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매매 논란 속 불임부부 안타까운 사연 봇물

64만쌍. 아기를 갖지 못하는 국내 불임 부부의 수다. 젊은 부부들이 육아부담과 높은 교육비 문제로 출산을 꺼리는 바람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기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말 못할 고민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불임 부부들도 적지 않다. 10쌍 가운데 1쌍꼴이다.

최근 경찰 조사를 통해 소문만 무성하던 난자매매의 실체가 드러났고, 배만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성관계를 통해 아기를 낳아주겠다는 사람까지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탓에 64만쌍의 불임 부부들이 느끼는 사회의 시선은 따갑기만 할 뿐이다. 아기를 가질 수 없음에 그 누구보다도 힘들고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불임 부부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포털 사이트의 불임 관련 카페인 ‘아기소망(cafe.daum.net/mybabyhope)’, ‘임신을 기다리는 맘들(cafe.naver.com/imsanbu.cafe)’, ‘아가야(agya.org)’ 등엔 동병상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 집을 팔다

4년 전만 해도 나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신랑과 나, 그리고 아기가 살 집을 분양 받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부부에겐 아기가 없다. 집이 너무 너무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린 분양 받은 집을 내놓았다. 나에게는 언제쯤 아기가 생길까. 집은 없어도 아기는 있어야 할 텐데…. 이젠 더 이상 쓰러져 있을 수도 없는데….

앞으론 울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이 나네. 신랑도 바쁘고 친구들도 임신이란 걸 하면서 하나 둘 곁을 떠난다. 아기를 낳고 키우느라 바빠서 그러겠지…. 혼자 있으면 눈물 밖에 나지 않는다.

# 눈물 나는 저녁

병원을 옮겼다. 친구의 언니가 그 병원에서 아이를 가졌다는 병원으로. 기대감 반, 불안한 마음 반으로 찾았는데 기절할 뻔했다. 양쪽 난소 중 하나가 거의 폐경에 가까워졌다는 의사의 얘기 때문이다.

특수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혈액순환이 너무 안돼 확률도 12%정도란다.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그냥 난소기능이 다른 사람보다 좀 떨어진다는 정도였는데, 시험관을 7번 정도 시도하면 한 번 될까말까 한 확률이란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 형편도 그렇고 긴 시간동안 견뎌 낼 수 있을까. 나이 서른 둘에 폐경이라니…. 여자에겐, 특히나 아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나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어쩌지? 그래도 아직은 포기하면 안되겠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신랑은 하는 데까지 하고 그래도 안되면 포기하고 입양하자고 한다. 가슴으로 키우는 아이도 사랑스러울 거라면서. 나는 내 아이가 갖고 싶은데….

# 죽지 못해 사는 날들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데 눈을 뜨고 있어도 또 감고 있어도 오로지 아기 생각만 합니다. 바쁘게 살아야 잊을 수 있다 하여 정말 바쁘게 살았지만, 잠시라도 쉴라치면 모든 게 덧없고 비참하게 느껴집니다.

불임수술을 위해 채취한 난자를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며칠째 찬밥에 물 말아서 삼키고 남편도 아침을 그렇게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좀 들고 나가더니 오늘은 드디어 숟가락을 들다 말고 나가네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남편까지 챙길 수가 없어요. 적금 다 깨먹은 지는 오래고, 마이너스 통장도 한도까지. 빚으로 시술받고 그 결과를 듣기위해 기다리는 동안에 피가 마릅니다.

차라리 공포의 시간입니다. 나이도 차고 더 미룰 수 없는데 이런 상태에서 도전하는 게 괜찮은 건지…. 혼자 결정하기 힘들고 또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요즘 같아선 딱 죽고만 싶네요. 별일도 아닌데 눈물만 주루룩 흐르고 폐인이 다 되어버렸습니다.

우울증은 대부분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9월과 10월에는 30대와 40대 주부가 불임을 비관해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한 조사에서는 불임 여성 4명 중 한명은 매우 심각한 정신적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뿌리 깊은 혈연주의 사회에서 애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여성이 파혼을 맞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 위로 좀 해주세요

결혼 2년차 입니다. 며칠 전 신랑이 저한테 큰 상처를 주네요. 같이 일하는 직원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답니다.한바탕 난리가 나고 그 여자를 만나서 담판을 지었습니다.남편 말이 가관이네요.

‘네가 아이 갖기 힘들다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신랑이랑 지난 며칠동안 싸우고 지치고 또 싸우고 지치고. 나팔관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알고 나서 같이 고민하고 위로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요. 

나한텐 아기 없어도 살 수 있다고 하더니…. 저만 아기에 대한 욕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신랑은 저보다 더 간절했나 봐요.

자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정말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시험관도 해보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노력도 해보기로 했습니다만….남편까지 힘들다며 저러니 앞이 깜깜합니다.

