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배기 명품, 반값에 구해 볼까

관세청 인천공항세관이 12월부터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대상 상품은 향수, 손목시계, 화장품, 명품가방 등 여행자 휴대품과 수입물품 중 통관되지 않은 물품들 중에서 법정 보관기간을 넘긴 유치품(체화물품)이다.

판매는 인터넷을 통한 전자입찰 방식이다. 세관 창고에 쌓이기만 하는 처치곤란의 유치품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관세청의 고민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체화물품은 여행자 휴대품의 경우 유치된 날로부터 1개월 이내, 수입물품은 보세구역에 반입된 후 6개월(주요 공항만은 2개월) 이내에 수입통관하지 않은 채 세관에 압류된 물건을 말한다.

지금까지 이들 물건에 대한 공매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는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이 세관 공매일자에 맞춰 세관을 방문해야 했다.

이 때 입찰보증금납부영수증,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제출하는 등의 불편이 따랐기 때문에 소수의 지역공매업자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유찰 때마다 10%씩 체감, 50%까지 하락

체화물품을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경매의 이익을 고루 나누기 위한 것이 전자입찰 경매의 도입 취지다.

그 밖에 관세청은 신속한 매각을 통해 주요 공ㆍ항만 보세구역의 고질적인 화물적체 해소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선 인천공항세관 보관분부터 전자입찰로 판매하고, 내년 1월에 전국 세관으로 확대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방식을 통해 12월1일 1차 경매에 오른 유치품은 겐조 향수, 라코스테ㆍ오메가 시계, 바니ㆍ몬테로소 핸드백, 키플링 가방, SK-2ㆍ에스테로더 화장품 등 모두 93건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최소 10만 건 이상이 판매될 예정이다. 2005년 1월부터 10월까지 발생한 공매대상 건수는 12만3,300건임을 감안한 것이다.

인천공항의 수화물 X레이 검색실.

단 주류와 담배는 인터넷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에 따라 기존 서류입찰 방식을 통해 판매된다.

체화물품 공매의 가장 큰 특징은 저렴한 가격에 있다. 유찰될 때마다 10%씩 가격을 체감하는 형식으로 진행돼 마지막 6차 경매에서는 원래 가격의 50%선에서 구입할 수 있다.

첫 경매가는 구입 영수증에 표시된 가격을 바탕으로 산정되고 세금도 포함된다.

인터넷경매라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경매사이트를 생각한다면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입찰서를 작성하고 입찰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입찰보증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세청 통관포털(portal.customs.go.kr)에 가입 후 보증금을 내기 위해서는 인터넷 뱅킹 등에서 사용되는 공인인증서도 필수적이다.

입찰자는 공매종료와 동시에 낙차결과를 조회할 수 있고 낙찰자는 납부기한 내에 남은 금액을 이체하면 된다.

유찰자가 납부한 입찰보증금은 지정한 계좌로 돌려 받을 수 있다. 법원에서 이뤄지는 경매를 인터넷에 옮겨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경매사이트에는 물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실물 사진이 첨부된다. 그래도 미심쩍은 데가 있다면 세관을 찾아 물건을 직접 확인할 수도 있다.

일주일 중 이틀에 걸쳐 경매가 진행되고 물건은 경매 시작 이틀 전부터 경매시작 전날까지 공개된다. 판매금은 세금과 창고 보관료 공매과정에 들어간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원 소유주에게 지급한다.

가방·시계에서 웅담·녹용까지 다양

소설과 TV드라마뿐 아니라 세관 창고에 유치되는 물품으로도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세관 관계자들의 말이다. 해외여행객들이 국내로 반입하는 물건들이 시대의 조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얘기다.

유치된 지 1개월이 지나면 인터넷 경매를 통해 팔려나갈 운명이지만 어떤 휴대품들이 유치되고 있는 것일까. 11월30일 인천공항세관 창고를 찾았다. 창고는 여행자휴대물품 중 유치 한달 이내의 물품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도서관의 장서실을 연상케 하는 창고에 들어선 뒤의 첫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웅담, 녹신 등을 이용한 건강식품, 고추, 참깨 등의 농산물과 한약재들이 내뿜는 특유의 쾨쾨하고 고린 냄새 탓이었다.

화장품, 의류, 주류, 핸드백, 향수, 골프채 등도 상당수가 유치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고가의 상품인 만큼 해당 세금을 내고 찾아가는 여행자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치대상은 여행자 휴대품의 경우 미화 400달러 이상을 초과한 물품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ㆍ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국내 반입이 제한된 물건들, 국내 헌법질서와 사회의 안녕을 어지럽힐 수 있는 도서, 음반, 비디오 등이다.

