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이 너무 작아 안타깝다"

앉을 틈도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체온과 혈압을 재고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고 주사를 놓는다. 구비구비 산길을 도는 왕복 4시간을 포함해 매일 10시간의 일과를 마치면 몸은 녹초다. 그래도 ‘의료봉사의 꽃’인 간호사들은 졸린 눈을 비벼가며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한국일보와 고려대 의료원이 함께 꾸린 ‘파키스탄 재해지역 의료봉사단(단장 김승주ㆍ고대 안산병원 외과 교수)’은 지난달 25일부터 이 달 4일까지 11박12일 동안 지진피해가 극심한 파키스탄 북부 발라코트와 아유브종합병원이 있는 아보타바드에 머물면서 3,500여명에게 사랑의 인술(仁術)을 선물했다. 고려대 의료원이 세운 ‘아름다운 병원 1ㆍ2호’는 현지 주민들의 단골병원으로 자리잡았다.

누구보다 더 대지진 피해지역 환자들과 가까이 있었던 고려대 의료원 간호사 6인의 진료일기를 소개한다.

내가 정말 필요한 곳에 왔구나

#10월28일-발라코트(이효경ㆍ고대 안암병원 82병동)

지진 때문에 반 친구 20명이 모두 죽었다고 했다. 녀석은 돌 무더기에서 혼자 살아 남았다. 꼬마는 왼손을 구부리지 못한다. 상처는 낫겠지만 그날의 악몽은 계속 떠오르겠지.

꼬마가 살아가야 할 날들이 까마득하다. 말이 통했다면 위로라도 실컷 해줄 수 있으련만. 주사만 놓아줬다. 아쉽고 미안하다.

할머니 한 분은 손가락 뼈가 드러난 채 찾아왔다. 상처가 아물려면 뼈보다 살이 더 나와야 하는데 덮지를 못했다. 뼈를 다룰 수 있는 기계도 없다.

급한 대로 장현(고대 안암병원 성형외과 전공의) 선생님이 가위로 뼈를 잘라낸 뒤 봉합했다. 우리가 없었다면 평생 낫지 않을 상처였을 텐데. 할머니에게 새 삶을 준 듯 기뻤다. 내가 정말 필요한 곳에 왔구나.

사진 왼쪽부터 이효경, 김은주, 김혜영, 설근혜, 김진연, 성명숙 간호사





한 여성(22)은 5년 전부터 하혈을 한다고 했다.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월경이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5년 동안 그 여성은 매달 얼마나 놀랐을까. 환자 치료도 중요하지만 보건교육도 함께 했으면 싶다.

이곳 사람들은 ‘고맙다(슈끄리아)’는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돕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힘이 빠진다. 하지만 차츰 악수를 청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활짝 웃고 떠나는 그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새로운 탄생이 있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건물이 모두 무너졌는데 이곳 사람들은 순박하기만 하다. 그 평화가 놀랍다. 파키스탄을 위해 기도해야지. 졸리다. ; 하지만 화이팅~.

초롱초롱한 눈망울 어찌 잊을까

#10월29일-발라코트(김은주ㆍ고대 안산병원 71병동)

눈망울은 수정처럼 맑다. 하지만 가녀린 몸은 잎새에 이는 바람처럼 파르르 떨렸다. 고통을 호소할 힘도 없다. 아기에겐 모든 게 버겁다. 뼈가 드러난 이마, 피부가 모두 벗겨져 빨갛게 곪은 왼손. 오히려 놀라는 건 아기가 아니라 간호사인 나였다.

