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시술로 불임의 고통 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애 낳기를 꺼리는 바람에 출산율이 떨어졌다고 법석을 떨고 있지만 우리 사회 한 구석에는 아이를 갖고 싶어도 임신이 되지 않아 가슴에 한(恨)을 품고 살아가는 불임부부가 64만쌍이나 있다.

최근 정부가 앞으로는 시험관아기 시술비를 일부 떠맡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저출산 종합대책을 들고 나왔지만 큰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험관아기가 태어난 때는 1985년이다. 정확하게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험관아기로 더 잘 알려진 체외수정시술(IVF-ET)의 원조는 1978년 세계 최초로 임신에 성공한 영국이지만, 그것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곳은 바로 우리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시험관아기 시술 건수는 연 평균 1만5,000건 안팎인데, 임신에 성공하는 비율이 선진국의 25%선을 훨씬 웃도는 30~40%에 달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이 높다.

뿐만 아니라 이 분야에서 착실하게 다진 기술과 경험을 줄기세포 연구에 응용한 결과 최근 줄기세포 연구의 중심국가로 입지를 굳히는 또 다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불임치료 수준 넘어선 시험관 아기 기술

시험관아기 분야 권위자 중 한 사람인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조정현(53) 교수에 따르면 국내 시험관아기 기술은 이미 단순 불임치료의 수준을 넘어섰다.

“수정이 갓 이뤄진 시기, 즉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핵이 하나로 합쳐지기 이전의 전핵 상태에서 염색체를 끄집어내 유전적 결함 여부를 판별하는 수정란 유전학 검사(PGD)가 최근 활발하게 실시되고 있다”는 그는 “이에따라 각종 유전질환의 대물림을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설명한다.

불임치료의 영역도 넓어졌다.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막(과립막)이 너무 두꺼워 정자가 잘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 이를 녹이는 방법, 정자가 없더라도 남성 고환에서 정세포를 추출하여 성숙시키는 시술도 나와있다는 것이다.

시험관아기 시술이란 어떻게 보면 좋은 난자를 얻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다. 여성에게 아픔이 뒤따르는 배란촉진 주사를 놓고, 체외 특수배양액 속에서 여러 개의 난자를 정성을 다해 성숙시키며, 클린벤치란 멸균 처리된 테이블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모양새가 가장 좋은 난자를 골라 이식하는 것 등이 다 그렇다.

“좋은 난자가 좋은 수정란을 만들고 좋은 수정란에서 좋은 아이가 나온다”고 말하는 조 교수는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결혼과 출산 기피풍조의 확산에 따라 임신연령이 점점 높아지면 임신율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험관아기 시술 결과가 덩달아 나빠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조사한 결과와 미국 코넬대학의 수치를 일일이 비교하면서 “시험관아기 성공률은 35세 무렵이 되면 눈에 띌 정도로 뚝 떨어지다가 40세에는 20대 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한다.

"미국 몬태나주의 후터라이트(Hutterite)라는 소수민족은 아이가 생기면 무조건 낳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곳 여성들의 출산 실태를 조사한 결과 평균 17세에 첫 아이를 출산한 뒤 평생 13명 정도를 낳는데, 41.3세가 되면 자연 단산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현재 전세계 여성들의 폐경연령이 평균 51.3세이지만 40세를 넘겨 치르는 월경은 임신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최근 의학계가 내린 결론입니다.”

자궁내막염증 치료 연구에도 심혈

고령임신 문제는 큰 시대적 흐름이어서 몇 사람이 나서서 노력한다고 해결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 탓일까. 조 교수가 정작 우려하는 것은 고령임신이 아니라 다이어트에 따른 후유증이었다. 젊은 여성들의 무분별한 다이어트가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요즘 길을 가다보면 ‘20킬로그램 빼드립니다. 안 빠지면 돈 돌려줍니다’라는 비만치료 홍보물이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물론 안 먹으면 살이 빠지겠죠. 그런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월경불순은 물론 임신능력까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월경이 불규칙해졌다면서 병원에 오는 여대생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중 상당수가 무리한 다이어트 탓이더라는 설명이다. “20대 나이야말로 일생 중 가장 좋은 난자를 가질 수 있는 시기”라는 그는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하다가 난소의 영양공급이 부족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조기폐경의 길로 빠져드는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대다수 사람들이 운동이란 무엇인지 본질을 잘 알지 못하고 있고, 적지않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올바로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운동이란 할 때의 과정이나 끝났을 때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것이지 뱃살을 빼고 몸짱이 되는 것이 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살빼기 운동을 하더라도 균형잡힌 식사가 전제되는 것이 마땅하고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천천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임의 책임은 여성 쪽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계수치를 봐도 정자 형성에 장애가 생겨난 무정자증이나 희소정자증 등에 따른 남성불임이 전체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그는 건강한 2세를 갖고 싶거든 “바지 벨트를 2시간마다 풀라”고 남성들에게 말한다. 남성 고환이 몸 밖으로 나와있는 것은 체온보다 2~3도 낮은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정자세포 분열을 왕성하게 할 목적이라며, 직장인들이 몸을 꽉 죄는 옷을 입고 장시간 의자에 앉아있는 업무습관을 들이게 되면 고환 온도가 올라가면서 정자생성 기능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온도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실제로 재볼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디 그 뿐인가요. 소변보러 화장실에 가면 대부분 지퍼만 내리잖아요. 벨트를 풀어야 합니다. 거기를 가끔씩 환기시켜줘야 합니다.”

조 교수가 최근 열정을 쏟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자궁내막이다. 시험관아기 시술 중 임신에 실패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자궁내막에 염증 등 이상이 생겨나는 경우가 요즘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연구에 착수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그동안 애기씨(수정란)에 관한 연구는 많았지만 정작 애기씨가 들어가는 밭(자궁)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습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대성공을 거둔 이래 이후 수많은 의사들이 자기분야에서 하던 일을 걷어치우고 너도나도 줄기세포 분야에 뛰어드는 현실에서 그의 노력이 돋보이는 이유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