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그린 우리시대 풍속도

말은 그것을 내뱉는 사람의 인격이며 사상이다. 또한 그것이 통용되는 사회의 반영이자 수준이다. 우리가 말을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현실을 인식하는 것도 말이 가진 그 같은 힘 때문이다.

을유년 한 해 세간에 화제가 됐거나 파문을 일으킨 발언들을 재음미하면서 어떤 사건과 이슈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고, 그 가운데서 어떤 시각이 교차했는지 되돌아본다.

노무현 대통령(왼쪽),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전여옥 대변인의 입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친다”(1월23일,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고문)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 고문이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올린 글에서 노 대통령을 향한 공격적 논평을 연일 쏟아내는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에 대해 던진 야유.

-“교육이나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공무원 인사 때 서울 강남 거주자를 배제하자”(2월15일, 전병헌 열린우리당 의원)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재경ㆍ건교ㆍ교육부 등 특정 부처 고위 공무원 인사에서 ‘신 상피제(相避制)’를 도입하자”고 제안. 상피제란 조선시대 지방관을 파견할 때 당사자의 고향 등 연고지에는 보내지 않던 제도.

-“민족혼의 샘물에 침을 뱉고 더럽히는 오물을 수거하기 위해 나왔다”(3월17일,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CBS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 식민 지배는 축복”이라는 망언으로 큰 물의를 빚은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와 그를 옹호한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를 싸잡아 공격하며 날린 발언.

-“언제까지 이런 자의 소리를 들어야 되는지, 참…. 여기서 자(者)는 놈 자자입니다”(5월13일, 손석희 MBC 아나운서국장)

=자신이 진행하는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운 좋게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경제 재건을 급속도로 진전시켰다”는 망언을 한 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무성장관을 비판하며.

-“우리나라는 지금 운동권 3학년 학생 수준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5월16일,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올린 ‘과거사법과 같은 집단 자해행위가 이 땅에서 먹히는 이유’라는 글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이 ‘싸움꾼’ 같다고 비난하면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왼쪽),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다음 대통령은 대학 나온 사람이 돼야 한다”(6월2일,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

=CBS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직접적으로 밝힌 뒤, 국민의 60%가 대학 졸업자이기 때문에 대학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적절하다면서.

-“당신도 개똥녀가 될 수 있다”(6월8일, 한 네티즌)

=지하철 안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린 이른바 ‘개똥녀’ 사건에 대해 마녀사냥 식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현상과 인터넷 여론 재판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포털사이트 토론방에 올린 글의 제목.

-“이건 중앙 정부가 아니라 군청 정도에서 하는 수준”(6월8일, 이명박 서울시장)

=시청 간부회의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를 거론하다가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화살을 날리며.

-“검찰은 거만하기 짝이 없고 억울함을 풀어주지도 못하면서 사법권을 독차지하려는 욕심꾸러기 같은 존재”(6월27일, 김재원 한나라당 의원)

=검사 출신의 김 의원은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올린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한 의견’이라는 글에서 막강한 권한에 비해 경륜이 부족하면서도 수사권 독점만을 요구하고 있는 친정을 질책.

-“부동산 투기는 범법은 아니지만 사회적 범죄행위”(7월6일, 이해찬 총리)

=경제민생 점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부동산 투기를 타인의 생필품을 놓고 벌이는 가장 나쁜 경제 행위로 규정하고, 근원적으로 시장 교란을 제거하는 부동산 대책 마련을 주문하면서.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경영권 탈취 미수 사건이다”(7월22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왼쪽), 손석희 MBC 아나운서 국장










=총수 일가의 경영 일선 퇴진을 불러온 ‘두산 형제의 난’이 터진 직후 형인 박용오 전 회장이 검찰에 진정한 비리 내용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6ㆍ25전쟁은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 전쟁”(7월27일, 강정구 동국대 교수)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후삼국 시대의 왕건, 견훤, 궁예가 서로 전쟁을 벌이며 삼한통일의 대의를 노린 것과 북한이 6ㆍ25전쟁을 일으킨 것은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합의만 이뤄지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구성하고, 그 연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하겠다”(7월28일, 노무현 대통령)

=‘지역구도 등 정치구조 개혁을 위한 제안’이라는 제목의 열린우리당 당원 서신을 통해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사실상 총리 지명권, 조각권 등을 내각제 수준으로 한나라당에 넘기는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대통령은 21세기에 있고 국민은 아직도 독재시대의 문화에 빠져 있다”(8월25일,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

=CBS라디오에 출연해 장기적 혁신을 추진하려는 노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이 안 되는 까닭을 설명하면서 꺼내든 비유.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해 보겠다”(8월25일, 노무현 대통령)

=KBS 특별 프로그램 ‘참여정부 2년6개월, 대통령에게 듣는다’에 출연, 연정 제안은 음모가 없으며 29% 지지도로 국정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박용성 전 두산 회장(왼쪽), 강정구 교수










-“당신이 공들여 키운 ‘삼성’이 바로 당신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8월30일, 안민석 열린우리당 의원)

=당 홈페이지에 올린 ‘삼성과 이건희를 위한 변명’이라는 칼럼에서 X파일 사건에 거론되는 어두운 구시대의 잔재가 삼성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이건희 회장의 결단을 촉구.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8월31일, 한덕수 경제부총리)

=투기를 통한 편법 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하고 부동산 거품을 제거해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8ㆍ31 부동산대책을 비장한 어조로 발표하면서.

-“중국 시장이 산업ㆍ정보화의 규모 및 속도 면에서 ‘코끼리’라면 우리는 ‘토끼’ 수준”(9월2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대 중국 정보기술(IT) 산업 컨퍼런스’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IT 산업에 대한 경계론을 펼치면서.

-“참여정부 직전의 두 차례 정부는 잃어버린 10년”(10월12일,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

=문민정부는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을 써서 실패했으며 국민의 정부는 그 후유증으로 발생한 환란을 극복하느라 5년을 소비했다고 기자간담회에서 지적.

-“보수언론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불(不)관용을 선동하는 독극물과 같은 존재”(11월14일,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

=서울대에서 가진 특강에서 거대 신문들이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실을 수집하고 의제를 설정해 놓고 그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게 강요한다고 비판.

-“공산화를 편드는 사람은 관용을 하고 공산당을 잡는 사람은 구속이 된다면 사리에 맞는 일인가”(11월21일, 김대중 전 대통령)

=통일 전쟁 논란을 빚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불구속한 마당에 국정원 및 안기부 도청 사건으로 임동원ㆍ신건 전 국정원장을 구속 수감한 검찰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