이름은 자완, 생후 6개월 된 갓난아기다. 그사이 아기는 엄마와 집을 잃었다. 8일 아침 아기의 집은 무너졌다. 아빠는 간신히 탈출했지만 엄마와 자완은 함께 묻혔다. 자완의 고향 발라코트에선 주택 90%가 무너지고 5만여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생후 6개월된 아기 자완. 맑은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기는 30시간 만에 무덤으로 변한 집 더미에서 살아왔다. 우연히 무너진 집에 들른 삼촌은 지하에서 스며 나오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식구들이 총동원돼 손이 찢어지도록 돌을 치우고 땅을 팠다. 엄마는 자완을 꼭 안고 숨져 있었다. 대지진도 모성(母性)만은 짓밟지 못했다.

하지만 상처는 남았다. 고열인데다 먹으면 토하고 설사까지 한다. 피부도 모두 벗겨졌다. 그렇게 3주나 방치됐다고 한다. 처녀인 마리암(25) 이모의 품에 안겨 쉴새 없이 ‘갸르릉’ 눈물만 흘린다. 얼마나 아플까. 성인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일 텐데, 아기는 소리지를 힘도 없다.

이마의 상처는 꿰매줬다. 알록달록 예쁜 스웨터랑 분유도 선물했다. 나중에 자라면 우리를 기억할까. 아니 자완의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내가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들을 남겨두고 어떻게 떠나나

#10월30일-아보타바드(김혜영ㆍ고대 구로병원 수술실)

(아유브종합병원의) 수술실은 거의 밑바닥 수준이었다. 악취가 진동하고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1,500병상이 넘는 거대병원의 시설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병원 온장고처럼 생긴 곳에 온도를 최고로 끌어올려 의료 기구를 넣어두는 것이 소독의 전부였다. 이래서 외과 수술이 가능할까.

노경선(고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전임의) 선생님과 수술방을 하나 차린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야전 수술실을 만들었다. 주사실의 한쪽 침대를 수술대로 삼고 박스를 쌓아올려 기계상을 만들었다. 천막 안이라 어두컴컴했다. 펜라이트로 무영등을 대신했다.

그렇게 한 여성의 가슴 피부이식 수술을 했다. 허벅지 위의 살(서혜부)을 떼서 이식을 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수술은 잘됐다. 뿌듯하다. 하지만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걱정이다.

병원 응급실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여기저기 부러져서 온 사람들, 찢어져서 온 사람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급한 처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였는데. 시간이 너무 짧다. 눈물이 났다. 이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게 미안하다.

한쪽 다리를 잃은 오스마네리 군이 선물받은 크러치를 짚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약을 조제하고 있는 강호영 약사 (왼쪽부터)














짧은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10월31일-발라코트(설근혜ㆍ고대 안암병원 성형외과)

누르흐만씨는 생후 2개월짜리 아기(압둘라)를 업고 3시간(실제론 5시간)이나 호랑이와 곰 등 맹수가 깃든 험난한 산길을 내려왔다.

아기는 지진 때문에 엄마를 잃었다. 아빠 홀로 아기를 키워야 한다. 몸짓과 간단한 기호로 분유 타는 법을 알려줬다. 분유를 2통밖에 주지 못했다. 분유 1통(한화 8,000원)을 사기 위해선 보름을 일해야 한다고 했다.

분유가 떨어지면 어쩌지. 왕복 10시간이나 걸려 우리를 찾아왔는데 우리가 떠난 걸 발견하면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가슴이 먹먹하다. 보채는 아기보다 눈물이 고인 아빠의 눈동자가 더 슬프다.

아이들은 사탕을 받으면 활짝 웃는다. 귀국하면 그 웃음이 눈에 밟힐 것 같다.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오나 하염없이 기다린다. 잠깐 점심을 먹는 사이에도 땡볕에 아기를 안고 기다린다. 보고있노라면 속상하다.

지진 때문에 모든 병원이 무너졌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진료해줘야지.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도와주고 싶지만 내 힘은 너무 작다. 할 수만 있다면 더 오래 남고 싶다. 겨울이 오면 교통도 막힌다고 하는데 큰 일이다.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11월1일-발라코트(김진연ㆍ고대 안암병원 중환자실)

성명숙 간호사가 한 아기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다.