또 처방전, 진단서 등의 입증자료가 있어야 하는 비아그라 등의 의약품류, 경찰청의 인가가 필요한 도검류 등도 유치대상이 된다. 관할 기관의 허가나 증명서가 있으면 반입 가능하다고 하지만, 통관된 예는 거의 없다.

압수된 도검류, 국내법에 따라 해외로 반송된다.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띄게 유치 건수가 줄어든 품목은 카메라, 비디오카메라 등과 같은 전자제품이다. 2002년 4,800여 건에 이르던 것이 2005년(10월 현재) 들어 700여 건으로 급락했다.

정보통신(IT) 강국답게 국내 업체들이 내놓고 있는 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더 이상 외국 제품을 들여올 이유가 없어진 탓이다.

또 구두의 유치 건수도 2002년 2,700여 건에 이르던 것이 올해(10월 현재)는 300여건으로 뚝 떨어졌다. 세관에서는 전자제품처럼 국내 구두의 품질이 좋아졌다기보다는 통관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여행 나갈 때 버릴 신발을 신고 나가서 들어올 때 새 구두를 신고 입국하는 등의 방식으로 통관을 손쉽게 할 수 있는 품목이 바로 구두라는 것이다.

인천공항세관에 유치되는 물품 건수는 대체로 줄어들고 있는 편이다. 1990년만 하더라도 82%의 여행객들에 대해 물품을 검사하던 세관이 1995년에는 8%, 2000년 5%, 2004년 3.5%에 이어 2005년에는 3%로 검사율을 점차 낮추고 있는 것도 이유지만, 높아지고 있는 여행객들의 의식 수준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추세에 역행하는 품목들도 있다. 웅담과 관련한 약, 담배, 화장품이 이에 해당한다. 술, 가루, 즙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돼 반입되고 있는 웅담의 경우 2002년 1,400여 건에서 2005년(10월 현재)에는 3,100여 건으로 늘었다.

몸에 좋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한국인의 특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면세점을 가더라도 가장 넓은 판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의 화장품 역시 많이 유치되는 품목중의 하나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부피가 작은 탓에 여러 개를 구입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면세 한도 400달러를 초과하는 것은 다반사다. 화장품은 2004년 4,000여 건에서 2005년(10월 현재) 5,200여 건으로 늘었다.

또 술(1병)과 함께 담배는 금액과 상관없이 1보루로 정해져 있는데 이를 위반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고 있다.

2002년 1,100여 건에서 2005년(10월 현재) 2,400여 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담배의 경우 해마다 수백 원 정도의 세금이 더해지면서 흡연자들이 느끼는 부담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담배의 경우 갑 단위로 분리해서 짐의 여기저기에 나눠 숨기는 식으로도 많이 들어온다는 게 관계자가 목격하는 요즘 여행객들의 모습이다.

인천공항 세관 유치품 보관소 각종 압수품목이 보관돼 있다.

대개 담배의 경우 면세 범위를 초과한 건에 대해서는 단순 유치로 끝나지만, 세관을 속이지 위한 ‘수작’이 발각될 경우 그 결과는 실로 참담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

이들의 경우 허위신고죄로 조사의뢰 대상에 오르는 것은 물론, 관세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수백만원 짜리 시계를 겨드랑이까지 올려 찬다든지 하는 등 탈세의 고의성이 짙은 경우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의 면세한도가 너무 낮은 거 아니냐 하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지만 싱가포르 400달러, 호주 400달러, 뉴질랜드 700달러 등으로 국민소득을 감안했을 때 한국의 400달러는 결코 적은 한도가 아니라는 것이 세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검류 등은 해외로 다시 반송

눈에 띄는 유치 품목은 또 있다. 바로 도검류다. 허리춤에 차는 쌍칼에서부터 온라인 게임 리니지 등에서 구경할 수 있을법한 대검 등 대부분이 날이 서지 않은 장식용이긴 하지만, 칼날 끝이 뾰족하거나 날의 길이가 15㎝ 이상이면 유치된다.

날을 세우면 실제의 칼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어 국내법의 저촉을 받기 때문이다. 해외로 다시 반송하는 수 밖에 없다. 또 최근 평양에서 아리랑 공연을 보고 오는 길에 구입한 북한 서적과 비디오들도 상당수다.

세관 관계자는 북한 여행객들은 100% 검사를 하고 있고, 통일부의 승인이 나지 않은 것들인 만큼 100% 유치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조치가 있을 때까지 북한의 서적과 비디오 등은 구입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는 반입불가 품목 등 반입 기준을 미리 알아 두면 도움이 된다.

관세청 홈페이지 customs.go.kr / 관세종합상담센터 1577-8577


정민승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