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학도 줄기세포 문제 잇단 제시, 진실 규명 일조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황우석 쇼크’는 취재진의 눈마저 의심하게 할 만한 몇 줄의 제보에서 비롯됐다.

지난 6월 MBC TV PD수첩에는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수립 과정을 담은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으며, 2004년 논문 역시 연구 과정의 난자 사용에 윤리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 왔다.

고심 끝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을 한 PD수첩 제작진은 취재에 착수했고 이후 추가로 2건의 제보를 더 접하게 된다.

2일 MBC PD수첩 최승호 CP가 배아줄기세포 진위여부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그 동안 언론은 황 교수 연구팀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최초 제보자를 다양하게 추측했으나, 15일 방송된 MBC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에서는 그들의 신원을 가린 채 증언을 내보냈다.

이와 관련 인터넷 사이트 ‘아이 러브 황우석’의 운영자인 황 교수 측근 인사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팀 출신 연구원 2명을 제보자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중 한 사람이 취재진에게 줄기세포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등 PD수첩의 취재를 적극적으로 도운 것 같다고 주장했다.

첫 제보 이후 몇 달에 걸친 탐문 취재를 진행한 PD수첩은 황 교수 논문의 신빙성에 서서히 의문을 갖게 됐고 마침내 10월20일 미국 피츠버그대에 가 있는 황 교수팀 연구원들과의 직접 접촉을 시도했다. 물론 배아줄기세포의 진위 여부에 대한 확인을 위한 것이었다.

줄기세포 2개로 11개 만들어 증언

취재 논란을 빚기도 한 이 만남에서 PD수첩은 김모 연구원으로부터 이른바 ‘중대 증언’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16일 한 시민이 서울 용산전자상가 가전제품 매장에서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중대 증언은 이를 부정하는 YTN의 김 연구원 단독 인터뷰 내용이 보도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했으나 15일 특집 ‘PD수첩은…’ 보도에서는 중대성을 그대로 입증했다.

취재진의 “2, 3번 줄기세포로 다른 줄기세포의 사진을 조작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김 연구원은 “황우석 교수가 세포 사진 조작을 직접 지시했다”고 답변한 것이다.

요점은 결국 2개의 줄기세포를 가지고 11개의 줄기세포 사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 “해서는 안 되는 일이어서 부담이 됐지만 황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조차 선뜻 믿기 어려운 제보에서 출발한 줄기세포 진위 의혹은 이처럼 연구팀 안팎의 중대 증언들이 잇따르면서 눈덩이처럼 커졌다.

취재를 맡았던 PD수첩의 한학수 PD는 최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설마 모든 줄기세포가 조작됐을까, 2~3개는 있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PD수첩은 모든 취재 내용을 보도하기까지 엄청난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연구 과정의 난자 제공 윤리 문제를 지적한 ‘1탄’ 방송이 11월22일 나가자마자 “국익을 해쳤다”는 들불 같은 비난 여론에 직면한 것이다.

게다가 취재 과정에 심각한 윤리 위반 사실이 12월4일 YTN 보도로 드러나면서 오히려 사과 방송, 프로그램 폐지 결정 등 최악의 곤경으로 내몰렸다.

이처럼 줄기세포 진위 의혹에 대한 보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국면을 뒤엎은 것은 젊은 생명 공학자들이었다.

MBC가 9시 뉴스데스크를 통해 PD수첩 취재 윤리 위반을 사과하는 한편 과학계 스스로의 재검증을 촉구한 이후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생명공학 전문가들의 의혹 제기가 잇따른 것이다.

황우석 교수팀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 사진 중 새롭게 조작논란이 일고 있는 세포분석 사진.

특히 젊은 과학도들의 정보교류 창구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나 한국과학기술인연합(SCIENG) 등 인터넷 전문가그룹 사이트에서 제기된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켜 나갔다.

주된 의혹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게재된 줄기세포 사진 중에 동일한 사진이 다섯 쌍이나 된다는 점이었다.

황 교수팀은 즉각 작업 상의 실수로 중복 사진이 게재됐고 이미 ‘사이언스’에 오류 보고 및 논문 수정을 요청해 놓았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은 그치는 듯했다.

하지만 BRIC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2005년 논문의 DNA 지문분석 결과에 대해 인위적 조작설이 제기되는 등 새로운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반박·재반박 뒤엉킨 진실게임

이처럼 줄기세포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자 서울대가 자체적으로 진상 규명에 나서는가 하면, 미국 피츠버그대도 황 교수팀 연구원들을 상대로 조사에 착수하는 등 과학계의 분위기는 재검증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황 교수팀이 제시한 DNA peak 관련 자료










이런 가운데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의 “줄기세포는 없다”는 폭탄 발언과 황우석 교수팀의 반박 기자회견, 곧바로 이어진 노 이사장의 재반박 기자회견이 뒤엉키면서 진실은 오리무중으로 빠진 상태다.

황 교수팀은 일단 줄기세포 수립에 추호의 거짓도 없으며, 냉동 줄기세포 배양을 통해 논문의 진실성을 조만간 검증해내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황 교수와 노 이사장의 고백이 너무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줄기세포의 입증 여부에 양측 간 진실 공방의 승패가 달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