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밀매 신고한 한 선장의 기구한 삶

지난해 9월 27일 선박으로 코카인 1,200㎏을 아프리카로 밀반입하려던 남미 국제마약조직을 적발했다고 브라질 당국이 발표했다.

한국에서라면 수십 년 동안 수백 만 명을 중독 시킬 수 있는 막대한 양으로 브라질 사상 3번째로 큰 규모였다.

그러나 당시 마약을 운반하던 한 한국인이 목숨을 걸고 이 사건을 신고,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다는 사실은 부각되지 않았다.

기자는 이후 국내로 돌아와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숨어 지내다 최근까지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철수(50ㆍ가명)씨를 수차례 만났다.

김씨는 현재 돈도 없고 연고도 없이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며 죄인 아닌 죄인처럼 숨어 지내고 있었다. 충격적이고 비참했다.

공을 세운 대가로 보상을 받기는커녕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브라질과 한국 양국에서 모두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도대체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김씨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당시 그의 항해일지와 수사기록, 그리고 그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거부하면 살해된다" 위협

▦2005년 8월26일/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이곳 수리남에 온 지 8년째다. 새우잡이 등을 하며 한 달에 3,000달러로 받고 있다. 8,9월은 고기가 잘 안 잡히는 비수기다. 교포 이영희(가명)씨가 일자리를 구해 주었다. 일도 쉽다. 정글에서 생산되는 광석을 아프리카 세네갈까지 실어주기만 하면 된다. 나야 선장으로서 키만 잡고 있다 오면 그만이다. 항해를 도울 재중동포 2명과 100톤급 운반선 '한국(가명)호'도 준비됐다.

▦9월1일/ 드디어 출발. 북위 10도 서경 50도가 목표.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도 바다, 20년 동안 배를 몰았다. 두려울 건 없다.

▦9월6일/ 이씨가 수리남인 1명, 콜롬비아인 2명과 조그만(80톤 정도) 배를 타고 왔다. 접선지에서 기다린 지 이틀 만이다. 다른 사람들의 낌새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기분 탓이려니 여겼다.

▦9월7일/ 물건은 광석이 아니라 '코카인'이라고 했다. 쌍발 비행기가 구름 저편에서 보일 때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비행기는 한 번에 4, 5개씩 포장된 물건을 7, 8차례 바다로 떨어뜨렸다. 선원들은 보트로 한국호로 옮겼다. 포장이 뜯겨진 물건 안에 30~35㎝ 세로 15~20㎝ 5~6㎝ 정도의 직육면체 모양이 보였다. “코카인”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콜롬비아인의 모습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마약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객기였을까. “너도 이제 공범이다. 거부하고 이대로 수리남에 돌아가도 우리 조직원들에게 살해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를 설득하며 10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9월8일/ 마약 적재를 돕던 이씨의 배에 엔진 고장이 생겼다. 그 배를 예인해 수리남 근처에 정박시키자 콜롬비아인 조직원 1명이 우리 배로 올라탔다. 그가 세네갈로 우리를 인도할 거란다. 한국호엔 재중동포 2명과 나, 그리고 조직원 1명. 벗어날 방법이 없다. 15~20마일 뒤에서 우리를 쫓아오는 감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9월X일/ 며칠이 지났는지. 이대로 세네갈에 가도 마약 조직원들에게 살해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교도소에서 평생을 살게 될 것이다. 탈출을 해야지…. 재중동포 2명이 탈출에 동참하기로 했다.

▦9월16일/ 폭우다. 천우신조. 엔진에 이상이 있다며 시간을 끈 뒤 항로를 조금씩 벗어났다. 조직원인 콜롬비아인은 멀미로 연신 구토를 해댔다. 망망한 대서양. 어디로 가는지는 선장인 나 밖에는 모른다.

▦9월17일/ 따라오던 감시선의 움직임이 없었다. 2명의 선원(재중동포)과 함께 셋이서 콜롬비아인을 제압하고 위성전화를 빼앗았다. 이제 살았다.

▦9월19일/ 북위 10도30분, 서경 34도30분, 남미 해역이었다. 인근의 베네수엘라 한국 대사관과 연락이 됐다. “엄청난 마약을 싣고 있다”고 신고하고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이젠 기다리면 된다.

▦9월27일/ 브라질 한국 대사관의 지시에 따라 브라질 포르탈레사 항구에 도착했다. 악몽 20일. 인터폴 수사관과 브라질 연방경찰 10여명이 승선해 콜롬비아인을 제압했다. 한국 대사관 직원들도 마중 나왔다. 코카인 1,200㎏, 시가 3,600만 달러라고 했다. 경찰은 한 건 했다며 즐거워 공포탄을 쏘아댔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하지만 난 기운이 없다.

▦10월1일/ 브라질 당국의 조사를 받고 고국으로 인도됐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한국경찰의 조사를 받은 후 ‘자유의 몸’으로 풀려 나왔다. 하지만 자유로울 수 없다. 생활 근거지였던 남미로는 보복이 두려워 돌아갈 수 없다. 돈도 없고 한국에는 연고가 없다. 수리남에서 입고 나왔던 낡은 복장을 아직도 입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10월~12월/ 경찰의 안내로 국내의 한 사회복지시설에 임시 거주했다. 나를 받아주고 성심 성의껏 대해준 사회복지사들이 그저 고마웠다. 그러나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답답하고 막막했다. 마약 조직원들이 나를 찾아서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브라질과 조국은 보상은커녕 더 이상 나에게 해줄 게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되고 있었다.

▦11월X일/ 지인의 도움으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나를 부른 이유는 규정을 들며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단다. 기가 막혔다. 죽고 싶은 심정뿐이다.

▦2006년 1월/ 사회복지시설을 빠져 나왔다. 언제까지 대책 없이 머무를 순 없는 노릇이었다. 화물운송회사에서 막일을 시작했다. 잠은 여관이나 빈 배를 전전하면서 자고 있다. 고향에 계신 팔순 노모가 보고 싶지만 찾아 뵐 수도 없다. 눈물은 이미 마른지 오래다. 조국이 원망스럽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