중년여성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다. 이곳에선 혼자 사는 여자를 괄시한다고 했다.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다고 했다. 구호물품도 탈 수가 없다고 했다. 증상은 불면증과 소화불량. 처방해줄 약이 없었다. 함께 눈물 흘려주고 토닥거려줬다. 무기력하다.

기쁜 일도 있다. 꼬마 오스마네리(8)에게 은색 다리(스테인리스 크러치)를 선물했다. 녀석은 그날(8일) 아침 무서운 소리가 나더니 학교가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했다.

동생(6)을 비롯해 300여명이 학교 밑에 묻혔다. 오스마네리는 다행히 구조됐지만 3일 동안 치료를 받지 못해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아이의 눈에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하지만 녀석은 크러치를 받자마자 이곳 저곳 걸으면서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발라코트엔 거리마다 형형색색의 얇은 옷들이 널려 있다. 지진 피해 주민들을 위해 도시에서 보내온 옷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면한다.

추위와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 무늬만 화려한 얇은 옷가지는 쓰레기일 뿐이다. 진짜 도움이란 어떤 것일까 고민했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더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종일 피곤에 절어 있지만 정신만은 풍요롭다. 그들에게 감사하다. ‘옳다고 믿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사랑 앞에 용감 하라.’

아쉬운 게 많다. 외상환자도 많지만 정신질환자도 많다. 다 대지진의 충격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피땀 흘린 전 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불면증과 식욕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과나 비뇨기과 등도 왔어야 하는데. 지진피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우린 무관심하다. 돌아가면 잊지 말라고 얘기해줘야지.

母子에게 전해줄 분유 그냥 놔두고…

#11월2일-발라코트(성명숙ㆍ고대 구로병원 주사실)

드디어 끝났다. 오늘 발라코트는 가장 힘들고 바쁜 날이었다. 300명이 넘는 환자가 다녀갔다. 마지막 기운을 짜내 진료에 임했다. 모두 정말 열심이었다.

이제 더 이상 우리가 그들에게 무얼 줄 수 없다는 아쉬움을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열중했다. 감동이었다. 마치 잘 돌아가는 오케스트라처럼 아름다운 날이었다.

돌이켜보면 힘든 나날이었다. 발라코트로 오는 길은 험하고 험했다. 매일 차멀미를 했다. 차를 멈추고 토한 뒤 동료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화장실도 엉망이었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처지가 우릴 아프게 했다. 어떤 환자는 단순히 깨끗한 물로 씻기만 해도 될 상처를 방치해 곪아터졌다.

누구보다 한 모자(母子)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엄마는 집을 잃고 20일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젖이 안 나와 아기도 굶어야 했다.

모든걸 체념한 듯한 모자의 눈이 더 슬펐다. 되는대로 ‘수액 페디라’를 갖가지 방법으로 먹여보고 건네줬다. 다음날 꼭 오라고 했건만 모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모자에게 줄 분유도 사 놓았는데. 이제 다시 볼 날이 없겠지.

걸었다. 먼지 가득한 길을, 아마도 발라코트의 중심지였을 그 길을. 숙연한 마음으로 걸었다. 진료하느라 눈 여겨 보지 못한 피해상황을 살펴봤다. 우울한 묘지 같은 곳이다. 참혹했다. 우리가 떠나면 누가 이들을 돌볼까. 한참이나 그대로 서 있었다.

여자 약사 3명이 수천봉지의 약 조제

이번 의료봉사엔 여성 약사 3명이 함께 해 콱 막힌 텐트 안에서 묵묵히 수천 봉지의 약을 조제했다. 강호영(고대 안산병원), 진수미(고대 구로병원), 강영미(고대 안암병원) 약사 등은 “수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먹일 가루약을 만드는데 애를 먹었고 환자들이 라마단 기간이라 점심 때 약을 안 먹으려고 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발라코트ㆍ아보타바드(파키스탄)=고찬유기자 jutd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