 경우 손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그것도 공짜로 2차가 가능한 거 아닌지 착각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자신에게 반해서 이러는 게 아닐까 싶은 자만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명함을 건넨 뒤 실제 업소 밖에서의 만남이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건네진 명함 역시 대부분 담당 웨이터에게 전해져 스팸문자를 보내는 고객 리스트에 이름만 오를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부분의 룸살롱에서는 접대 여성과 손님이 업소 밖에서 남몰래 만나는 행위는 업소 차원에서 금지시키고 있다.

영화 (너는 내 운명)

괜한 2차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고 업소 입장에서는 공연히 2차를 연계해줬다는 오해를 살 가능성도 높기 때문.

그런데 최근 북창동의 한 룸살롱을 찾은 필자는 접대여성에게 명함을 건네며 나중에 영화나 보러 가자고 끈질기게 부탁해 ‘OK’ 사인을 받아냈다.

필자의 뛰어난 능력 때문일까. 물론 아니다. 사실 이는 ‘상무’ 명함을 단 담당 웨이터를 통해 이뤄졌다.

그 이유는 함께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한차례 그 영화를 본 필자는 반드시 유흥업계에서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과 함께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바 있다.

과연 영화 속 주인공 ‘은하’(전도연 분)와 비슷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웨이터를 어렵게 설득해 해당 접대 여성과 영화를 본 뒤 함께 차를 마시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나눈 뒤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한 후 어렵게 ‘OK' 사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은 가을 극장가를 눈물의 바다로 만들고 있는 좋은 영화다. 변변치 않은 시골 총각의 순애보는 그 어떤 전설 속 백마 탄 왕자의 그것을 뛰어 넘는다. 게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더더욱 가슴 찡한 감동을 받으며 극장 문을 나서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이 영화를 하필이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과 함께 보고자 했던 이유는 영화 속 전도연이 맡은 ‘은하’라는 역할의 여성이 다름 아닌 윤락여성이기 때문이다.

과연 현직 윤락여성들의 눈으로 바라본 영화 <너는 내 운명>과 그 주인공 ‘은하’는 어떤 느낌일까.

현실과 동떨어진 접대여성…그래도 감동

다행히 필자와 극장에 동행한 여성은 나름대로 ‘경력이 화려한’ 여성으로 가명은 ‘민수’를 사용하고 있었다. 룸살롱의 경우 남성적인 이름을 쓸수록 손님이 많이 붙는다는 이유로 고참일수록 남성적인 가명을 이용하게 된다. ‘민수’ 역시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담당 웨이터가 업소 상무로 고위직이라 취재 목적에 부합하는 ‘경험’을 가진 여성을 소개해준 것이다.

집창촌 경험은 없지만 처음 이쪽 일을 시작한 곳이 다방이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됐다. 어린 시절 가출해서 티켓다방에서 이쪽 일을 시작해 지방 룸살롱에서 상경해 현재는 북창동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저렇게 좋은 다방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낙향하겠다”는 게 영화 관람 이후 그가 처음으로 언급한 부분이었다.

친절한 다방 주인과 우애 넘치는 다방 레지들의 관계 등 요즘 현실에서는 자주 접하기 힘든 풍경이라고.

“영화 속 다방은 티켓다방이 아닌 일반적인 다방으로 보인다”는 ‘민수’양은 “티켓다방의 경우 출장 집창촌이나 마찬가지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아마 저렇게 오빠들이 없이 언니만 있는 티켓다방도 없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여기서 ‘오빠’ ‘언니’란 다방 종업원들이 업주를 부를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

“전도연처럼 연기력 좋고 예쁜 배우가 여자 주인공이라 더욱 좋았다. 누구라도 빠져버릴 듯한 진실한 사랑을 보여준 황정민의 연기도 좋았다.

다만 모텔방에서 성관계를 거부하다 얻어맞는 장면은 너무했다. 그 장면에서 전도연은 분명 티켓을 끊어 나간 다방 종업원인데 마치 순진한 여대생 같은 느낌이더라. 전체적으로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지방에서 티켓다방은 일종의 윤락업소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과 같이 보건소에서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받아 보건증을 발급받아야 된다.

영화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건강검진 결과가 왜 그렇게 늦게 나왔는가 하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전도연과 황정민이 처음 만난 날은 전도연이 보건소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 다시 말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통보된 것은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며 사랑을 키워서 결혼식까지 올린 뒤다.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건강검진을 통해 성병 확산을 막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통상적으로 한 두주면 결과가 나온다. 그래야 보건증을 갖고 영업을 할 수 있다”는 ‘민수’ 양은 “영화 속 ‘은하’처럼 일을 그만뒀을 지라도 결과가 나와 어떤 병에 걸려있으면 끝까지 찾아가 괴롭힌다고 들었다”고 얘기한다.

‘괴롭힌다’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그의 생각이고, 실제는 영화처럼 이를 본인에게 직접 통보해준다는 의미다.

영화에서는 실제 상황과 달리 그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에 대해 제작진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라며 “실제 사건에서는 두 사람이 소개를 통해 만나나 영화에서는 좀 더 순애보적인 사랑을 만들기 위해 다방 레지와 농촌 총각의 우연한 만남으로 그려냈고 이 과정을 애틋하게 그려내기 위해 결과 통보를 뒤로 미뤘다”고 얘기한다.

“전체적으로 현실적이지 못한 영화인 것 같다”는 게 ‘민수’양의 평가였다. 그 이유를 묻자 너무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그린 영화인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화 평론가 뺨치는 멋진 영화 평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집창촌 떠난 여성, 음성적 성매매로 생계유지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는 법이다. 영화에서 보면 ‘은하’(전도연 분)가 결혼생활을 뿌리치고 가출해 집창촌으로 향하는 데에는 영화가 그려내지 못한 또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남자의 생각에는 자신을 사랑했고 그게 미안해 떠난 거라 믿겠지만 여자에게는 또 다른 사연이 있었을 수도 있다. 주위에서도 잘 돼 시집갔다가 다시 이 바닥으로 돌아온 언니들을 여럿 봤다.

우리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발을 들여놓은 사연이 있고 다시 발을 빼지 못하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사랑으로만 그리는 게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인 것 같다.”

게다가 성매매 특별법으로 인해 달라진 현실에서 보면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은 누가 ‘보건증’까지 만들어가며 이런 일을 합니까”라는 그의 질문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방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가 있는 데 요즘에는 그 지역 보도방 같은 데 소속되어 일하고 있다. 노래방 같은 데 불려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데 티켓다방에서 하는 일이나 비슷한 거 같더라. 다방같이 정해진 업소에서 일하면 건강검진도 받고 보건증도 받고 그러지만 그런 데서 그런 거 해주겠나.”

이건 ‘민수’ 양의 말이 정확해 보인다. 요즘 서울의 환경도 비슷하다. 남성휴게실, 불법 안마시술소 등등 다양한 현장에서 음성적인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지만 보건당국의 손길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그나마 당국의 손길이 미치던 영역인 집창촌은 서서히 비어가고 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져 그는 다시 북창동으로 향했다. 여전히 최고의 관심사는 남자 주인공 ‘황정민’에 대한 예찬이었다. 영화지만 너무 멋진 남자라는 얘기를 연신 거듭하며.

단 한 가지 최소한 현실에서는 그런 남자가 없다는 상식 정도는 알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했다. 그래서 더 더욱 영화의 실제 주인공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몰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재진 자유기고가 dicalazzi@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