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자정작용 맡기고 이젠 조용히 지켜볼때

‘황우석 파문’의 끝은 어디인가. 진정될 듯하면서도 하룻밤 자고 나면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도대체 몇 번의 널뛰기를 더해야 파문이 끝날지 모르는 형국이다.

황 교수는 7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하며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고, MBC는 PD수첩에 대해 사실상 폐지 결정을 내렸다.

또 검찰은 6일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MBC PD수첩 고발사건에 대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이로써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란은 막을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황 교수 입원 다음날인 8일 이번엔 황 교수팀의 특허 출원과 관련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황 교수팀과 MBC PD수첩의 DNA 검증과정을 중재했던 김형태 변호사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팀이 논문을 발표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실물(세포주)을 기탁하는 특허 출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 교수팀은 2004년 사람 체세포 복제배아줄기세포, 2005년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에 대해 국내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2004년에는 세포주를 지정된 기탁기관에 맡겼던 것과는 달리 2005년에는 특허출원과 등록에 필요한 세포주를 기탁기관에 맡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2005년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특허 등록증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자아내는 대목으로 당연히 ‘왜’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소장 과학자들 DNA '조작' 가능성 의심

특허법과 미생물 기탁에 관한 국제적 승인 조약인 ‘부다페스트 조약’에 따르면 배아줄기세포 등 미생물 발명 관련 특허를 출원할 때는 미생물을 기탁기관에 기탁하고 나서 특허 출원서에 그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세포주를 기탁하는 이유는 미생물이나 세포주 등을 새로 발명해 특허를 출원할 때 제3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인된 기관에 기탁하고 분양하기 위해서다.

황 교수팀의 특허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 산학협력재단 관계자는 “2005년 논문을 발표하기 2~3개월 전부터 출원 준비를 하면서 세포주 기탁 여부에 대해 내부적으로 충분히 논의했다”며 “복잡한 사항이라 말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소장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지 발표 논문에 수록된 ‘DNA 지문 분석결과’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8일 한국과학재단 지정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게시판에 한 생명과학 전공자가 황 교수의 논문에 실린 환자의 체세포와 줄기세포 DNA 지문분석 결과는 피크(Peak)의 위치뿐만 아니라 높이, 모양, 노이즈까지 놀랄 만큼 닮아 ‘조작’의 가능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들 소장 과학자들의 문제 제기는 환자의 체세포와 그 환자에서 유래한 줄기세포에서 각각 DNA를 추출 분석하면 피크 위치는 당연히 같아야 하지만, 높이와 모양, 노이즈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일한 시료에서 DNA를 채취해 여러 번 지문분석을 할 경우 매번 사람의 손을 거치고 기계에 넣는 시료의 양도 차이가 나 높이와 모양, 노이즈의 피크가 다르게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BRIC 게시판은 5일 황 교수의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 사진이 중복된 사실을 처음 밝혀낸 곳이기도 하다. 황 교수 논문의 진위 논란은 과학계 내부에 동요를 일으키며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수면장애와 극심한 피로, 스트레스로 인한 탈진으로 건강이 악화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황우석 교수가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황 교수의 논문을 게재했던 ‘사이언스’지의 도널드 케네디 편집장은 5일(현지 시간) “내가 아는 한 MBC의 주장 중 올바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언스는 황 교수의 논문에 대해 충분히 검증했다”며 “줄기세포 사진을 비롯한 각종 자료를 미국 내외의 신뢰할 만한 세포 연구기관에 보내 철저히 검증받는 절차를 밟았다”고 했다. 황 교수의 연구논문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럴드 섀튼 교수가 몸담고 있는 피츠버그대는 황 교수팀의 논문에서 발생한 사진 중복 게재 혼선이 서울에서인지, 피츠버그에서 빚어진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피츠버그대는 연구윤리국(ORI)의 요청에 따라 외부인사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황 교수 논문에 사용된 데이터를 재조사하기로 했다.

아서 레빈 피츠버그대 의대 학장은 8일자 현지 지역신문 인터뷰에서 “모든 실험이 미국 바깥에서 이뤄졌지만, 피츠버그대는 부정 연구행위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기준에 따라 엄격한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의 난자 확보 출처에 대해 처음 문제 제기를 했던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지도 6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한 검증을 재차 촉구했다.

네이처는 “황 교수가 학문적 청렴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독자적인 테스트를 거쳐야 자신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의혹을 벗을 수 있으나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논문으로는 데이터가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일본 교토대 노리오 나카쓰지 박사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황교수 재검증 거부에 비판적 시각

이러한 상황 전개 속에서 국내 소장 과학자들은 점차 재검증을 거부한 황 교수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물리학자는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천하의 아인슈타인, 스티브 호킹조차 자신의 이론이 숱한 공격을 받았지만 그런 의심과 도전을 ‘흠집내기’라는 식으로 비난하지 않았다”며 실험과학계에서도 이와 같은 의혹 제기는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사이언스나 네어처라는 학술지가 연구결과 혹은 진실의 최종 잣대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과학자들에게는 그저 이름있는 학술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라며 “사이언스에 실렸으니 검증이 다 되었다는 식의 주장은 적어도 과학자의 상식으로 봤을 때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또 “그다지 심오하지도 않은 뻔한 사실들을 놓고서 과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을 하기가, 또 받아들여지기가 이렇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이 과학자로서 당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대 교수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서울대 의대와 치대, 생명과학대 등의 소장파 교수들은 8일 황 교수의 논문 진위 논란에 대한 서울대의 자체 검증을 정운찬 총장에게 건의서를 제출했다.

그냥 넘어갈 경우 세계 과학계에서 한국 과학자들의 입지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은 건의서에서 “피츠버그대에서도 과학진실성위원회를 가동해 자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며 “ 핵심 당국자인 서울대의 자체 진상조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소속 일부 교수들도 황 교수의 논문 데이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서울대 교수들의 움직임에 지지를 표명할 분위기다.

KAIST의 한 교수는 “데이터가 조작된 의심이 간다는 사실만은 말할 수 있다”며 “데이터에 문제가 있을 경우 저널이 아니라 연구팀이 속한 서울대나 연구비를 지원한 과학기술부가 조사에 나서는 것이 과학계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사이언스지도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황 교수팀 "내년 봄 논란 끝낼 논문 나올 것"

그러나 황 교수팀 한 핵심 측근은 8일 “내년 봄이면 논란을 끝낼 논문이 나올 것”이라며 “후속 논문은 2005년 5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의 후속 연구로 수준 높은 내용을 담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 당국은 신중한 행보 속 내부 진통을 겪고 있는 표정이다. 서울대 정 총장은 8일 주요 보직교수와 단과대 학장을 소집한 가운데 오전과 오후 2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황우석 논란에 대한 최종 심판은 서울대를 비롯한 과학계에 맡겨진 양상이다.

애당초 이 논란을 잠재울 유일한 곳도 과학계였고, 결과의 책임도 과학계의 몫이다. 이제 조용히 지켜봐야 할 때인 듯하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