Re) 위로 좀 해주세요

2년밖에 안됐는데 벌써 불임 때문에 갈등이 생긴걸 보면 정말 남편이 아기를 많이 기다린 것 같습니다. 당연히 시험관 빨리 하셔야죠. 

친구의 친구 얘기입니다.6년 동안 아기가 없어 시험관을 여러 차례하고 쌍둥이를 낳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이 그 동안 다른 여자가 있었던 겁니다. 

해도해도 안되니깐 그냥 아내 따라서 시험관에는 응했는데 덜컥 성공했지요. 남편에게는 기쁨이 아니라 문제 거리가 됐던 거라네요.

그래서 이혼도 당하고 아기도 혼자 키우고 한답니다.최악의 경우이긴 하지만, 우선 님께서는 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불임이 여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죄도 아니라는 것을 남편 분이 인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시험관 시술을 받을 때마다(한번에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더 힘들어질 겁니다. 둘이서 해도 힘든 마당에 관계 개선 없이 시험관을 하는 데에는 반댑니다.

고통 받는 불임 부부의 목소리가 당국의 지원 확대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는 경우도 여럿있었다. 웬만한 직장인들의 한달 급여와 맞먹는 200만~300만원의 돈이 들어가는 시험관 아기 시술과 시술 전에 거쳐야 하는 수많은 검사 비용에 대한 건강보험의 확대적용이다.

# 애를 가져도 문제

어떤 집에서는 월급 조금씩 모아서 여행 다니는데, 돈 생기는 족족 적금해서 시험관에 쏟아 부어야 하는 생활은 언제쯤 끝날까. 

6년 동안 그렇게 살고 보니 적금 깨먹은 지는 오래고, 늘어나는 건 빚 뿐이다. 시험관 실패 후 날아드는 카드 청구서를 보면 숨이 컥컥 막힌다. 

빚더미에 오른 엄마 아빠가 다른 아이들처럼 잘 키울 수 있을까.임신도 임신이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면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인터뷰]박춘선 불임부부 인터넷 동호회 ‘아가야’ 대표

“저출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출산 축하금, 장려금을 주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불임부부 인터넷 동호회 ‘아가야(agaya.org)’를 2001년 개설, 운영해오고 있는 박춘선(39)씨는 불임 부부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나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것이 못마땅하다.

“애 하나 키우는 데 드는 돈이 얼만데, 축하금, 장려금을 보고 애 낳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그 돈 보고 애 낳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9,000여 회원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끈끈하게 결속돼 있는 아가야는 박씨가 불임으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찾았던 일에서 비롯됐다.

“불임으로 고통 받는 저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2001년 당시 관련 사이트들이 상업적인 것 일색이라는 데에도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사람 냄새 나는 곳을 찾다가 아예 제가 하나 만들어버렸죠. 아가야는 전국 6개 지역으로 나뉘어져 매주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있고,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여 등산도 하고 있다.동호회는 또 불임이 여성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착안 남편들의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반응이 너무 좋습니다. 직장생활 하면서 얘기 못하는 것들을 여기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다 보니 금방 친해집니다.부부의 금실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죠."

박씨는 불임 부부들이 사회에 대해 하는 일은 많은데 사회가 그들에게 해주는 것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미혼모들에게서 버려지는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는 사람들의 80~90%가 불임 부부들입니다. 생명공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연구실에 난자를 제공한 사람들도 불임 부부들이고요."

뒤의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을 때 주사를 맞아 과배란을 유도합니다. 실제 시술에 쓰이는 난자는 3~4개에 불과한데, 한번에 20개씩 배란시키는 때도 있습니다.5개 정도는 냉동 보관한다지만, 나머지 10개는 실험실로 가는 거 아닙니까.실험실에서는 공여받았다고 하지만, 어떤 여성이 자기 몸 망가뜨려가면서 난자를 무상으로 제공하겠습니까. 관련 법도 잉여 난자에 대해서는 연구용으로 쓰일 수 있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박씨는 호르몬 주사 등 불임치료와 관련해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정말 미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불임진단, 배란촉진제 사용에 대한 지원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또 “성공확률 3분의 1을 감안하면 아기를 갖는 데 최소 1,000만원 이상의 돈이 들게돼,돈 없는 사람은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한번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다는 동호회원들의 아쉬움과 분노의 목소리를 전했다

박씨를 비롯한 아가야 회원들은 지난 6월 협찬 병원들로부터 장소를 협조받아 불임시술의 보험적용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 8,5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불임부부들을 지원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처음에는 많은 의원들이 공청회, 간담회를 열어 관심을 보이더니, 저출산 문제가 약간 잠잠해지니 이 문제도 덩달아 조용해졌죠"  불임 부부들에 대한 정치인들의 관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였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