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머 선호시대'男모르는' 고민, 작은가슴으로 '가슴앓이' 하는 여성들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랑 목욕탕에 갔습니다. 조카가 발육 상태가 좋은 건지 요즘 애들이 다 그런 건지, 여하튼 보기 좋은 부러운 가슴이었습니다. 집에 가서 조카가 하는 말인즉 ‘이모 가슴 좀 키워, 나보다 작으니까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잖아’ 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작으니까… 나보다 작으니까… 누구는 지(조카)보다 작고 싶어 작았나요? 사실 저도 초딩(초등학생)때는 저만(저만큼) 했습니다. 그 사이즈가 지금 그대로라 문제지만. 아~~이 슬픈 현실!”(네티즌 ID 오나전된장)

인터넷 포털 다음의 까페 ‘가슴 이쁘니네’(cafe.daum.net/ebbungirl)에 올라온 글이다. 가슴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여성들의 가지각색 사연이 눈길을 끈다.

2002년7월 개설한 이 까페의 회원 수는 무려 10만여명. 하루 방문자 수만도 1,500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껌딱지 같은 가슴, 우울증 걸릴 지경"

글래머를 선호하는 시대 흐름에 따라 가장 대표적인 고민은 ‘명품(완전 평면)’이나 ‘아스팔트의 껌딱지’ 등으로 놀림 받는 작은 가슴으로 인한 것들이다.

이 사이트의 ‘아! 서럽다, 작은 가슴’ 코너에는 ‘서럽다’ ‘슬프다’ ‘고민 된다’는 여성들의 하소연이 1,200여 건이나 올라와 있다.

다이어트를 고민한다는 ID ‘하늘보’는 ‘살은 있는데 왜 가슴은 없냐고’란 제목의 글에서 “살은 빼고 싶은데 가슴살만 빠질까 봐 다이어트도 못 한다. 내 몸에 있는 살들 가슴으로 다 솟구쳐 올라가게 할 순 없을까”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주부라고 밝힌 ID ‘세잎크로바’는 “아이를 낳고, 젖을 말리니 정말 껌딱지가 따로 없어요. 작고, 쳐지기까지. 남편의 손이 들어올라치면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우울증까지 걸릴 지경이에요”라고 출산 후 작아진 가슴으로 인한 고민을 담은 글을 올렸다.

나이를 불문한 몸짱 열풍을 반영하듯 아직 성장기에 있는 어린 학생들의 사연도 빗발친다. “13살인데 가슴 발육이 멈춘 건가”, “중3인데 밖에 나갈 때 브라(브래지어)도 안 한다”, “가슴이 큰 친구가 나중엔 넌 결혼 안 할거냐고 놀린다”는 등의 하소연이 속속 올라온다.

단연 압권은 이러한 작은 가슴을 가진 여성들의 콘테스트 코너다. 가슴이 가장 작은 여성 3명을 뽑는 이 선발대회는 12월 현재 6차 콘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상의를 벗은 채 정면과 옆 모습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이 사진들은 누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 해도 눈이 휘둥그레 질만 하다.

일반적인 누드 사진이 여체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위한 것이라면 이 사진들은 빈약한 가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 더 충격적이다.

콘테스트 경품인 가슴 관리를 위한 미용 제품을 받기 위해서다. 경쟁도 치열하다. 탈락자들은 “가슴이 작은 것도 서러운데 탈락되어서 비오는 날씨처럼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허탈해 하기도 한다.

가슴에 관한 의식을 조사하는 투표도 흥미롭다. “내 여자친구의 가슴이 성형 가슴이라면?”이란 설문 조사 결과에는 “작아도 자연 가슴이 좋다”는 의견이 63%(548표)로 주를 이뤘으나 “예쁘고 크다면 성형이라도 좋다”는 응답도 36%(317표)나 차지했다. “가슴이 크면 머리가 나쁘다”는 식으로 큰 가슴을 부담스러워 하던 분위기는 크게 바뀐 것이다.

볼륨있는 몸매를 자랑하는 이효리는 남성들에게 '가장 호감가는 연예인'으로 꼽혔다.

체형에 비해 너무 큰 가슴으로 고민하는 여성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동양인의 체형 특성상 소수에 해당하는 큰 가슴을 가진 여성들이 추앙 받고 있다.

지난해 여성포털사이트 젝시인러브(www.xy.co.kr)가 ‘이성으로서 가장 호감 가는 연예인의 체형’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글래머 체형’인 이효리를 선택한 남성 응답자(30%)가 가장 많았다.

다양한 연령층 '유방확대술' 희망

성형외과의 경우 가슴 성형용 보형물의 크기가 날로 커지는 추세다. 아름다운 나라 김진영 원장은 “2~3년 전만 해도 가슴 성형용 보형물은 120~180㏄ 크기가 주로 이용됐지만 요즘엔 200㏄이상으로 늘어났다”며 또한 “20, 30대 젊은 여성 뿐 아니라 마흔을 넘어선 주부들까지 가슴 수술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여성의 큰 가슴을 동경하게 됐을까. 이러한 세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그라지나 야시엔스카 박사는 지난해 영국 왕립학회 회보를 통해 가슴이 크고 허리가 잘록한 글래머형 여성이 임신이 잘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글래머형 여성이 매력적 여성의 표상으로 간주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생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노출이 심한 서구식 패션의 유행 탓이라는 시각과 역사적으로 불황기에는 큰 가슴이 선호됐다는 경제적 분석도 나온다.

몸짱 열풍이 불고 간 이래 여성들의 의식 변화도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여성의 가슴은 전통적으로 모성과 풍요로움, 성적인 상징을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었으나 근래에는 성적인 측면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는 얘기다.

김진세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은 “성적인 표현이 자유로워지고 매스컴에서 성적인 것을 무기로까지 내세우는 노골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라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그러나 “무조건 가슴 큰 여성을 남성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은 남성들의 성기 콤플렉스와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편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