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이후 한국 성문화의 한축이었던 여관골목, 재개발로 철거

한국의 밤문화에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생겨나게 됐다. 아니 추억 보다는 전설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한국 성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 가운데 하나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에 재개발이라는 경제적인 논리에 따른 ‘철거’라는 딱지가 붙은 것.

‘언덕위의 하얀 집’ S장, 그리고 S장과 함께 회현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던 J장을 중심으로 한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의 수많은 여관들이 곧 철거될 예정이다.

일제시대의 대표적인 매음굴이었던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은 집창촌에서 여관촌으로 변모했지만 성매매가 이뤄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회현동은 저렴한 가격과 파격적인 서비스로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왔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이 철거돼 ‘추억속의 장소’가 될 예정이다.

지난 10월19일 오후 2시경 필자는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을 찾았다. 큰길에서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 방향으로 접어들자 곧 철거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건물을 허물지는 않았으나 건물마다 빨간색 페인트로 ‘철거’라 적혀 있었다. 아직 회현동 일대 전체가 철거 지역이 된 것은 아니고 우선 철거 대상으로 지정된 몇 블록에서만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다행히 S장을 중심으로 한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 중심가는 아직 철거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S장과 함께 회현동의 양대 산맥으로 분류되던 J장의 경우 철거 대상 지역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래지 않아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의 양대 산맥 가운데 하나가 사라지게 된다는 얘기다.

우선 철거 지역의 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이 길은 J장으로 통하는 길. 하지만 골목 안은 좀비가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 속 ‘공포도시’ 같았다. 워낙 오래된 골목이라 평소에도 어두침침했던 골목인데 지금은 여기저기에 ‘철거’라는 빨간 페인트 글씨가 가득했다.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소위 호객행위를 하기 위해 나와 있는 이들과 여관을 이용하는 이들로 인해 북적거렸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회현동은 이렇게 변화한 것이다.

철거 지역 안에 있는 모든 건물에는 ‘철거’라는 흉물스러운 글씨가 쓰여 있고 대부분 비어있는 상태였다. 대부분의 집기들을 다 빼내 이사 간 것.

그런데 J장의 경우 아직도 그 안에 사람이 있는 듯 현관 안으로 불빛이 엿보였다. 그렇다면 철거가 이뤄지기 직전 상황에서도 영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일까.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종업원은 “영업 안 합니다”라는 말만 들려줄 뿐이었다. 필자의 손에 들려있는 디지털카메라로 인해 취재를 목적으로 왔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인지, 실제 영업을 안 하고 있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았으나 더 이상의 취재는 불가능했다.

썰렁한 골목풍경

반면 철거 지역 안에 있는 또 다른 여관은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디지털카메라를 가방 안에 넣은 상황에서 여관으로 들어갔다.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의 경우 낮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편이라 대낮에 들어간다 해도 어색할 게 없다.

“아직도 영업을 계속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종업원은 심드렁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방에 들어가서 씻고 계시면 아가씨가 들어갈 것”이라는 그의 대답에 취재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는 “이제 영업하는 것도 며칠 안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괴롭히려 하느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발길을 돌려 S장이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S장에 가려면 오르막 골목길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S장에 ‘언덕위의 하얀 집’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것이다.

아직 S장 일대는 철거 지역이 아니라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철거지역 지정 여부를 묻자 S장 종업원은 “여기는 철거지역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S장 인근 골목에 위치한 여관들 대부분 철거와는 무관하게 영업 중이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철거가 시작되면서 손님이 크게 줄어들었다. 동네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오가는 사람도 줄어 장사가 너무 안 된다. 나도 어딘가로 가게를 옮겨야 하는 데 걱정이다.”

주변 취재를 위해 들른 한 구멍가게 아저씨의 얘기다. 그리고 바로 이 구멍가게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이 구멍가게에서 주인아저씨와 함께 있던 또 다른 50대 남성은 인근에서 여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었다. 그는 “곧 제2의 회현동이 생겨날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 동네 여관 대부분이 회현동을 떠나야 하는 데 그냥 문을 닫고 놀 수 는 없는 일 아니냐. 그래서 대부분 자리를 옮겨서 여관을 계속 하려 하는 데 옮겨도 뭉쳐서 옮겨야 지금의 유명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상당수다. 그래서 가장 적당한 장소가 어디인지 여부를 두고 논의중이다.”

그의 얘기는 현재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현재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회현동 여관의 평균 월매출은 3억원 가량이다.

이 가운데 업주가 가져가는 수익금만 1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이라는 브랜드 네임이다.

이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3의 장소로 집단 이주해야 한다. 뿔뿔이 흩어질 경우 아무리 지금보다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할 지라도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의 브랜드 네임이 연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여관이 새로운 건물을 올릴만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지만 특정 지역에 모여 동시에 건물을 올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

그렇다고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차선책은 현재 형성되어 있는 모텔촌 가운데 한곳으로 동시에 이주하는 것인데 해당 지역 업주들이 동시에 모텔을 매매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이런 제반 사안으로 인해 ‘제2의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 후보지 선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회현동 서비스는 계속 된다

다만 “분명히 어딘가로 옮기긴 옮긴다. 후보지도 몇 군데 된다”는 그의 얘기를 감안할 때 현재 어떤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움직임은 회현동에서 일하고 있는 윤락여성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에서 근무중인 윤락여성을 인터뷰한 남성포털사이트 남아존 측 취재진은 “인터뷰한 여성은 여관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 따라서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라며 “이는 몇몇 윤락여성에 제한된 이야기가 아니고 근무중인 여성 대부분이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얘기한다.

업주 입장에서는 제3의 장소에서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의 브랜드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금과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근무중인 여성의 활약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을 즐겨 애용해온 이들 입장에서는 장소만 바뀔 뿐, 회현동 서비스는 계속된다는 데 최소한의 위안을 찾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이어온 회현동의 역사, 소설가 이상의 글에서 만날 수 있던 회현동 매음굴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된 셈이다.


조재진 자유기고가 dicalazzi@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